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 의혹이 있는 러시아 여성이 모스크바 주재 미국대사관에서 10년 넘게 일하다가 뒤늦게 발각돼 해고 조치됐다고 영국 가디언과 미국 CNN방송이 2일(이하 현지시간) 보도했다. 러시아의 2016년 대선 개입 의혹 등 이른바 ‘러시아 스캔들’ 관련 의혹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있다.
가디언에 따르면 이 여성은 러시아 국적자로, 미국 대통령 경호 업무를 맡는 비밀경호국에 고용됐던 것으로 나타났다. 그는 비밀경호국 인트라넷과 이메일을 열람할 권한이 있었으며 대통령과 부통령 일정 등 고급 비밀 정보에 접속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이 여성은 2016년 국무부 지역안보담당관실(RSO) 정례 감찰에서 간첩 혐의가 적발된 것으로 파악됐다. 감찰관들은 이 여성이 러시아 정보기관인 연방보안국(FSB) 요원들과 주기적으로 몰래 접촉해온 사실을 확인했다.
가디언은 비밀경호국이 이 사실을 은폐하려 한 정황도 있다고 전했다. 가디언에 따르면 비밀경호국은 RSO의 경고를 받고도 전면적인 내부 감찰을 실시하지 않았고, 도리어 이 여성을 조용히 해고시키는 식으로 일을 처리하려 했다는 것이다.
한 정보 소식통에 따르면 이 여성은 지난해 중순쯤 국무부로부터 비밀정보 사용 인가를 취소당한 직후 해고됐다. 시기적으로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대(對)러시아 제재에 대한 보복 조치로 러시아 정부가 미국 외교관을 대거 추방하던 때와 겹친다. 미국과 러시아가 서로 외교관을 추방하며 갈등을 벌이던 사이에 이 여성은 별다른 의심을 받지 않고 대사관을 빠져나온 셈이다.
다만 비밀수사국은 이 여성이 대사관에서 일한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중요한 비밀이 유출되지는 않았다고 반박했다. 비밀수사국은 이날 성명에서 “이 여성은 국가 안보 관련 비밀을 입수할 직책에 있지 않았다”면서 “다른 나라도 비밀 정보를 얻을 만한 자리에 외국인 직원을 앉히지 않는다”고 밝혔다.
비밀수사국은 이어 “모든 외국인 직원이 외국 정보 당국의 영향을 받을 수는 있다”면서도 “러시아 주재 미국대사관 소속 외국인 직원의 업무에는 러시아 정부와 FSB, 내무부, 연방경호국(FSO) 등에 번역, 통역, 문화지도, 연락 및 행정 지원 등 협력도 포함된다”고 부연했다.
미국 정부 고위 관리도 CNN에 “이 여성은 비밀수사국 인트라넷과 이메일 시스템에 접근할 수는 있었지만 국가 안보와는 무관했다”면서 “고급 정보에 접근할 권한은 없었다”고 설명했다.
러시아 스파이로 의심되는 인물이 미국 기관에서 활동하다 적발된 사례는 드물지 않다. 지난달에는 러시아 정보요원인 20대 여성이 미국 전국총기협회(NRA) 등 이익단체를 통해 미국 보수 정치권에 침투하려 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한편 대니얼 코츠 미 국가정보국(DNI) 국장과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등 참모진은 지난 1일 백악관 내부 브리핑에서 러시아가 오는 11월 중간선거에도 개입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고 워싱턴포스트(WP)가 보도했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