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태화의 인저리타임] “돈 없으면 못해요” 한국 고교축구의 현실

입력 2018-08-06 12:00 수정 2018-08-06 12:00
픽사베이 제공

2009년 축구 명문 고교에 입학했던 A씨는 이제 사회인이다. 그는 중학생 때부터 몸담았던 축구를 고등학교에서 이어갔다. 입학과 동시에 축구부에 입단했다. 하지만 꿈을 펼치지 못하고 곧 자퇴를 선택했다. 축구부 감독의 눈에 들지 못해서였다. A씨는 6일 익명을 전제로 인터뷰에 응했다.

“이 학교 축구부에 감독 아들이 있었습니다. 누가 봐도 실력이 뒤쳐지는 친구였는데 항상 엔트리에 들었죠. 엔트리에 들려면 100만원, 한 경기에 출전하려면 150만원, 이런 뒷거래가 있다는 소문이 학교 안에 팽배했어요. 학내에서 워낙 말이 많이 돌아 당시 함께 뛰었던 친구들은 모두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A씨가 입단했던 고등학교 축구부는 한국 축구의 전설적인 선수를 배출한 학교다. 이 선수 덕에 전국에서 꿈나무들이 이 학교로 몰렸다. 지금은 축구 명가가 됐다. A씨는 “당시 이 학교 축구부 감독의 콧대가 하늘 높은 줄을 몰랐다. 우리에게 꿈과 같았던 선수의 명성이 누군가에게 악용되는 것 같았다. 우리 집은 돈이 없어 (감독에 건넬 은밀한 돈은) 상상조차 못했다”고 말했다.

A씨의 축구인생을 가로막은 것은 감독만이 아니었다. 동기, 선후배 사이에서 빗나간 경쟁심은 어쩌면 한국 축구의 미래로 성장할지 모를 유망주의 ‘뿌리’를 파내고 뽑았다. 그는 “일부 심성이 고약한 선배들이 잘하는 후배를 보면 매장시키기에 바빴다. 이 역시 지속됐던 고교 축구의 악습”이라고 했다.

A씨는 대회 참가비를 내는 것조차 어려웠다. 축구 하나만 보고 고교 진학을 선택했던 A씨는 사라진 꿈과 함께 학업에 대한 열정마저 잃었다. 지금은 직업군인의 길을 걷고 있다. A씨와 그의 모교만의 문제는 아니다. 지금도 어쩌면 전국 곳곳의 또 다른 A씨가 기량과 꿈을 만개하지 못하고 축구를 포기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A씨 모교 축구부 관계자의 연락은 닿지 않았다. 이 학교 축구부는 지금 지방에서 훈련 중이다.


한국 18세 이하(U-18) 청소년 축구대표팀. 대한축구협회 제공

한국은 ‘축구의 나라’가 아닌 ‘야구의 나라’다. 국내 축구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이 몰릴 때는 오직 월드컵 기간뿐이다. 월드컵 경기가 아닌 A매치에 대한 관심과 열기는 갈수록 줄어드는 추세다. 프로축구는 프로야구 원년인 1982년의 이듬해 출범했지만, 30년을 훌쩍 넘긴 지금 두 종목의 인기차이는 현저하다.

K리그의 흥행을 저하하는 요소는 여러가지로 손꼽힌다. 도심과 멀리 위치한 경기장, 마케팅과 스타 선수들의 부재, 스포츠 시설의 부족 등이 그렇다. 하지만 결국 악순환의 시발점은 프로축구의 근간인 학원축구의 시스템 문제다.

최근 주목 받는 신성들을 보면 이승우, 백승호, 이강인처럼 국내에서 벗어나 외국에서 성장한 선수들이다. 과거 차범근, 이동국, 박지성, 박주영처럼 전국고교축구대회에서 탄생한 스타들은 어느덧 옛 얘기가 됐다. 한국 고교축구는 소수 정예 엘리트 육성에 집중하고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고교 축구의 스타, 즉 엘리트의 탄생은 사실상 사라졌다. 소수 정예의 엘리트 학원축구를 지향하는 한국에서 정작 재능 있는 선수들의 발견 사례는 많지 않다.

자본의 논리에서 자유롭지 않다. 고교 축구를 지도하는 코칭스태프부터 팀 차량 운행비와 같은 사소한 경비까지 모두 축구 꿈나무의 호주머니로 충당해야 한다. 인맥과 돈이 없는 학생들은 자신의 재능을 흙 속에 파묻어 버린 채 축구화를 벗어던지고 있다. 슬픈 현실이다.

◆ 고교축구의 학기 중 대회 부활

초·중·고교 축구의 학기 중 전국 규모 토너먼트 대회는 2009년 폐지됐다. 대신 연중 지역 리그대회와 연말 왕중왕전으로 바뀌었다. 공부하는 학생 선수를 육성하겠다는 취지였다. 그 결과로 선수들의 학습 성취도 면에선 항상 됐지만, 훈련시간이 부족해 선수로서의 성장이 더뎠다.

축구만을 현재의 목표로 하는 학생들이 학업 진도를 따라간다는 것 역시 현실적으로 벅찬 상황이라 결국 이도 도 아닌 상황이 됐다. 그라운드에서 한 번이라도 공을 더 차야하는 귀중한 시간을 낭비한 꼴이 된 것이다. 이는 국가대표팀 경쟁력 하락으로도 이어졌다.

가장 큰 문제점은 대회가 한정됨에 따라 재능 있는 저학년 선수들이 출전 기회를 받지 못했다. 유소년 레벨에선 한 살 차이도 골격이나 근육구조에 차이가 나 당장 성적을 내기 위해 우선적으로 3학년 선수를 출전시키고 있다. 못하는 팀들은 예선만 치르고 집으로 돌아가만 했다

당시 정책에 따라 대회 수가 줄었는데 전국대회에서 입상해야 대학에 진학 할 수 있는 입시제도 역시 아이러니하기 그지없었다. 고교 선수들의 전국대회 수시전형 입시반영이 후반기 대회는 반영되지 않았다.

결국 잘못된 체육 정책이었음을 깨닫는데 9년의 시간이 걸렸다. 대한축구협회는 올해부터 학기 중 대회를 부활시키고 있다. 고등리그 왕중왕전과 겸해 열린 선수권대회도 개별 대회로 분리해 6월부터 개최했다. 선수권대회는 사실상 고교 무대 최강자를 가리는 대회로 평가 받았지만 2009년 시작한 고등리그 왕중왕전과 의미가 겹친다는 이유로 협회는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두 대회를 함께 치러왔다.

늦더라도 이런 조치는 향후 학원축구의 발전을 위해 매우 긍정적이다. 단기 대회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지속적인 연령별 리그가 많아져야 한다. 당장의 경기력이 뒤쳐지는 학생들도 경기에 출전기회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경기에서 소외되는 연령별 사각지대를 없애야한다.


◆ 고교리그의 중요성, 일본 고교야구 100주년에서 얻을 교훈 교훈

일본은 지금 고시엔이 한창이다. 일본 고교야구 최강팀을 가리는 일본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 일명 고시엔이 지난 5일 효고현 니시노미야시 한신 고시엔 구장에서 제100회째 막을 올렸다. 일본 역시 폭염이 한창이지만 고시엔의 열기만큼 뜨겁지는 못했다. 일본 야구팬에게 여름은 고시엔의 계절로 기억된다.

고시엔은 1915년 전국중등학교우승야구대회로 시작됐다. 4만8000석 규모의 구장은 새벽부터 많은 팬들이 몰려 개막전 아침 곧바로 매진됐다. 이번 고시엔 지역 예선에 참가한 학교는 모두 3781개다. 본선에 진출한 학교도 56개에 달한다.

고시엔이 가장 많은 관중을 동원한 대회는 1990년 제72회 대회. 92만9000명이 경기장을 찾았다. 당시 이 대회에는 나카무라 노리히로와 스즈키 이치로 선수가 출전했다. 1991년에도 마쓰이 히데키선수가 출전, 역대 2번째로 많은 90만 명을 동원했다. 프로야구에 버금가는 인기다.

이렇듯 일본 전역이 열광하는 고시엔 기간에는 공영방송 NHK가 대부분의 경기들을 생중계하며 주요 일간지 스포츠면 대부분이 고시엔 소식으로 가득하다. 고시엔 구장은 연일 매진사례를 기록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선수와 학교 관계자, 팬 등의 교통비와 숙박비, 음식비, 입장료, 고화질 TV 수요 창출, 스포츠 잡지 판매 증가 등을 통해 산출한 결과 이 대회가 유발하는 경제효과가 연간 351억엔(약 3550억원)에 이른다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고등학생 아마추어 대회에 불과한 고시엔이 이토록 폭발적인 인기를 끄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본의 야구 칼럼리스트 키무라 코우이치는 “고교 감독이 프로 감독보다 더 어려운 자리”라고 말한다. 호쾌한 공격력을 자랑하는 타선을 형성한 감독과 수비를 중시한 견실한 팀을 만든 감독. 선수 하나하나는 특출나지 않지만 팀 전체로 끈질기게 상대를 이겨나가는 전술 등 각 학교들과 감독들은 자신들만의 색깔이 있다. 각자만의 뚜렷한 스토리가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에 열광한다.

이런 고고야구가 역사와 전통이 될 수 있도록 함께한 지역 시민들과 언론이 있다. 방송국들은 정규편성을 중단하고 고시엔 경기를 생중계로 프로그램을 편성하며, 언론들은 새로운 고교 야구 스타들을 찾기 위해 눈에 불을 켠다. 고교 야구만을 다루는 잡지만 10종류가 넘으며 고교 야구 검정 시험까지 등장할 정도다.

놀라운 것은 낮 경기에도 평균 시청률이 30%에 웃도는 고시엔이지만 전경기를 대부분 생중계하는 공영방송 NHK는 중계권료를 전혀 받지 않는다. 당장의 몇 푼의 돈보다 야구 발전을 우선시하기 때문이다. 운영진이나 신판진 역시 자원봉사 형식으로 이뤄진다. 원천적으로 자금이 발생하지 않는 구조다. 클럽 형식으로 진행이 되기 때문에 학생들 역시 돈이 없어도 야구를 할 수 있다. 소수정예의 엘리트를 키우는 한국 고교 시스템과 반대되는 부분이다.

일본 고교야구에 사람들이 열광하는 이유는 단순히 우승팀과 스타 선수들만 찾아 볼 수 있는 그 ‘결과’가 아니라 대회 속의 드라마가 있기 때문이다.

일본 프로야구 흥행을 지탱하는 밑바탕이 바로 고교야구다. 세계 최대 프로시장을 가진 미국을 제외하면 일본은 ‘야구의 나라’로 여겨진다. 그 이유 역시 고교야구가 있어 가능했다. 야구팬들은 고교 경기에서 프로야구와 같은 감동을 느끼고 열정을 쏟아낸다.

고시엔의 경우에서 보듯, 고교리그는 차세대 선수와 팬들을 확보할 수 있는 첫 발걸음이다. 기성세대들은 지나간 청춘을 추억할 수 있는 매개로, 재학생들은 지금의 청춘을 바칠 수 있는 성장의 동력이 된다. 일본의 고교야구 시스템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을 가볍게 여길 수 없다.

FC서울 공식 홈페이지 캡처

◆한국도 한걸음씩…FC서울의 유소년 시스템

독일 분데스리가 바이에른 뮌헨, 프랑스 리그앙의 파리생제르맹. 한 리그에서 독주하는 팀들이다. FC서울은 어쩌면 10년 안에 K리그 안에서 독보적인 위치에 오를 가능성을 기대할 만 하다. 유소년 시스템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

FC서울은 유럽을 비롯한 외국에서 일반화된 신체 교육 클럽 시스템을 지향한다. 굳이 선수로 키우지 않아도 학교와 가정이라는 틀 안에서 축구를 즐기도록 유도한다. 지속적인 축구 교육과 환경을 제공해 누구든 가볍게 다가갈 수 있게 만들었다.

FC서울은 구역을 세분화시켜 동서남북 원팀드, 파워풀, 와이즈, 브레이브 총 4개야드로 체계적인 시스템 아래 나눠서 관리하고 있다. 동부에 포스 1팀, 서부에 포스 2팀으로 나뉜다. 체계적인 코칭스태프와 유소년 연령별팀을 거쳐서 축구를 하게 된다.

유소년 축구 교실에서 시작해 피라미드 형식으로 상위단계로 계속 올라가는 시스템이다. 유소년에서 초등학교, 중고등학교에 이어 최종적으로 FC서울의 2군까지 올라가게 되면 팀의 선수자원이 되기도 한다

클럽시스템과 엘리트시스템이라는 두 가지 큰 틀에서 운영되는 FC서울의 유소년 시스템은 한국에서는 독보적인 방식이다. 일상에서 축구를 즐기는 취미 반에서 재능이 있는 유소년 선수를 발굴해 연령별로 팀을 구성한다. FC서울은 U-12, U-15 두 팀을 운영해 연령병 주말리그에 출전중이다. 기성용과 이청용이 이러한 FC서울 유소년 시스템의 산물이다.

결국 장기간으로 봤을 때 취미반 육성이 선수뿐 아니라 충성심 있고 열렬한 서포터즈가 되는 것이다. 선수가 되지 않더라도 몇 년, 많게는 십년까지 FC서울을 가슴에 달고 뛴 학생들은 팀과 K리그의 평생 팬으로 남는다. 대한축구협회 차원에서 직접적인 투자가 불가능 하다면 프로구단만이라도 유소년 시스템에 있어서 FC서울의 방식을 참고할 만 하다.

송태화의 인저리타임
인저리타임. 전광판의 시계는 아직 멈추지 않았습니다. 송태화 기자가 함성소리에 스며드는 이야기를 전하는 스포츠 연재입니다.

송태화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