북반구의 기록적인 폭염이 예상치 못한 선물을 안겼다. 영국 야생조류 보호구역에 사는 안데스 홍학이 15년 만에 처음으로 알을 낳았다. 안타깝게도 9개 알 모두 무정란이었으나 조류사육사의 도움으로 친척뻘인 칠레산 홍학의 알을 품어 부화까지 성공시켰다.
영국 글로스터셔주 슬림브리지의 야생조류·습지 트러스트(WWT)는 9일(현지시간) “안데스 홍학 6마리가 15년 만에 처음으로 알을 낳았다”고 성명을 냈다고 워싱턴포스트 등 외신들이 11일 보도했다.
안데스 홍학이 15년 만에 알을 낳은 것은 폭염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영국은 지난 5월 사상 최고 기온을 기록했고 6월 날씨도 역대 두 번째로 높았다. 7월에도 기온이 평균보다 높고 비는 적게 와 덥고 건조한 날씨가 이어졌다. 이런 날씨 조건이 안데스 홍학의 본래 서식지 환경과 비슷한 여건을 제공해 홍학들이 알을 낳은 것으로 보인다.
슬림브리지의 조류사육 매니저 마크 로버츠는 “최근의 무더위가 홍학이 알을 낳도록 한 게 분명하다”고 말했다. 이곳 홍학들이 마지막으로 알을 낳은 2003년도 폭염이 심각했던 시기였다.
하지만 홍학이 낳은 9개의 알은 모두 무정란이었다. 사육사들은 어미가 빈 둥지를 보고 슬퍼하지 않도록 친척쯤 되는 칠레 홍학의 알을 대신 옮겨놓고 부화하도록 했다.
안데스 홍학은 볼리비아, 페루 등 남미 안데스 산맥 고원에서 사는 희귀종으로 분홍색 털, 길고 노란 다리, 끝이 검은 부리가 특징이다. 수명이 긴 편이라 야생에서는 20~25년, 시설에서는 평균 10년 정도 산다.
산란율이 꾸준히 줄어 개체 수가 감소하면서 지금은 3만9000마리 정도만 남은 것으로 추정된다.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은 안데스 홍학을 ‘멸종위기등급 취약종’으로 분류했다.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