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이용호에게 서류봉투 건넨 성 김, 알고보니 ‘트럼프 친서’

입력 2018-08-04 17:47 수정 2018-08-04 19:09
4일 오후 싱가포르 엑스포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2018 아세안외교안보포럼(ARF)에 참석한 이용호(왼쪽) 북한 외무상이 성 김 주필리핀 미국 대사가 건넨 서류를 손에 들고 대화하고 있다. 뉴시스

북·미 비핵화 실무협상을 맡았던 성 김 주필리핀 미국대사가 4일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이 열린 싱가포르에서 이용호 북한 외무상에게 서류 봉투를 건네는 장면이 카메라에 잡혔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트위터를 통해 이 외무상과 깜짝 회동한 사실을 전하며 “미국 대표단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친서에 대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회신을 보낼 기회를 가졌다”고 밝혔다. 김 대사가 이 외무상에게 전한 의문의 봉투가 트럼프 대통령의 친서임을 확인한 것이다.

폼페이오 장관과 이 외무상은 이날 오후 싱가포르 엑스포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ARF 리트리트(비공식 자유토론) 전 포토세션에서 마주쳤다. 폼페이오 장관이 먼저 이 외무상에게 다가가 악수를 건넸고 두 사람은 웃는 얼굴로 잠시 대화를 나눴다. 양 장관은 지난 3일 나란히 싱가포르에 입국했지만 이때까지 따로 접촉은 하지 않았다.

4일 오후 싱가포르 엑스포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2018 아세안외교안보포럼(ARF)에서 성 김 주필리핀 미국 대사(오른쪽)가 이용호 북한 외무상에게 서류 봉투를 전달한 뒤 말을 건네고 있다. 뉴시스

포토세션이 끝나고 김 대사는 이 외무상이 있는 자리로 다가가 자연스럽게 봉투를 건넸다. 당시 상황을 촬영한 영상을 보면 김 대사는 봉투를 건네면서 무엇인가 말을 전하고, 이 외무상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이 외무상은 김 대사의 봉투를 전달받고도 별로 놀라는 기색이 없다. 북·미 간 사전에 친서 전달 과정이 조율됐다는 얘기다. ARF 리트리트가 시작되기 전 외교부 당국자는 기자들과 만나 “북·미 간 조우의 기회는 있을 것 같다”며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어느정도 운을 뗐다.

트럼프 대통령의 친서를 받아든 이 외무상 바로 옆에는 공교롭게도 왕이(王毅)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이 앉아 있었다. 왕이 부장과 이 외무상은 3일 북·중 외교장관 회담을 했다.

4일 오후 싱가포르 엑스포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2018 아세안외교안보포럼(ARF)에서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과 이용호 북한 외무상이 웃는 얼굴로 악수하며 인사하고 있다. 뉴시스

폼페이오 장관이 봉투 안에 든 내용물이 트럼프 대통령의 회신임을 확인하기 전까지 봉투가 밀봉돼 있지 않고 이 외무상이 이를 곧바로 열어봤다는 점에서 비핵화 협상을 진전시키기 위한 실무 자료라는 관측이 많았다.

ARF를 계기로 북·미 외교장관 회담이 정식으로 열리진 않았지만 양 정상이 친서를 주고받은 만큼 비핵화 협상에 물꼬가 트일지 주목된다. 미 국무부가 공개한 폼페이오 장관의 일정에 따르면 그는 ARF 리트리트 참석 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로 이동해 레트노 마르수디 외교장관과 회담한다.

싱가포르=권지혜 기자 jh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