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억원대 몸값의 골키퍼가 탄생했다.
아틀레틱 빌바오(스페인)의 골키퍼 케파 아리사발라가(24·스페인)가 역대 골키퍼 최고 몸값인 8000만 유로(약 1038억원)를 기록하며 9일 첼시 입단을 확정했다. 골키퍼 이적료가 1000억원을 넘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종전 최고 몸값이었던 브라질 대표팀 골키퍼 알리송 베커가 리버풀로 이적하며 기록한 7250만 유로(약 956억원)가 불과 보름 만에 깨진 것이다.
아리사발라가가 훌륭한 골키퍼인가라는 것에 대해선 분명 의심의 여지가 없다. 지난 시즌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에서 가장 빛났던 수문장 중 한명이었다. 186㎝의 신장으로 골키퍼 치고 큰 키는 아니지만 넓은 커버 범위를 가지고 있으며 동물적인 반사 신경으로 지난 시즌 빌바오가 부진할 때도 아리사발라가만큼은 빛났다.
비록 다비드 데헤아에 가려져있지만 종종 모습을 드러낸 스페인 대표팀에서의 활약도 훌륭했다. 데헤아랑 상당히 비슷한 유형으로 일컬어지는 선수지만 오히려 롱패스 성공률이나 발밑 기술에 있어서는 데헤아보다 높은 평가를 받는다. 현대축구가 골키퍼에게 요구하는 다양한 덕목들을 두루 겸비한 선수다.
하지만 그의 이적료에 있어서는 분명 의구심이 남을 수밖에 없다. 아리사발라가가 본격적으로 주전 자리를 꿰찬 것은 지난 시즌부터다. 1년이라는 시간 동안 놀라운 성장세를 보였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만큼 보여준 것이 적다는 뜻이기도 하다. 유럽 최고의 골키퍼가 될 가능성을 지녔지만 ‘최고’는 아니다.
앞서 프리미어리그에 입성한 알리송은 브라질리그에서 데뷔해 최정상 골키퍼로 활약하며 대표팀 수문장 자리까지 올라섰다. 이후 AS로마로 이적해 지난 시즌 세리에A 3위와 유럽 챔피언스리그 4강 진출을 이끌었다. 확실히 검증된 자원이다.
이번 아리사발라가에 대한 오버페이 감행은 첼시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기존의 주전 골키퍼이던 티보 쿠르투아가 가족을 위해 마드리드로 가고 싶다는 뜻을 내비치며 무단으로 팀 훈련 불참까지 하는 초강수를 뒀기 때문이다.
첼시는 이미 한번 이적시장에서 급한 마음에 매물을 샀다 후회 한 경험이 있다. 지난 여름 이적이 확실시되던 로멜루 루카쿠를 라이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하이재킹 당했을 때다. 당시 디에고 코스타(아틀레티코 마드리드)와 안토니오 콘테 감독의 사이가 완전히 틀어진 상황에서 유일한 최전방 스트라이커 자원이던 알바로 모라타에게 6000만 파운드(약 880억 원)를 투자했다.
모라타는 리그에서 11골을 올리는 데 그치며 이적료에 걸맞지 않은 활약을 했다. 첫 주전으로 올라서는 과정이었기 때문에 후반기에 들어서 체력적인 한계가 도드라졌다. 첼시에서의 부진으로 인해 그간 붙박이로 기용돼왔던 스페인 대표팀에서도 낙마하며 모라타에겐 분명히 실망스러운 시즌이었다.
앞서 이탈리아 세리에A에서 엄청난 오버페이 논란에 휩싸였던 골키퍼가 있었다. 2001년 파르마에서 유벤투스로 이적했던 잔루이지 부폰이다. 부폰은 당시 골키퍼 이적료 역대 최고액 3300만 파운드(약 483억원)을 기록했다. 당시 이적시장 규모를 감안했을 때 가히 파격적이라 할 수 있는 금액이었다.
골키퍼 영입에 대해 그 정도 금액을 투자한 것에 대해 팬들의 비난과 조롱이 빗발쳤다. 하지만 부폰은 그러한 비판을 비웃기라도 하듯 최고 이적료에 걸맞는 활약을 보여줬다. 덕분에 유벤투스는 17년 동안 단 한 번도 뒷문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있었다. 현재 그때의 부폰 이적료가 과했다고 생각하는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첼시가 아리사발라가에 거는 기대 역시 그때의 유벤투스와 같다. 7년이라는 장기계약을 맺으며 ‘첼시의 부폰’이 되어주길 바라고 있다. 아리사발라가가 보여준 그간 성장세를 봤을 때 유럽 최고의 골키퍼로 올라설 수 있는 가능성은 충분하다. 24세의 어린나이기 때문에 그때의 부폰과 마찬가지로 십년 이상 골문을 지킬 수 있다.
아리사발라가가 모라타와 부폰의 갈림길에 섰다. 그가 과연 ‘최고 이적료’라는 무게를 이겨낼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그와 알리송이 치를 장외전 또한 지켜보는 재미가 생겼다.
송태화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