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황현산(1945~2018·사진) 선생의 영결식이 10일 오전 서울 성북구 고대안암병원 장례식장에서 열렸다. 유가족과 문인, 제자들은 고인이 남긴 말과 그 삶을 회고하며 그를 떠나보냈다. 50년 지기인 문학평론가 김인환(72)은 영결사에서 “형을 제가 먼저 보내다니요”라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비평가로서 고인의 면모를 추억했다.
김인환은 “고인은 ‘문학은 언어라는 정식계약 뒤의 이면계약’이라는 말을 자주 했다. 그 이면 계약의 밑바닥에는 모든 인류 공통의 모국어가 있다고 믿었다”고 했다. 이어 “고인은 비평을 ‘타인을 타인으로 인식하는 것’이라고 했고, 고인이 가장 경계한 비평은 비평가의 사고 틀 안에 시를 꿰맞추는 것이었다”고 했다.
시인 김정환(64)와 이영광(53) 시인은 각각 추도시를 낭독했다. 김 시인은 ‘발굴’이라는 제목의 시에서 “상처가 상처가 되기 위한 상처 하나/아름다움이 아름다움이 되기 위한 아름다움 하나…”이라며 고인의 자취를 상기시켰다. 이 시인은 “당신과 있으면 내가 좋아졌다…당신과 있으면 우리가 좋아졌다…”며 고인의 자상한 인격을 떠올렸다.
고인의 첫 산문집 ‘밤이 선생이다’를 낸 출판사 난다 대표이자 시인인 김민정(42)은 울음을 참으며 추도사를 읽었다. 그는 “우주의 시계는 지구의 시계와 다르대요. 그러니까 잠시 (다른) 장(場)에 간 거라고 생각하래요. 그 말을 들으니까 힘이 막 났어요. 거기 잠깐만 계세요. 여기 잠깐만 있을게요. 그리고 우리 곧 만나요, 선생님”이라고 마지막 인사를 했다.
유가족과 제자, 문인들은 생전에 그의 글과 말, 태도가 가졌던 온기와 기품을 다시 한번 추억하며 아쉬움과 슬픔의 눈물을 흘렸다. 전남 목포 태생인 고인은 고려대 불문과 대학원에서 기욤 아폴리네르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3년부터 모교에서 후학을 가르치다 2010년 정년퇴직했다.
80년대 말부터 평론을 발표해 평론집 ‘말과 시간의 깊이’(2002) 등을 냈고 아폴리네르의 ‘알코올’, 스테판 말라르메의 ‘시집’, 보들레르의 ‘파리의 우울’ 등이 그의 손을 거쳐 아름다운 우리말로 태어났다. 황병승 김이듬 등 난해하고 도발적인 시인들이 고인의 평문으로 발굴되고 소개됐다.
말년에는 트위터를 통해 젊은 층과 소통을 시도해 팔로어가 40만명을 넘겼다. ‘밤이 선생이다’(2013)는 그를 유명 작가로 만들었고 최근 두 번째 산문집 ‘황현산의 사소한 부탁’을 냈다. 고인은 지난해 12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위원장을 맡았지만 암 재발로 석 달 만에 사직했다. 대산문학상 아름다운작가상 팔봉비평상 등을 수상했다. 글·사진=
강주화 기자 rul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