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춘(79)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항소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고도 6일 새벽 12시5분 석방돼 화제다. 대법원은 김 전 실장 사건을 전원합의체에 회부하면서 구속 연장을 직권 취소했다. 김 전 실장은 구속기한 만료에 따라 석방됐다.
승승장구하다 바닥까지 떨어졌던 그의 삶에 한줄기 빛이 다다른 셈이다. 상고심에서 형이 확정되면 다시 수감될지언정 일단 당장 가족과 함께 하룻밤을 보낼 수 있었다. 게다가 구치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안락한 종합병원에서 당분간 생활을 이어갈 예정이다.
김 전 실장은 박근혜 전 대통령 시절 최고 권력자 중 하나였다. ‘만인지상 일인지하’에 놓인 ‘왕실장’으로 불렸다. 박정희 유신 정부 시절부터 박 전 대통령과 인연을 맺은 김 전 실장은 실패를 모르는 인물이었다.
검찰 출신의 그는 서울지검 공안부장, 대검 특수1과장, 법무부 검찰국장 등 요직을 두루 거친쳤다. 중앙정보부 최연소 대공수사국장 파견근무, 청와대 법무비서관 등을 거쳤다. 노태우 정권 시절 이례적으로 검찰총장과 법무부 장관을 모두 역임했다. 법무부에 근무하던 평검사 시절 박정희 정권의 유신헌법 초안 작성에 참여하기도 했다.
정치권에서도 화려한 경력을 쌓았다. 신한국당과 한나라당에서 15~17대까지 국회의원으로 내리 3선에 성공했다. 한나라당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소장,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도 맡았다. 74세였던 2013년에는 박 전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정권 2인자’의 자리에 올랐다. 2015년까지 비서실장을 지냈고, 박근혜 정부의 막후 실세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검사로서, 정치인으로서 실패를 모르는 삶을 살아왔지만 그에 대한 악평 또한 늘 떠나지 않았다. 김 전 실장은 1992년 대선 직전 벌어진 ‘초원복집’ 사건으로 악명을 얻었다. 법무부 장관에서 물러난 직후 부산 지역 기관장들을 식당에 모아 불법 선거지원을 독려한 사건이다.
공안검사로 이름을 날리던 시절 강압적인 수사를 진행했다는 의혹도 계속 받아왔다. ‘국정 농단’ 사건과 관련해 국회 국정조사특위 청문회에서는 “나는 모릅니다”라는 식의 태도로 일관해 ‘법미꾸라지’ ‘법꾸라지’라는 악명을 하나 더 얻기도 했다.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