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추가 지난 뒤에서 35도를 넘는 폭염이 지속되면서 야외근무를 하는 근로자들의 건강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국내에는 폭염에 따른 야외근무 문제를 다루는 법규정이 딱히 없어 자율 대응을 하다보니 직종이나 회사에 따라 폭염근무의 차별문제도 불거지는 중이다.
폭염근무에 대한 기준을 세우기 어렵다면 참고할만한 사례가 있다. 바로 ‘군대’다. 흔히 군대라고 하면 뭔가 ‘취약한’ 상황을 떠올리기 쉽지만 적어도 폭염문제에 있어선 군대가 전문가다. 경계근무, 각종 훈련, 군시설 관리 등 군병력 대부분이 일상을 야외에서 하는 탓에 엄격한 폭염관리책을 운영 중이기 때문이다.
군대를 본받아야 하는 이유
군대는 ‘온도지수’라는 독자적인 기준에 따라 폭염 문제를 관리하고 있다. 온도지수는 온도와 습도, 일사량 등을 일정한 공식을 통해 산출한다. 이 온도지수에 따라 군대는 폭염 시 야외활동의 기준을 각각 세워두고 있다. 상당히 과학적인 셈이다.
온도지수는 어떻게 산출할까. 국방홍보원에서는 온도지수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을 하고 있다. 온도지수를 이해하려면 일단 산출에 필요한 건구온도, 습구온도, 흑구온도의 개념부터 알아야한다. 건구온도는 주변에서 흔히 쓰는 일반 온도계로 측정한 온도다. 습구온도는 건구온도와 비교해 상대습도를 측정한 온도다. 습도가 높을수록 습구온도도 높다고 보면 된다. 흑구온도는 일사량을 잰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태양빛의 뜨거움 정도를 재는 것이다.
온도지수는 일단 건구온도, 습구온도, 흑구온도를 먼저 측정한다. 그 다음 ‘(0.1×건구온도)+(0.7×습구온도)+(0.2×흑구온도)’로 정해진 공식에 각각의 수치를 대입해 온도지수를 산출한다.
온도지수 29.5도 넘으면 야외활동 ‘NO’
이 온도지수가 여름철 장병들의 건강과 안전을 좌우한다. 온도지수가 ‘29.5도’를 넘는지 여부에 따라 장병들의 희비도 엇갈린다. 국방부의 부대관리훈련 217조에서는 온도지수가 29.5도를 넘으면 실외 군사활동 시간 단축 및 군사활동을 조정토록 하고 있다.
군사활동 조정에 대한 권한이나 재량은 각 부대의 부대장이 맡는다. 온도지수가 29.5도를 넘는다면 장병들은 적어도 땡볕을 면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물론 이 경우에도 경계근무 등 필수 야외활동을 피할 수는 없다.
‘재량껏’ 결정하기 때문에 각 부대는 온도지수를 재기 위한 시설을 부대 내 구비하고 있다. 습도나 일사량 등은 특히 지역별로 편차가 클 수 있는 문제기때문에 국방부가 일괄적으로 온도지수를 재서 내려보내지 않는다는 얘기다.
각 부대별 활동지역의 온도지수를 개별 산출해 적용하니 이 또한 상당히 ‘과학적’이다. 그렇다면 보통 (건구)온도가 몇도쯤 돼야 온도지수가 29.5도를 넘을까. 과거 군생활 때 온도지수 파악 업무를 담당했던 K씨의 말을 들어보자. K씨는 “요즘 같이 덥고 습한 날씨면 통상 건구온도가 32~33도 정도면 29.5도를 넘기기 일쑤”라고 밝혔다.
장병들은 온도지수가 높으면 실외활동을 하지 않고 노는 것일까. 그렇진 않다. 장병들도 엄연한 군공무원 신분이다. 규정된 근무시간 내에는 놀거나 쉴 수 없다. K씨는 “보통 부대장 명령 하에 실내에서 정신교육을 받거나 소총정비, 실내 훈련 등을 한다”고 말했다.
군대에서 활용하는 이 온도지수를 일상에도 적용해보면 어떨까. 기상청은 온도지수는 별도로 발표하지 않고 있다. ‘열지수’와 같은 지표도 있긴하지만 객관성 문제 등으로 현재는 (건구)온도만을 기준으로 특보 등을 내고 있다. 올 5월부터는 노약자나 어린이 등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더위체감지수’를 개발해 단계별 행동지침 등을 안내 중이지만 일상적인 폭염 시 야외활동 지침과는 거리가 있다. 군대가 사회보다 나은 경우도 있다.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