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외교장관 회담 거부한 北이용호 “회담 응할 입장 아냐”

입력 2018-08-04 00:52 수정 2018-08-04 11:22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3일 싱가포르 엑스포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2018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만찬 행사에서 이용호 북한 외무상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외교부 제공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3일 이용호 북한 외무상을 만나 남북 외교장관 회담을 제안했지만 이 외무상이 거부해 무산됐다.

강 장관과 이 외무상은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개막에 앞서 싱가포르 엑스포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환영 행사에서 마주쳤다. 외교부 당국자는 “강 장관과 이 외무상이 자연스럽게 조우해 남북, 북·미 정상회담 이후 여러 상황에 대해 상당히 솔직한 의견을 교환했다”며 “대화 중 우리 측이 외교장관 회담 필요성을 타진했는데 북측은 ‘회담에 응할 입장이 아니다’라는 반응을 보였다”고 전했다.

이 외무상은 강 장관에게 회담 거부 이유를 설명했으나 구체적인 내용이 전해지지는 않았다. 이 당국자는 “남북 외교장관 간 별도 회담은 무산됐지만 만찬장에서의 접촉을 통해 상대방의 입장을 다시 한번 이해하고 우리 생각도 전달하는 기회를 가졌다”고 말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3일 싱가포르 엑스포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2018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만찬 행사에 참석하고 있다. 뉴시스

남북 외교장관 회담은 외교부가 상당히 공을 들여온 이벤트다. 이날 만찬장에서의 조우도 강 장관이 먼저 다가가 “이야기 좀 하자”고 하면서 이뤄졌다. 강 장관은 지난 6월 취임 1주년 기자회견 때 ARF에서 이 외무상과 만날 것인지 묻자 “남북 정상이 두 번이나 만났는데 외교장관이 한 장소에 있으면서 만나지 않는다는 게 오히려 이상할 것”이라며 “좋은 회담이 될 수 있도록 준비하겠다”고 했었다. 외교부는 실무선에서 북측에 외교장관 회담을 제안했는데 북측은 아무런 답을 주지 않다가 이 외무상이 직접 거부 의사를 밝힌 것이다.

북한은 미국이 대북 제재 유지를 강조하고, 종전선언에 호응하지 않는 상황에서 남북이 만나 할 수 있는 얘기가 제한적이라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과거에도 회담 수용 여부를 직전에서야 상대국에 통보하는 행태를 보였다. ARF는 북한이 유일하게 참여하는 다자안보협의체다.

남북 외교장과 회담이 불발되면서 북·미 회담도 불투명해졌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4일 오전 강 장관과 한·미 외교장관 회담을 한 뒤 별도 기자회견을 할 예정이다. 이후 ARF 리트리트(비공식 자유토론)와 플레너리(총회)가 이어지는 일정을 감안하면 따로 시간을 잡기가 어려워 보인다. 폼페이오 장관의 기자회견은 당초 오후에 열리는 것으로 공지됐다가 앞당겨졌다.

싱가포르=권지혜 기자 jh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