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이 선사한 작은 선물, 희귀종 ‘안데스 홍학’ 15년 만에 번식

입력 2018-08-12 08:06 수정 2018-08-12 09:47
영국 슬림브리지 동물보호구역에서 안데스산 홍학 한마리가 칠레산 홍학의 알을 품어 부화시키는 장면. 폭염으로 오히려 번식기를 맞은 안데스산 홍학의 알이 2003년 이후 처음으로 낳은 9개의 알이 모두 불임으로 밝혀지자 동물원측은 칠레산의 알을 대신 품게해 병아리를 선물했다. 뉴시스

북반구의 기록적인 폭염이 예상치 못한 선물을 안겼다. 영국 야생조류 보호구역에 사는 안데스 홍학이 15년 만에 처음으로 알을 낳았다. 안타깝게도 9개 알 모두 무정란이었으나 조류사육사의 도움으로 친척뻘인 칠레산 홍학의 알을 품어 부화까지 성공시켰다.

영국 글로스터셔주 슬림브리지의 야생조류·습지 트러스트(WWT)는 9일(현지시간) “안데스 홍학 6마리가 15년 만에 처음으로 알을 낳았다”고 성명을 냈다고 워싱턴포스트 등 외신들이 11일 보도했다.

안데스 홍학이 15년 만에 알을 낳은 것은 폭염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영국은 지난 5월 사상 최고 기온을 기록했고 6월 날씨도 역대 두 번째로 높았다. 7월에도 기온이 평균보다 높고 비는 적게 와 덥고 건조한 날씨가 이어졌다. 이런 날씨 조건이 안데스 홍학의 본래 서식지 환경과 비슷한 여건을 제공해 홍학들이 알을 낳은 것으로 보인다.

슬림브리지의 조류사육 매니저 마크 로버츠는 “최근의 무더위가 홍학이 알을 낳도록 한 게 분명하다”고 말했다. 이곳 홍학들이 마지막으로 알을 낳은 2003년도 폭염이 심각했던 시기였다.

하지만 홍학이 낳은 9개의 알은 모두 무정란이었다. 사육사들은 어미가 빈 둥지를 보고 슬퍼하지 않도록 친척쯤 되는 칠레 홍학의 알을 대신 옮겨놓고 부화하도록 했다.

안데스 홍학은 볼리비아, 페루 등 남미 안데스 산맥 고원에서 사는 희귀종으로 분홍색 털, 길고 노란 다리, 끝이 검은 부리가 특징이다. 수명이 긴 편이라 야생에서는 20~25년, 시설에서는 평균 10년 정도 산다.

산란율이 꾸준히 줄어 개체 수가 감소하면서 지금은 3만9000마리 정도만 남은 것으로 추정된다.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은 안데스 홍학을 ‘멸종위기등급 취약종’으로 분류했다.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