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 전 권익위원장도 똑 부러진 대입 제도를 내놓지 못했다.
대학수학능력시험 선발 비율 45% 의무화와 수능 절대평가 전환이란 ‘물과 기름’처럼 섞일 수 없는 정책 사이에서 결론을 내지 못했다. 대입 개편 논의는 사실상 원점으로 돌아갔고 갈등의 골은 더 깊어질 조짐이다. 다만 수능으로 뽑는 인원이 늘어나고 당분간 상대평가 방식을 유지하는 쪽으로 가닥이 잡힐 전망이다.
대통령직속 국가교육회의 대입제도개편 공론화위원회는 3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대입제도개편 공론화 결과’를 발표했다. 공론화위는 현재 중3 학생들이 치를 2022학년도 대입 제도를 네 가지 시나리오로 압축하고, 일반 시민 490명의 선호도를 조사해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방안을 내놓기로 했었다.
수능 선발인원 비중을 45% 이상 의무화하는 시나리오 1이 최고점을 받았다. 이 방안대로라면 전국의 모든 학과는 수능으로 신입생 절반 가량을 뽑아야 한다(수시에서 정시로 이월하는 인원 포함 시). 시나리오 1은 시민참여단 490명이 참여한 5점 만점의 지지도 조사에서 평균 3.40점을 받았다.
그러나 수능 전 과목을 절대평가로 전환하는 방안도 높은 지지를 받았다. 수능이 절대평가로 전환되면 주요 대학들은 변별력을 이유로 수능으로 학생을 선발하는 비율을 줄일 가능성이 높다. 시민참여단은 이 방안에 3.27점을 줬다. 공론화위가 밝힌 오차범위는 평점 0.23점이다. ‘지지한다’ 또는 ‘매우 지지한다’를 선택한 비율로 본 지지비율 비교에서도 시나리오 1은 52.5%, 2는 48.1%였다. 오차범위는 7.8%포인트다. 공론화위는 “시나리오 1과 2 사이에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차이는 없다”고 설명했다.
상극인 두 시나리오 사이에서 결론을 내지 못한 것이다. 대입 제도를 일반 시민에게 물어보고 정한다는 대입제도 공론화는 잇단 교육정책 실패에 따른 문재인정부의 책임 회피성 꼼수란 지적이 많았다. 공론화를 통해 첨예한 갈등을 봉합하고 타당한 결론에 도달한 게 아니라 오히려 사회적 혼란이 더욱 증폭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김영란이란 ‘스타’를 영입했어도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이번 결과는 국가교육회의에 제출된다. 국가교육회의 소속 대입개편 특위는 이를 바탕으로 7일 교육부에 넘길 대입제도 개편 권고안을 발표한다. 교육부는 권고안을 바탕으로 8월 말 최종안을 내놓는다. 대입 특위와 교육부는 시나리오 1과 2 사이에서 절충점을 모색할 것으로 보인다. 국가교육회의 관계자는 “공론화 결과 보고서의 ‘조사결과의 함의 부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귀띔했다. 조사결과의 함의 부분을 보면 “2022학년도 수험생들을 위한 학생부위주 전형의 지속적인 확대에 제동을 걸고 수능위주 전형의 일정한 확대를 요구한 것으로 판단된다”라고 돼 있다. 대입 특위와 교육부에 수능위주 전형 확대와 수능 상대평가 유지를 요구한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시나리오 1처럼 수능 선발 비율을 의무화할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공론화 실패의 후폭풍은 거셀 전망이다. 당장 시나리오 1을 주장하는 ‘공정사회를 위한 국민모임’ 등 시민·학부모 단체는 “국민의 뜻이 확인됐다. 정시 45% 이상 선발하는 내용으로 고등교육법 개정안을 추진하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1위를 했기 때문에 절충안에 만족할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반면 시나리오 2를 주장해온 ‘사교육걱정없는세상’ 등 교육시민단체들은 “공론화 결과 다수안은 없다”며 “공론화위는 무책임하고 불공정한 운영으로 결국 시간만 낭비했다. 정부가 (대입 개편안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교육계 관계자는 “문재인정부가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하청-재하청으로 정책을 떠넘기다 일반 시민이 정하는 공론화까지 갔는데 이마저도 실패한 듯하다. 혼란이 커질수록 사교육 업체들만 좋아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도경 기자 yid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