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명적 비난 가능성…철저히 보안 유지 해야”, 양승태 행정처 대법원에 헌재 기능 통합 논의

입력 2018-07-31 18:07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헌법재판소를 대법원으로 통합시키거나 헌재의 위상을 정치적 조직으로 떨어뜨리기 위한 대응팀을 꾸리려고 한 것으로 대외비 문건에서 확인됐다. 사법 권력을 독점하고 싶어 하는 대법원의 의도가 엿보인다.

법원행정처가 31일 공개한 ‘대통령 하야 정국이 사법부에 미칠 영향’ 대외비 보고서에 따르면 2016년 말 탄핵정국 당시 행정처는 개헌 논의가 진행되는 상황을 가정해 헌재를 대법원에 통합시키거나 위상을 떨어뜨릴 방안을 계획했다. 구체적인 조직도를 구성하고 국회의원 등을 설득할 논리를 세웠다.

보고서는 개헌 논의가 이뤄질 가능성에 대비해 ‘개헌대응반’ 내부 팀원과 내·외부 자문역까지 미리 구성 해 놨다. 신속한 보고서 작성이 가능한 지방법원 부장판사와 고등법원 배석판사 등을 팀원으로 구성하고, 정무적 판단과 전략적 사고에 능한 고법 부장판사 2~3명을 내부 자문역으로 두기로 했다. 객관적 시각을 전해줄 수 있는 외부자문역 명단도 만들었다.

보고서에 실린 ‘주의사항’이 눈길을 끈다. 보고서에는 “명단이 유출될 경우 법원이 헌재와의 관계에서 기관이기주의에 사로잡혀 정치적으로 행동한다는 치명적 비난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며 “철저한 보안 유지가 필요하다”고 적혀있다.

최고 사법기관의 기관이기주의적 행태가 ‘치명적 비난’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강력하게 밀어붙이려는 행정처의 치밀함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양승태 대법원장

문건에는 대응반의 구체적인 실행 지침도 나온다. 개헌특위에 참여할 것으로 예상되는 국회의원 명단을 만들고 ‘인맥 지도’를 작성하도록 했다. 각 국회의원들의 친분관계를 파악하고 접촉 루트를 마련해야 한다고 적혀있다. 국회의원 뿐 아니라 의원 보좌관, 국회 공무원, 입법조사관 등에 대해서도 명단을 만들려고 했다.

구체적인 논리 개발 지침도 등장한다. 각 정당의 입장을 파악하고 그에 따른 대응 논리를 개발하기로 했다. 당시 야당(더불어민주당 등)을 설득하기 위한 논리의 예시로 “보수 정권이 헌재를 장악하게 되면 재판소원이 사법부를 통제하는 수단으로 전략할 우려가 있음을 지적”해야 한다고 적었다.

행정처가 궁극적으로 노린 것은 헌재의 중요한 법률적 결정권을 대법원이 흡수해 사법권력의 정점에 대법원을 두려고 했던 것으로 보인다.

문건에서는 “헌재가 법률적 쟁점에 관심을 갖고 법원의 영역을 침해하고 싶어 하는 경향을 보인다. 헌재가 법조 출신 중심으로 구성돼 있기 때문”이라며 “헌재를 탈 법조화해서 정치적 사법기관화를 해야 한다”고 나름의 청사진을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개헌 논의가 아직까지 구체적으로 진행되지 않으면서 이 개헌대응반이 본격적으로 활동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법원행정처는 이날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관련 특별조사단’의 조사보고서에 언급된 410개 문서 파일 중 미공개 문서 파일 228건을 공개했는데 이 문건은 그 중 하나다.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