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김다미(23)는 올해 영화계에 떠오른 가장 빛나는 별이다. 물론 아직 한 해의 절반 정도밖에 안 된 시점이긴 하지만. 영화 ‘마녀’(감독 박훈정)의 성공은 괄목할 만한 것이었다. 작품 경력이 전무했던 신인이 주연으로서 제 존재감을 발휘하며 무려 318만 관객을 매료시켰다. 그야말로 판타스틱한 데뷔다.
“스크린에 제 모습이 너무 크게 나와서 신기했어요(웃음). 내가 저런 표정으로 연기를 했었나 싶더라고요. 다르게 해봤으면 어땠을까 싶기도 하고. 일단 아쉬운 부분이 많이 보였던 것 같아요.” 개봉 즈음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난 김다미는 아이처럼 말간 미소를 함빡 머금은 채 얘기했다.
“기사를 통해 ‘마녀’ 오디션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접수를 하고 제작사에 가서 오디션을 봤는데 3차 만에 합격 통보를 받았어요. ‘정말 내가 된 건가’ 얼떨떨했죠. 사무실을 나와서 부모님께 전화를 드렸더니 너무 좋아하시는 거예요. 그때 ‘정말 됐구나’ 실감이 났어요. 근데, 그 기쁨은 잠깐이었죠(웃음).”
곧바로 고강도 액션 훈련이 시작됐다. 극 중 김다미가 연기한 자윤은 DNA 조작으로 만들어진 초인(超人). 다시 말해, 특별하게 탄생했으나 평범한 행복을 갈망해 떠났다가 다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나서는 소녀이다. 순수와 아픔, 광기에 이르는 감정 표현부터 뛰어난 신체 능력을 활용한 액션까지 두루 소화해야 했다.
김다미는 “나는 원래 몸을 잘 못 쓰고 운동을 즐기지도 않는다. 그렇게 운동을 많이 해본 적도 없었다”며 “하루 3시간씩 매일 훈련했다. 초반엔 온몸에 알이 배겨 못 움직일 정도였는데, 점점 변화가 보이니 재미있더라. 촬영 직전엔 합 맞추는 연습을 반복적으로 했다. 좀 더 시간 여유가 있었으면 좋았을 뻔했다”고 설명했다.
첫 촬영부터 긴장보다는 설렘이 컸다. 어려운 게 생기면 감독에게 달려가 몇 번이고 물었다. 집에 돌아오면 늘 대본을 끼고 살았다. 보고 또 보는 게 방법이란 생각이었다. 그렇게 50회차를 찍었다. 마지막 촬영이 끝난 뒤 울컥했던 건 그 지난날의 모든 감정들이 밀려왔기 때문이리라. 이제는 스스로도 얼마간 성장했음을 느낀다.
“이렇게 긴 기간 동안 한 캐릭터를 맡아 연기한 건 처음이거든요. 정말 많은 걸 배웠어요. 연기를 계속해 나갈 사람으로서 제게 좋은 출발점이 돼준 작품이란 생각이 들어요. ‘마녀’를 찍고 전과 후가 어떻게 바뀌었는지 일일이 나열할 순 없어요. 하지만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경험했죠. 배우로서 뭔가 해냈다는 것 자체가 행복해요.”
어릴 때부터 TV와 영화를 보는 게 좋았던 아이. 화면 속 배우들이 연기하는 감정을 자신도 똑같이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만 했다. 그렇게 막연히 배우라는 직업을 가슴에 품었다. 보통의 성적과 보통의 성격. 학창시절 유달리 끼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배우 말고 다른 직업을 생각해본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김다미는 “어릴 적 친구들에게 배우가 되고 싶다고 얘기할 때마다 민망했다. 친구들은 늘 너는 끼도 없는데 어떻게 연예인이 되냐고 했었다. 그런데도 바보같이 배우가 되고 싶었다”고 털어놨다.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된다는 점이 연기의 가장 큰 매력인 것 같아요. 그 자체가 소중한 경험이 아닐까 싶어요.”
고2 때부터 연기학원을 다녔고, 인천대 공연예술학과에 진학해 연극 무대와 독립영화 현장을 차례로 경험했다. ‘나를 기억해’(2018)의 이유영 아역으로 처음 관객에 얼굴을 비췄고, 연이어 ‘마녀’ 여주인공으로 합류했다. 그리고 ‘마녀’를 통해 제22회 판타지아 국제영화제 ‘슈발누와르 최고여배우상’을 거머쥐었다.
“제가 뭘 잘해서 됐다기보다 운이 좋았던 것 같아요. 제 성격상 이런 (외부적인) 관심들에 대해 최대한 신경을 안 쓰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이 마음으로 꾸준히 가지고 갔으면 좋겠어요. 어디에도 휘둘리지 않고요.”
‘마녀’에 캐스팅되면서 소속사 매니지먼트AND와의 인연도 닿았다. 김다미는 “한순간에 두 가지를 얻었다는 게 행복했다”면서 “연기할 수 있는 기회와 연기할 환경을 만들어줄 수 있는 회사도 만나게 되다니, 내가 살면서 쓸 운을 이번 해에 다 쓰나 싶을 정도였다”고 웃었다.
시작부터 뜨거운 주목을 받았다. 물론 부담이 없진 않다. “(최)우식 오빠도 ‘거인’을 찍고 나서 슬럼프를 겪었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저도 그런 순간이 오지 않을까 무섭기도 해요. 근데 아직까진 부담감을 느끼려 하지 않고 있어요. 최대한 지금 이 상태를 유지해 보려고요(웃음).”
배우로서의 목표를 물으니 “오래 연기하는 것”이라는 답을 돌려줬다. “그러기 위해선 다양한 모습을 보여드려야 할 것 같다”고도 했다. 싱그러운 미소를 바라보다 앞으로 만나게 될 김다미의 여러 얼굴들이 궁금해져 버렸다. “부족한 부분을 채워나가는 게 우선일 것 같아요. 장르에 구애받지 않고 뭐든 도전해보고 싶어요.”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