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부터 매달 한 통씩 벌써 세 통, 김정은 ‘편지’의 노림수

입력 2018-08-03 11:10 수정 2018-08-03 11:20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6월 1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백악관에서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으로부터 전달받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친서를 들어보이고 있다. 댄 스카비노 백악관 소셜미디어국장 트위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6월부터 매달 한 통씩 ‘편지’를 보내고 있다. 이번이 벌써 세 번째 친서다. 김 위원장의 친서는 북·미 관계 주요 변곡점마다 트럼프 대통령의 위신을 세워주는 역할도 하고 있다. 이를 두고 ‘개인적 외교’를 펼치는 트럼프 대통령의 성향을 북한이 정확히 간파하고, 이를 활용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백악관은 2일(현지시간) 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친서를 보냈으며 트럼프 대통령도 곧 답장을 보낼 예정이라고 밝혔다. 친서의 내용이나 전달 경로는 아직 공개되지 않았지만, 북한이 지난달 27일 한국전 참전 미군 유해 55구를 송환하면서 함께 보낸 것으로 추정된다.

김 위원장은 지난 6월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양국 관계가 악화일로를 걷고 있을 때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을 워싱턴으로 보내면서 첫 친서를 보냈다. 김 부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김 위원장의 친서를 전달하는 장면은 백악관을 통해 전 세계에 타전됐고, 사실상 ‘6·12 북·미 정상회담’ 개최를 확정 짓는 계기가 됐다.

김 위원장은 지난달 6~7일 방북한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을 통해서도 자신의 친서를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냈다. 당시 폼페이오 장관이 김 위원장과 면담도 하지 못하고, 한반도 비핵화와 관련한 구체적인 합의 사항도 도출하지 못한 채 귀국하자 미국 내에서는 ‘빈손 방북’이라는 비판 여론이 일었다. 그러자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의 두 번째 친서를 전격 공개하며 반격에 나섰다. 김 위원장은 이 친서에서 비핵화라는 단어를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을 ‘대통령 각하’라고 부르며 2차 북·미 정상회담 개최를 희망한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이 ‘친서’를 자국 정치에 적극 활용하면서, 이달 1일 전달된 김 위원장의 세 번째 친서가 어떤 내용인지와 미국 내부와 북·미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북한과 미국이 종전선언 및 대북제재 완화 문제를 놓고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 상황에서 김 위원장의 친서가 트럼프 대통령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지는 아직 예단하기 어렵다. 북한은 우리 정부를 향해서도 연일 대북제재를 신경 쓰지 말고 남북 경협을 빠르게 추진하자고 압박하고 있다.

북한의 최고 지도자가 미국 대통령에게 친서를 보내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가장 가까운 사례로는 조명록 북한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이 2000년 북한 국방위원장 특사 자격으로 미국에서 빌 클린턴 대통령을 예방하며 김정일 당시 북한 국방위원장의 친서를 전달한 사례가 있다. 이것이 벌써 18년 전이다.

이런 점을 미루어 볼 때, 김 위원장이 6월 이후 3차례나 트럼프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낸 것은 “판을 깨지 않겠다”는 의사를 가장 분명히 전달하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또 김 위원장이 친서를 보낼 때마다 이를 공개한 트럼프 대통령 역시 북·미 협상을 계속 이어가겠다는 뜻을 내비친 셈이다.

김 위원장의 ‘친서 외교’는 트럼프 대통령의 외교 성향을 북한이 정확히 간파하고, 이를 활용하는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3일 “이스라엘이나 러시아를 대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태도를 보면, ‘세계 지도자’를 지향하던 과거 미국의 외교 스타일과는 판이하게 다르다”며 “개인적 관계를 매우 중시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성향을 북한이 정확히 간파하고, 이를 적극 활용하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다만, 종전선언과 대북제재 문제에 대한 양측의 간극은 여전한 상황이다. 북한은 미사일 시험장 폐쇄와 미군 유해송환으로 최소한 종전선언의 ‘대가’는 치렀다고 여기고 있는 반면, 미국은 핵시설 신고와 같은 본질적인 비핵화 작업 없이는 응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남·북·미·중의 외교 수장이 한자리에 모인 현재 싱가포르에 또다시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사실 김 위원장과 친서 정치를 먼저 시작한 것은 트럼프 대통령이다. 그는 ‘6·12 정상회담’ 직전 강도 높은 대미(對美) 비판을 쏟아내자 정상회담을 취소하겠다는 내용을 공개서한 형식으로 발표했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공개서한에서 북한의 태도 때문에 회담을 취소한다면서도 “마음을 바꾸게 된다면 부디 주저 말고 내게 전화하거나 편지해달라”고 여지를 남긴 바 있다.

최승욱 기자 apples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