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3일 이용호 북한 외무상을 만나 남북 외교장관 회담을 제안했지만 이 외무상이 거부해 무산됐다.
강 장관과 이 외무상은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개막에 앞서 싱가포르 엑스포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환영 행사에서 마주쳤다. 외교부 당국자는 “강 장관과 이 외무상이 자연스럽게 조우해 남북, 북·미 정상회담 이후 여러 상황에 대해 상당히 솔직한 의견을 교환했다”며 “대화 중 우리 측이 외교장관 회담 필요성을 타진했는데 북측은 ‘회담에 응할 입장이 아니다’라는 반응을 보였다”고 전했다.
이 외무상은 강 장관에게 회담 거부 이유를 설명했으나 구체적인 내용이 전해지지는 않았다. 이 당국자는 “남북 외교장관 간 별도 회담은 무산됐지만 만찬장에서의 접촉을 통해 상대방의 입장을 다시 한번 이해하고 우리 생각도 전달하는 기회를 가졌다”고 말했다.
남북 외교장관 회담은 외교부가 상당히 공을 들여온 이벤트다. 이날 만찬장에서의 조우도 강 장관이 먼저 다가가 “이야기 좀 하자”고 하면서 이뤄졌다. 강 장관은 지난 6월 취임 1주년 기자회견 때 ARF에서 이 외무상과 만날 것인지 묻자 “남북 정상이 두 번이나 만났는데 외교장관이 한 장소에 있으면서 만나지 않는다는 게 오히려 이상할 것”이라며 “좋은 회담이 될 수 있도록 준비하겠다”고 했었다. 외교부는 실무선에서 북측에 외교장관 회담을 제안했는데 북측은 아무런 답을 주지 않다가 이 외무상이 직접 거부 의사를 밝힌 것이다.
북한은 미국이 대북 제재 유지를 강조하고, 종전선언에 호응하지 않는 상황에서 남북이 만나 할 수 있는 얘기가 제한적이라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과거에도 회담 수용 여부를 직전에서야 상대국에 통보하는 행태를 보였다. ARF는 북한이 유일하게 참여하는 다자안보협의체다.
남북 외교장과 회담이 불발되면서 북·미 회담도 불투명해졌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4일 오전 강 장관과 한·미 외교장관 회담을 한 뒤 별도 기자회견을 할 예정이다. 이후 ARF 리트리트(비공식 자유토론)와 플레너리(총회)가 이어지는 일정을 감안하면 따로 시간을 잡기가 어려워 보인다. 폼페이오 장관의 기자회견은 당초 오후에 열리는 것으로 공지됐다가 앞당겨졌다.
싱가포르=권지혜 기자 jh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