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첼 바첼레트 전 칠레 대통령, 유엔 인권 최고수장 낙점

입력 2018-08-10 05:50
미첼 바첼레트 전 칠레 대통령이 2016년 유엔 본부에서 열린 71차 유엔총회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피노체트 독재 정권의 고문 피해자인 바첼레트는 유엔 인권 수장 자리를 눈앞에 두고 있다. AP뉴시스


군부 독재 정권의 고문 피해자인 미첼 바첼레트 전 칠레 대통령이 유엔의 인권 수장에 내정됐다. 파르한 하크 유엔 대변인은 8일(현지시간) 성명을 통해 바첼레트 전 대통령이 유엔최고인권대표사무소(OHCHR) 대표로 지명됐다고 밝혔다. 바첼레트는 10일 유엔 총회에서 승인을 받으면 정식으로 자이드 라드 알 후세인 현 유엔 인권최고 대표의 뒤를 잇게 된다.

바첼레트는 그 자신이 군부 독재정권의 고문 피해자다.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정권은 1973년 살바도르 아옌데 정권을 군부 쿠데타로 끌어내리고 집권해 아옌데 정권 지지자들을 잡아가두고 고문했다. 공군 장성으로 민주화 투사였던 바첼레트 아버지 알베르토 바첼레트도 이때 붙잡혀 고문 끝에 옥사했다. 바첼레트는 의대에 다니던 중 아버지의 사망 소식을 접하고 아옌데의 소속정당이던 사회당에 투신했다. 그러나 75년 그 역시 어머니와 함께 국가정보국에 체포돼 고문을 당했다. 같은 해 호주로 망명한 그는 79년 칠레로 돌아와 학업을 마친 뒤 소아과 의사가 됐으며 공중보건 운동가로도 활동했다.

정계에 입문한 바첼레트는 보건장관과 국방장관을 거쳐 2006년 칠레 최초의 여성대통령으로 당선됐다. 퇴임 후 유엔 여성기구 총재를 지내다 2014년 재선돼 올해 3월까지 재임했다. 로이터통신은 “바첼레트는 대통령 재임 시절 온화한 스타일과 복지 정책, 꾸준한 경제성장으로 인기를 얻었다”고 평가했다.

국제 인권단체인 휴먼라이츠워치(HRW)의 케네스 로스 사무총장은 성명을 통해 “현재 전 세계에서 인권이 위협받고 있는 만큼 바첼레트가 세계에서 가장 어려운 일을 맡게 되는 것”이라면서도 “바첼레트는 자신이 (인권탄압의) 피해자로서 인권수호의 중요성에 관해 특별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바첼레트는 취임과 함께 이민자 분리정책 등으로 깊어진 미국과 OHCHR의 마찰을 해결하는 과제를 떠안게 됐다. 현재 OHCHR을 책임지고 있는 후세인 대표는 임기 동안 회원국 인권문제에 쓴소리를 아끼지 않아 잦은 마찰을 빚었다. 특히 미국의 이민자 가족 분리정책과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시위대 유혈 진압 등을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 결국 여기에 불만을 가진 미국이 지난 6월 유엔 인권위원회(UNHRC)를 탈퇴하기까지 했다.

뉴욕타임스(NYT)도 바첼레트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유엔의 인권 외교를 점점 더 비관적으로 보는 가운데 인권최고대표로 내정됐다고 지적했다. 니키 헤일리 UN 주재 미 대사는 이날 후세인 대표가 개입한 유엔인권위원회 활동을 실패로 규정하며 “유엔인권위원회가 그동안 범한 여러 실패를 피하기 위해 유엔 사무총장이 바첼레트를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택현 기자 alle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