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변, 양승태 사법부의 ‘주적’… 상고법원 입법 전략에 드러난 본심

입력 2018-07-31 17:34
양승태 전 대법원장. 국민일보 DB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직 시절 법원행정처는 상고법원 입법과 관련한 국회의 반대 움직임을 가장 중요한 극복 과제 중 하나로 보고 있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을 반대 여론을 조장하는 주요 집단으로 지목해 대응 전략을 수립하기도 했다.

법원행정처는 31일 양 전 원장 체제에서 이뤄진 ‘사법농단’ 의혹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확보한 문서 410건 중 미공개 분량 196건(228건 중 중복된 32건 제외)을 법원 전산망에 공개했다. ‘상고법원 입법추진관련 민변 대응 전략’은 그 중 하나다. 이 문건은 ▲검토 배경 ▲현황 분석 ▲대응 전략의 세 항목으로 나뉘었고, 첫 장에 한문으로 ‘對外秘(대외비)’가 적혀 있다.

법원행정처는 박근혜정부 당시 여당 수뇌부, 야당 일부 의원을 중심으로 상고법원 입법과 관련한 반대 움직임이 강하다고 판단했다. 상고법원은 양 전 원장의 재임 때 대법원에서 일부 사건을 관할하는 법원으로 도입이 추진됐지만 제19대 국회에서 처리되지 않아 실현되지 않았다.

법원행정처는 민변이 이 기류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으로 추측했다. 친노(친노무현)계 의원들을 ‘반대 세력의 중심’이라고 특별히 지목해 “민변과 연계성이 강하다”고 기록했다. 당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야당 간사였던 전해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적으로 지목되기도 했다.

법원행정처는 “민변이 그 자체로 변호사단체로서 일반적 여론 형성에 상당한 영향을 주고 있다”고 평가했다. 사법부가 상고법원 입법 이외의 여러 현안에서 민변을 ‘걸림돌’로 보고 있었을 가능성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대법원은 그러면서 “국회와 일반 여론의 상고심 반대 움직임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처하기 위한 방법으로, 민변에 대한 적극적 대응 전략 수립이 필요하다”고 당위성을 강조했다. 이를 실현할 방법으로 “법무부·검찰 출신 의원들에 대한 공략은 부적당하며 민변의 최근 현황 분석하고 실질적 목표를 파악해 적극적 대응 전략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법원행정처는 설득이 쉽지 않은 민변의 핵심 인사를 무시하거나 분리하면서 설득과 협상을 병행하는 ‘강온 양면 전략’을 세웠다. 또 주요 기관·단체마다 맞춤형 전략을 세울 수 있도록 조직마다 목표물을 지정하기도 했다. 기획조정실은 청와대·국회·법무부를, 사법정책실은 민변·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참여연대를, 공보관실은 언론을 맡았다. 법원행정처 차장은 이 모든 전략을 실행하는 컨트롤타워였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