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사우디 ‘여성 인권’ 건드렸다가 무차별 공세에 출구 모색

입력 2018-08-08 22:50
이슬람 전통 복장을 한 사마르 바다위의 모습. 그녀의 남동생인 라이프 바다위도 2012년 이슬람을 모욕했다는 혐의로 사우디 정부로부터 1000대의 태형과 징역 10년형을 선고받고 복역중이다. 트위터 캡쳐

사우디아라비아가 여성 인권 운동가의 구금을 비판하는 캐나다에 대해 내정간섭이라며 외교관을 추방하고 교역 중단을 선언하는 등 강경 대응을 이어가고 있다. 예상을 뛰어넘는 사우디의 반응에 놀란 캐나다는 동맹국에 중재를 요청하는 등 출구 전략을 고심하는 모습이다. 로이터 통신은 7일(현지시간) 캐나다가 사우디와의 외교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아랍에미리트(UAE)와 영국에 도움을 요청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두 나라의 갈등은 지난 2일 크리스티아 프리랜드 캐나다 외무장관이 트위터에 “사마르 바다위가 구금됐다는 소식에 우려스럽다”고 쓰면서 시작됐다. 이어 캐나다 외무부도 사우디 정부에 체포된 인권운동가들을 즉각 석방하라고 요구했다.

사우디 정부는 앞서 사우디계 미국 시민 바다위를 비롯한 여성 인권운동가 10여명을 체포했다. 바다위는 여성에 대한 남성 보호후견제도와 여성 운전 금지 등 사우디의 악습을 폐지하기 위해 애쓰다가 2016년에도 체포된 바 있다. 바다위의 남동생 라이프 바다위도 지난 2012년 이슬람 성직자 모욕을 이유로 징역 10년형을 선고받고 사우디에서 복역중인데, 바다위는 캐나다 시민권자인 동생의 아내와 함께 캐나다에서 구명활동에 나선 바 있다.


캐나다 외무부의 성명에 사우디는 내정간섭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사우디 정부는 수도 리야드에서 캐나다 외교관을 추방하고 이어서 외교관계 중단, 신규무역·투자거래 중단 등을 선언했다. 국영항공사의 토론토 직항편도 폐쇄한 사우디 정부는 캐나다 내 사우디 유학생들을 철수시키겠다고 발표했다. 캐나다 내 사우디 유학생은 1만6000여명으로 전체 해외 유학생 중 5%에 달한다. 전문가들은 사우디 유학생들이 귀국하면 4억 캐나다 달러의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추산했다.

크리스티아 프리랜드 캐나다 외무장관이 지난달 25일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논의하기 위해 멕시코시티를 방문해 손을 흔들고 있다. 사우디 아라비아와 캐나다 사이의 외교 분쟁은 프리랜드 장관의 트윗 이후 시작됐다. AP뉴시스

캐나다는 바다위 남동생의 아내가 캐나다 시민권자이기 때문에 내정간섭이 아니라는 논리로 맞섰다. 반면 2012년 바다위에게 용감한 세계 여성상을 안기며 추켜세웠던 미국은 중재에 나서는 대신 논쟁에서 발을 뺐다. 이날 헤더 나워트 미 국무부 대변인은 7일 브리핑에서 “양측은 외교적인 방식으로 (갈등을) 해결해야 한다”면서 “이는 우리(미국)가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워싱턴포스트(WP)는 사설에서 “트럼프 정부는 자유와 인권을 옹호하는 역할에서 크게 발을 뺐다”며 미국의 태도를 비판했다. WP는 “캐나다 홀로 이런 일을 감당해서는 안된다. 보편적 가치를 수호하는 것은 전통적으로 미국의 역할이었다”고 지적했다.

AFP는 사우디의 강경한 태도에는 사우디 인권 문제에 서방이 간섭해서는 안 된다는 모하메드 빈 살만 왕세자의 메시지가 담겼다고 해석했다. 캐나다 유력 언론 글로브앤메일도 “사우디가 서방 세계에서 비교적 만만한 캐나다를 본보기 삼아 ‘인권 문제는 지적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택현 기자 alle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