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인 폭행사건, “무조건 엄중처벌해야” vs “불구속 수사에 공감”

입력 2018-08-02 14:36
경북 구미 차병원 응급실 폭행 장면(왼쪽)과 응급실에 남아 있는 혈흔(오른쪽) 의사협회 제공

“의료인 폭행은 엄중하게 다스려야 하기 때문에 불구속 수사는 곤란합니다.”

“초범인데다 취업준비생입니다. 깊이 반성하고 있어 고민 끝에 불구속 했습니다.”

지난달 31일 발생한 경북 구미차병원 ‘응급실 의사 폭행 사건’에 대해 경찰이 불구속 수사 방침을 내리자 경북의사협회가 이에 항의하는 등 찬반 논란이 일고 있다.

구미경찰서는 지난 1일 구미차병원 권역응급의료센터에서 만취상태로 전공의를 폭행한 혐의로 A씨(25·취업준비생)를 불구속 입건하고 집으로 돌려보냈다.
경찰에 따르면 A씨는 지난달 31일 오전 4시20분쯤 술에 취한 채 전공의 김 모씨의 정수리를 철제 혈액거치대로 내려쳐 전치 3주의 상처를 입힌 혐의다.

그는 경찰 조사에서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술을 마셨고 술에 취해 의사를 폭행한 사실을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면서 “죽을 죄를 지었으며 피해자에게 사과하겠다”고 진술했다.
구미경찰서는 이봉철 형사과장 등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영장심의위원회를 열고 장시간 고민한 끝에 ‘구속영장을 신청하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다.

심의위는 A씨가 대학을 갓 졸업한 취업준비생인데다 범죄 전력이 없다는 점, 범행 사실을 인정하고 반성하고 있다는 점, 증거가 명백하고 도주 우려가 없다는 점 등을 이유로 이같이 결정했다.
이 과장은 “의료인에 대한 폭력행위는 사안이 중대하다고 인식해 엄정하게 수사를 진행했으나 구속영장의 발부 사유엔 해당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면서 “보강수사를 벌인 뒤 필요할 경우 A씨를 다시 불러 조사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경북지역 의료계는 즉각 반발했다.
경북의사협회(회장 최대집)는 1일 회원 8명이 이성호 구미경찰서장을 찾아 “의료인 폭행사건 발생 시 가해자 엄중처벌”을 강력하게 요구했다.

이 경찰서장은 “대형병원들이 외국처럼 자체 보안요원을 배치해 사고를 예방하거나 발생 시 현장에서 즉각 조치할 수 있는 시스템 도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경북의사협회 관계자는 “관련법에 따르면 의료인 폭행 땐 가중 처벌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실제 처벌은 경미한 수준에 그치고 있다”며 “자칫 큰 피해로 이어질 수 있는 병원 응급실 폭행 범죄에 대한 처벌이 더욱 강화돼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여론은 나눠졌다.
김승곤(44·대구)씨는 “초범이고 술을 마셨다는 이유로 구속영장을 신청하지 않았다는 것은 법 집행의 기본이 아니다”면서 “의료인 폭행은 이유를 불문하고 엄하게 다스려랴 한다”고 주장했다.
이세연(65·경북 청송)씨는 “엄중처벌 원칙에는 찬성하지만 취업준비생으로 스트레스가 심했다는 점과 깊이 뉘우치고 있다는 점에서 구속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경찰의 판단에 공감이 간다”고 말했다.

응급실 의료진이 폭행을 당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달 29일 오전 4시30분쯤 전주 완산구 한 병원 응급실에서 B씨(여·19)가 간호사 2명을 폭행한 혐의로 불구속 입건됐다.
B씨는 화장실에서 잠든 자신을 병상으로 옮기는 간호사를 향해 ‘그냥 놔두라’며 발길질을 하고 주먹으로 얼굴을 때린 혐의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홍철호 의원(자유한국당)이 보건복지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전국 응급의료기관 의료 방해에 대한 신고·고소는 2016년 578건, 2017년 893건, 올해 6월 말 기준 582건 등 최근 2년6개월간 모두 2053건에 이르렀다.

지난달 31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이명수 의원(자유한국당)은 의료인 폭행 관련 처벌조항에 반의사불벌죄 조항을 삭제하고 주취 상태의 폭력 행위에 대해서는 형을 감경하지 않는 내용의 의료법 및 응급의료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구미=김재산 기자 jskimkb@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