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최대인 외환보유고, 그래도 ‘실탄’이 더 필요?

입력 2018-08-04 05:00
3일 오전 서울 중구 KEB하나은행에서 직원이 달러를 정리하고 있다. 한국 외환보유액은 5개월 연속 사상최대치를 기록했다. 사진=뉴시스

한국의 외환보유액이 더 든든해졌다. 신흥국들의 도미노 금융위기 가능성 등 대외환경이 악화되는 가운데 외환보유액 증가는 긍정적인 소식이다. 한국이 기축통화국들과 미리 맺어놓은 통화스와프도 ‘보험’이 될 수 있다.

다만 만약의 상황을 대비해 ‘실탄’이 더 필요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무역전쟁 격화 및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 등 대외 환경이 나빠지고 있는 상황을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외환보유액이 현재보다 1000억 달러 정도 더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한국은행은 국내 외환보유액이 지난달말 기준 4024억5000만 달러를 기록했다고 3일 밝혔다. 지난 3월 이후 5개월 연속 사상최대치를 갈아치웠다. 주요국과 비교하면 한국의 외환보유액 규모는 9번째다. 중국, 일본, 스위스, 사우디아라비아, 대만, 러시아, 홍콩, 인도 다음이다.

외환보유액은 지난 1997년 외환위기의 악몽을 겪은 한국에는 민감한 문제다. 1997년 당시와 비교하면 현재 외환보유액은 100배 이상 늘었다. 국내 외환당국은 현재 외환보유액이 적정 수준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국내 경상수지 흑자가 이어지고 있다. 한국은행이 같은 날 발표한 ‘6월 국제수지(잠정)’를 보면 경상수지 흑자는 2012년 3월 이후 76개월 연속 흑자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한국 경제의 기초체력도 금융위기를 걱정할 수준은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한국이 기축통화국들과 맺어둔 통화스와프 협약도 유사시 안전판으로 작용한다. 한국은행은 지난해 캐나다와 한도와 만기가 없는 통화스와프를 체결했다. 지난 2월 스위스와 3년간 100억 스위스프랑(106억 달러) 규모의 계약을 체결했다. 스위스프랑과 캐나다달러는 국제금융거래의 기축이 되는 6대 기축통화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통화스와프는 개인이 현금이 없을 때 사용하는 마이너스통장처럼 상대국의 자금을 끌어와 자국 금융기관에 공급할 수 있는 제도다.

하지만 국내 외환보유액이 적정 수준인지는 늘 논란의 대상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한국의 적정 외환보유액을 3814억∼5721억 달러로 제시했었다. 하지만 이 수준에 근접한다고 해서 안전하다는 보장은 없다. 최근 아르헨티나의 외환보유액은 IMF 권고와 비슷한 수준이었지만 자국 화폐가치 급락을 막지 못했다. 물론 이는 아르헨티나 경제의 기초체력이 취약한 것도 작용했다.

외환보유액을 무작정 늘리는 것도 능사는 아니다. 외환보유액을 늘리는 데도 채권 발행에 따른 이자비용 등이 필요하다. 보통 외환보유액은 미국 국채 등 안전자산에 투자되는데 국채 수익보다 채권 발행 비용이 더 들어갈 수 있다.

하지만 한국처럼 대외환경에 취약한 국가는 외환보유액이 더 든든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한국은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통화를 갖지 못했고, 외국 투자자의 비중이 높은 국가라 자본유출 위험성을 항상 안고 있기 때문이다. 건국대 오정근 금융IT학과 특임교수는 “외국인 주식·채권 자금 등 금융위기 시 빠져나갈 수 있는 자금들을 고려하면 2000억 달러는 더 필요하다”며 “한국이 맺어놓은 통화스와프 등을 감안하면 1000억 달러가 더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연세대 경제학부 김정식 교수는 “외환보유액은 국부와 연관이 되기 때문에 더 늘어나는 게 좋다”면서도 “현재 한국은 외환시장 개입 공개 등의 문제로 외환보유액을 늘리기 어려운 측면이 있어서 문제”라고 말했다.

나성원 기자 na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