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만 있어다오” 지적장애 딸과 36년만에 만난 부모의 사연

입력 2018-08-05 16:24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살아만 있어다오. 부디 좋은 사람들 곁에서 살아만 있어다오.”

36년간 잃어버린 딸을 애타게 그리던 70대 노부부가 경찰의 도움을 받아 딸과 극적으로 재회했다. 5일 광주 서부경찰서에 따르면 지난 4월 ‘36년 전 잃어버린 딸을 찾아달라’는 정모(76·여)씨의 신고가 접수됐다.

정씨는 딸 나모(42·여)씨와 1982년 4월 28일 광주에서 연락이 끊겼다. 나씨가 6살 때였다. 딸은 광주 서구 양동시장에서 장사를 했던 어머니가 일하는 사이 집을 나갔다 돌아오지 않았다. 어머니는 애가 탔지만 생활고에 시달리며 장애가 있는 다른 자녀들을 돌보느라 딸을 찾을 엄두를 내지 못했다. 지적장애로 의사표현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딸의 행방을 찾기는 어려울 것이라 생각했다. 부모는 딸을 가슴 속에 묻은 채 힘든 세월을 보냈다.

정씨가 딸을 찾기로 마음을 먹은 건 남편이 말기암으로 투병생활을 시작하면서다. 나씨의 아버지는 눈을 감기 전 꼭 딸을 보고 싶었다. 경찰은 정씨의 신고를 받고 본격적인 수사에 나섰다. 신고 내용을 바탕으로 재래시장 주변을 샅샅이 뒤졌고, 실종 당시의 인상착의를 근거로 실종아동 데이터베이스도 조회했다. 하지만 행적을 찾긴 어려웠다.

그러던 중 반가운 소식이 전해졌다. 어머니 정씨에게 채취한 유전자 정보를 실종아동 전문기관에서 관리 중인 유전자 정보와 비교한 결과 유사한 유전자 정보를 가진 최모(40·여)씨가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후 2차 유전자 검사를 진행했고, 최씨는 실종됐던 정씨의 딸 나씨인 것으로 확인됐다.

딸은 2006년 1월 장애인복지사에게 발견돼 경기 파주시의 한 장애인 보호시설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나씨는 자신의 나이와 이름을 잃은 채 12년째 ‘1978년 4월 3일 태어난 최○○씨’로 살고 있었다. 지난 4일 잃어버린 딸과 극적으로 상봉한 가족들은 경찰에 연신 감사의 뜻을 표했다. 어머니 정씨는 “고통 속에서 지낸 36년이었다. 이제 다시 한 가족으로 살게 돼 기쁘다”고 했다. 아버지는 딸에게 “미안하다”고 말했고, 딸은 자신을 찾아준 부모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경찰 관계자는 “부모가 딸에게 원래 지어줬던 이름을 알려주고 불러줬다”며 “다른 기관과 연계해 함께 살 수 있도록 법적, 행정적 지원을 하겠다”고 말했다.

강경루 기자 r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