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음악의 자산에 대한 활용을 위해 부평 대중음악둘레길이 추진되고 있다.
2일 애스컴시티뮤직아트페어(대표 이장열 박사)에 따르면 20여년간 한국의 대중음악의 중심지였던 부평에 대중음악둘레길을 만들어서 부평이 지닌 가치를 국민들에게 알리는 일에 적극 나서기로 했다.
이와 관련 이장열 박사는 스페이스빔이 출간하는 매거진을 통해 “제주 오름과 같은 자연이 존재하지 않는 부평에서 대중음악둘레길을 만드는 일을 왜 시작하게 되었는가를 살펴봐야 한다”며 “부평은 한반도 내에서 미국 대중음악을 집중적으로 받아낸 곳”이라고 역사적 의미를 부여했다.
그는 같은 글에서 “그것도 광범위하게 수용한 장소로서는 유일하고, 이곳 부평이 한국대중음악사에서도 유래를 찾을 수 없이 유일한 중심 장소였던 점이 생뚱맞지만 부평 도심 한가운데에 부평 대중음악둘레길을 만들 수 있는 유일성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라고 설파했다.
그는 “제주 올레길이 생기면서 제주도가 먼 섬이 아니라 가까이에 있는 섬으로 다가왔다”면서 “제주 오름이 있어서 올레길이 생겼다면 이젠 부평 도심에도 둘레길을 만들 무형의 자산이 존재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 박사가 제시한 부평 대중음악둘레길 1코스는 부평 애스컴시티 일대다. 이곳은 대중음악 소비공간이었다.
그는 같은 글에서 “부평은 1950년대 중반부터 1979년대 중반까지 한국대중음악사에 큰 족적을 새긴 곳”이라며 “미8군의 가장 큰 기지 애스컴시티(미군수지원사령부)가 부평에 자리 잡았다는 이유로 미국의 대중문화가 한반도에 가장 큰 규모로 유입되었다”고 역설했다.
그는 또 “부평 애스컴시티에는 미8군의 미군지원사령부가 자리잡았다. 미국 본토의 미군 전력이 한반도에 전출되어 오면 보충대가 설치된 애스컴시티에 반드시 거처 가야하는 곳이기에 한반도 내 미군기지 가운데 상시적, 유동적 미군 전략이 가장 많았던 특징을 지닌 곳”이라고 해석했다.
실제로 1962년 7월 2일자 동아일보에는 부평 애스컴시티에 근무하고 있는 한국인 노무자가 8000여명, 미군위안부는 1800명 정도가 종사하고 있었다는 기사에서 확인돼 부평 애스컴시티에는 수많은 미군들이 근무했던 것으로 파악된다는 것이다.
이 박사는 “부평 애스컴시티만 7개 캠프가 있었고, 미8군의 위락시설로 분류된 클럽도 한반도 내에서 가장 많았다”면서 “현재까지 파악된 애스컴시티 클럽은 22개로 장교클럽, 부사관클럽, 사병클럽, 극장으로 구분해서 존재했다”고 주장했다.
영내에 22곳의 팝송클럽이 있었다는 것은 이 박사의 주장이 최초다.
이 박사는 “부평 애스컴시티에는 4개의 큰 규모의 Camp Market, Camp Grant, Camp Taylor, Camp Tyler와 작은 규모의 3군데 Camp Adams, Camp Harris, Camp Hayes 포함, 크고 작은 작은 7개 캠프로 구성되어 있다”며 22곳의 클럽의 존재 가능성을 제시했다.
부평 애스컴시티에는 보급창, 의무대, 공병대, 통신대, 항공대 등의 미군 부대들이 자리 잡았다. 121후송병원, 55보급창, 6의무보급창, 565공병자재창, 19병기창, 44통신대, 512정비대대, 55항공대, 8057보충대, 37공병대, 8057보충대, 37보충대, 76보충대, 79병참대대, 44공병대, 76공병대, 70자동차부대, 74자동차부대 등이 자리하고 있었다.
현재 부평 캠프마켓(Camp Market)면적은 약 44만m²이다. 행정구역상 부평구 산곡3동과 산곡4동에 걸쳐 있다. 캠프마켓만 남아 그 규모는 크게 축소되었지만, 여전히 반환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캠프마켓은 2011년 기준으로 군인 1명, 군무원 10명, 한국인 근로자를 포함해 민간인 308명이 근무하고 있으며, 미 육.공군 교역처 베이커리(AAFES BAKERY) 공장만 가동 중에 있다.
이 박사는 “부평 애스컴시티 클럽은 최신 미국 대중음악을 라이브로 들을 수 있었던 공연장이었기에 대중음악이 소비되었던 자산으로 바도 무방할 것”이라며 “ 부평 애스컴시티 클럽에는 미8군 오디션을 통과한 한국 연주자들이 밴드를 구성해서 공연했다”고 언급했다.
이어 “부평 애스컴시티 클럽에서는 매일 밤 한국인 밴드들이 미군들이 좋아하는 음악들을 연주하였던 이유로 한국인 밴드 구성원들은 늘 미국의 최신 대중음악을 연습하지 않으면 안 될 여건이었다”고 전제, “당시 한국에서는 새로운 미국 대중음악의 리듬감각을 한국인 밴드 연주자들이 어느 곳보다 집중적으로 수용하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이 부평에서 연출된 셈”이라고 해석했다.
그는 또 “이런 밴드 연주자들이 자연스럽게 새로운 리듬을 익히게 되면서 한국 대중음악이 새로운 장을 마련하게 된 것이기에 부평 애스컴시티 미군 클럽은 한국 대중음악사에 큰 기여를 한 장소이자 한국 대중음악의 소중한 자산으로 삼을 수 있는 것”이라며 “한국 대중음악사에 새로운 장을 마련해 준 부평 애스컴시티 클럽들을 기억하고 그 장소가 어디에 있었는지, 그곳에서 연주한 한국인 밴드 현황, 밴드가 연주한 곡들을 죄 찾아내어 기록하고 발굴해서 널리 알려내는 일은 부평지역사를 두텁게 할 의미 있는 작업이라고 여겨진다”고 연구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그는 “부평 애스컴시티 주변으로 한국대중음악 중심지로서 그 의미를 간직한 장소 주변으로 부평 대중음악둘레길 1코스를 조성하는 것은 부평지역사와 한국대중음악사를 폭넓게 확장시킨다는 측면에서 마땅하게 진행되어야 할 일”이라며 “부평 대중음악둘레길 조성은 대중음악의 소비 공간으로서, 한반도에서 미국 대중문화의 최대 수용지로서 부평 애스컴시티의 역사성을 복원한다는 측면과 더불어 지역사 관점에서도 뜻깊은 미래 지향성을 띤 실천”이라고 강조했다.
대중음악둘레길 조성의 의미는 또 있다. 이 박사는 “부평에 대중음악둘레길 조성이 가능한 이유는 소비 공간만 존재했다면 가능한 일이 아니다”면서 “대중문화의 유통, 창작 영역이 동시에 존재할 때 부평 대중음악둘레길은 조성 명분이 생길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부평에서는 대중음악의 소비공간으로서 부평 애스컴시티 뿐만 아니라, 유통 공간과 창작 공간이 존재하고 있었다”며 “그래서 부평 대중음악둘레길이 대중문화 관점에서 완벽한 조건을 갖춘 곳으로 부평이 유일하게 존재하는 것”이라고 역설했다.
인천=정창교 기자 jcgy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