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가 페미니즘 문구를 검열한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5일 방송된 KBS1TV ‘도전! 골든벨’에선 ‘동일범죄 동일처벌’ ‘낙태죄 폐지’ 등 주요 페미니즘 관련 문구가 적힌 화이트보드가 모자이크 처리된 모습이 담겨 논란이 됐다. 방송 뒤 해당 학생은 트위터에서 “‘도전! 골든벨’에 나가서 ‘동일 범죄, 동일 처벌’과 ‘낙태죄 폐지’를 써뒀는데 그걸 다 가려버렸다. KBS 편집팀인지, 위에서 지시를 내렸는지 잘 알았고, 나는 그게 정치적 발언인 줄은 몰랐다”고 비판했다.
도전! 골든벨 시청자 게시판에도 이를 규탄하는 글이 7일 오전 기준 30여개 올라왔다.
스스로 남성 시청자라고 밝힌 이모씨는 6일 시청자 게시판에 “최근 화두가 되고 있는 여성 인권 문구이고, 혜화역 시위의 주장 내용이라 정치적 문구라 판단해 모자이크 했는지 모르겠으나 상당히 자의적 편집이라는 느낌이 든다”며 “직접적인 혐오 표현도 아니고 충분히 생각해 볼만한 내용인데 문제적 문구인 것처럼 모자이크로 가려버린 것은 부적절한 편집”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거의 사상검증에 가까운 조치였다고 보일 정도이며 다양한 목소리를 담아야 하는 공영방송 취지에도 맞지 않는다. 정치적 문구이더라도 청소년은 정치적 의견을 나타내면 안되느냐. 용인될 수 있는 최소한의 생각마저 공영방송에서 차단하다니 이런 시대착오적 방송에서 무슨 지식을 겨룬다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목소리 높였다.
다른 시청자 장모씨는 “‘도전! 골든벨’은 성차별 방송이냐” “편파수사를 하지 말아달라는 얘기가 어떻게 민감한 사안이라는 것이냐”며 심의기준이 잘못됐다고 목소리 높였다. 그러면서 “학교에서도 성 평등 교육을 하고 있는 가운데, 공중파 방송에서 성불평등이라니. KBS 수준 잘 알겠다”고 비꼬았다.
KBS 측은 ‘청소년 출연자가 민감한 이슈 다툼에 휘말려 입게 될 피해를 우려해 내린 결정’이라고 해명했다. KBS 관계자는 6일 입장문을 내고 “공영방송은 ‘첨예하게 주장이 엇갈리는 정치적·종교적·문화적 이슈의 경우, 한쪽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방송할 수 없다’는 원칙을 지켜야 한다”며 “항상 녹화 전에 출연자들에게 ‘프로그램 취지를 벗어나는 멘트는 자제하라’고 사전 고지해 왔다”고 밝혔다.
이어 “이 같은 원칙에 따라 5일 방송분에서 최후의 1인의 답판에 적힌 글 일부를 모자이크 처리했다. 현재 해당 학생이 작성한 글, 사진, 개인정보 등이 온라인상에서 급속도로 퍼지고 있어 해당 학생에게 피해가 우려된다. 이 또한 건강한 토론의 영역에서 해결되기를 진심으로 원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일각에선 이 같은 해명을 두고 ‘페미니즘에 대한 왜곡된 시선’이라고 지적했다. 성 평등을 주장하는 페미니즘은 ‘첨예하게 주장이 엇갈리는 사안’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또 KBS의 ‘페미니즘 지우기’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점에서 논란은 쉽게 식지 않고 있다. 실제로 지난달 27일 방송된 예능프로그램 ‘연예가중계’에서는 DJ DOC 멤버 이하늘이 농담 식으로 “우리도 여성 팬이 많다. 페미니스트 쪽에서”라고 말하자 사이렌 소리를 넣고 ‘잠시 화면 조정 시간을 갖겠다’는 내레이션과 함께 자연경관을 내보냈다. 성 평등을 주장하는 ‘페미니즘’이 공영 방송에서 금기어처럼 다뤄진 것이다.
‘도전! 골든벨’에서 페미니즘 관련 문구가 적힌 화이트보드를 든 학생 A씨는 인터넷상에서 인신공격과 신상털기 등이 지속되자 자신의 트위터 계정을 비공개로 전환했다. 한 네티즌은 A씨를 ‘페미니스트’라 호칭하며 A씨가 재학 중인 학교 측에 “본교 명예를 실추하는 트위터를 하고 있다”고 신고하기도 했다. 그는 “A씨가 청소년으로서 사용이 부적절한 단어를 써가며 본인의 담임선생님과 학교를 모욕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전형주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