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6일 리비아 서부 자발 하사우나 지역에서 한국인 남성 1명이 현지 무장 민병대에 납치당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중대한 자국민 피랍 사건이 이제야 공개된데 대한 설왕설래가 이어지고 있다. 2일 오전 주요 포털사이트에서는 리비아 납치사건과 관련된 ‘엠바고’란 키워드가 검색 상위권을 맴돌고 있다.
엠바고는 ‘보도 유예’를 뜻하는 단어로 취재원과 기자가 서로 협의된 일정 시점까지 보도를 하지 않고 기다리는 걸 말한다. 정부부처에선 통상 일정한 규칙을 가진 기자단이 운영되는데, 취재원인 정부가 엠바고를 요청할 경우 기자단 회의를 통해 해당 엠바고를 받아들일지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통상 외교안보 분야에서 엠바고가 받아들여지는 경우는 국익이나 공익을 보호하거나 자국민의 안전 등이 연관돼있는 사안이다. 리비아 납치건은 자국민의 생사가 걸린 문제라 외교부 기자단도 외교부의 엠바고 요청을 받아들인 것으로 전해진다.
정부가 요청한다고해서 모든 엠바고가 성립되는 것은 아니다. 외교부 기자단은 자체 기자단 가입 규칙에 엠바고에 대한 기준과 합의방식 등을 명시하고 있으며, 이에 어긋나지 않을 경우에만 엠바고를 받아들이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다른 정부부처에서도 엠바고는 수시로 성립된다. 정부가 주요 정책을 발표할 때 특히 자주 등장한다. 정부는 주요 정책들을 국민에게 효율적으로 알리고 홍보하기 위해 언론보도 시점과 방식에 공을 많이 들인다. 이때문에 일반적으로 정부부처 기자단에는 정책이 발표되기 1주일전에 다음주 정책발표 일정 등을 공개하고 발표 당일까지 보도를 유예해줄 것을 요청한다.
정부가 정책 발표 직전까지 보도자료를 손보거나 보완하는 경우가 다반사고, 사회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사안의 경우 부정확한 정보를 담은 보도가 사전에 나갈 경우 논란이 생길 수도 있는 탓에 부처 기자단 대부분이 이를 받아들이는게 일반적이다.
엠바고는 정부부처와 그 기자단 사이에서만 운영되는건 아니다. 취재원과 기자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엠바고가 성립될 수 있다. 딱히 기자단이 조직돼 운영되지 않는 출입처라해도 상황에 따라 기자들에게 사안을 설명하고 엠바고를 요청할 경우 해당 기자들이 이를 받아들이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공공기관이나 기업, 시민단체 등도 필요에 따라 기자들에게 엠바고를 요청한다.
모든 엠바고가 받아들여지고, 또 지켜지는 것은 아니다. 정부부처 기자단의 경우 특히 엠바고를 파기할 경우 규약에 따라 일정기간 출입정지 등 징계 절차를 밟게된다. 하지만 이같은 징계를 감안하더라도 엠바고를 파기하고 보도하는 것이 공익이나 국민들의 알권리 등에 부합한다고 판단할 경우 언론사들은 종종 엠바고를 파기하고 보도에 나서기도 한다.
특정 언론이 엠바고를 파기할 경우 특별한 사정이 없는한 다른 언론들도 엠바고를 파기한다. 이 경우 징계는 보통 맨처음 엠바고를 파기한 언론사에 내려진다.
당초 엠바고를 받아들일 것인가를 놓고 논의하는 과정에서 언론사간 의견충돌이나 갈등이 빚어지는 일도 다반사다. 엠바고가 유지되는 과정에서 정보가 밖으로 유출되는 경우도 간혹 발생한다. 이 경우 정부나 기자단이나 해당 정보에 대해 긍정도, 부인도 할 수 없는 난처한 상황이 되기때문에 통상 긍정도부인도 안하는 ‘NCND’ 입장으로 나오는게 일반적이다.
리비아 납치 사건의 경우 현지에서 동영상으로 납치 사실이 공개되면서 자연적으로 엠바고가 파기된 경우다. 이미 피랍 사실이 영상으로 공개된 이상 더이상 보도를 유예할 이유가 없기때문이다.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