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카’ 범죄자를 귀엽고 친근한 이미지로?… 논란의 ‘불법촬영 근절’ 캠페인

입력 2018-08-09 10:17
'대한민국 경찰청' 트위터 캡처

부산지방경찰청이 해운대 해변 곳곳에 설치된 ‘불법촬영 범죄자 등신대’를 찾아 인증샷을 올리면 경품을 주는 이벤트를 실시하고 있다. 하지만 해당 캠페인이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잇따르자 부산경찰청은 홍보물을 9일 삭제했다.

지난 2일 부산경찰은 SNS에 “해운대에 숨어있는 불법촬영 범죄자를 찾아라. 내일 오전 10시에서 12시 부산경찰 현상수배 부스가 해운대에 나타난다”며 캠페인 홍보물을 올렸다. 해당 캠페인은 부산 해운대 해변 곳곳에 설치된 ‘불법촬영 범죄자 등신대’를 찾아가 인증샷을 찍은 뒤 SNS에 올리는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다. 캠페인 참가자는 현장에 있는 부산경찰 부스에 인증샷을 올린 게시물을 보여주면 경품을 받는다. 캠페인은 지난 3일에 실시됐고, 오는 10일에도 열릴 예정이었다.

'대한민국 경찰청' 트위터 캡처

'대한민국 경찰청' 트위터 캡처

하지만 시민들사이에서 ‘불법촬영을 희화화 시키는 부적절한 캠페인’이라는 목소리가 나왔다. 캠페인을 본 A씨는 “무슨 의도로 이런 이벤트를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몰카 범죄자에 대한 귀엽고 친근한 이미지 퍼뜨리기인가”라며 “대한민국 경찰청이 불법촬영 문제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보인다”고 말했다. A씨는 “불법촬영은 사람을 죽이는 범죄고 피해자의 삶을 무너뜨리는 족쇄”라며 “리벤지 포르노를 수없이 찍고 퍼나른 그들이 피해자들에겐 살인마와 다름없다. 똑같은 공포의 대상인데 경찰은 사태를 너무 가볍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아 답답하다”고 말했다.

B씨는 “이 이벤트가 어딜 봐서 불법촬영 근절과 연결되나? 시민들을 도와야 할 경찰이 범죄자를 유아화, 캐릭터화시켜 심각한 문제를 하나의 놀이로 변질시키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실제 불법촬영의 피해자들은 물론이고 일반 여성들조차 낯선 곳에 가면 혹여나 카메라가 설치돼 있지 않을까 노심조차한다”며 “피해가 이렇게 심각한데 범죄를 근절하려고 노력하기는커녕 인증샷 이벤트를 여는 건 도대체 무슨 심보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C씨 역시 “피해자들은 생각도 안 하고 가볍게 오락성 이벤트를 주최함으로써 국민들로 하여금 범죄를 가볍게 생각하게 만드는 것 같다. 불법촬영 범죄자 등신대에 멜빵과 노란 티셔츠를 입히고 볼 터치를 그려 넣는 등 철없이 멋모르고 저지르는 행동인 것 마냥 만들어 놓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가”라며 “게임 마냥 사진을 찍어가 물티슈나 스포츠 타월 등을 받으면 불법촬영 근절에 도움이 되는지 정말 의문”이라고 주장했다.

부산경찰 페이스북 캡처

부산경찰은 해당 게시물은 삭제하고 SNS를 통해 공식 입장을 내놓았다. 부산지방경찰청 홍보담당관실은 “시민들과 함께 불법촬영범을 검거하는 캠페인을 진행하여 피서지 불법촬영범에게 시민 모두가 감시하고 있다는 경고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였으나, 당초 캠페인 취지와 달리 일부 오해의 소지가 있어 캠페인을 중단함을 알려드린다”며 “캠페인 내용에 대하여 불편함을 느끼신 분들에게는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전했다. 경찰청 역시 “국민 여러분이 불법 촬영에 대해 갖고 있는 분노와 공포를 공감하며, 더욱 세심하게 신경 쓰겠다”고 밝혔다.

신혜지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