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어떻게 버틸건데?” 아산병원이 ‘태움’ 논란 대하는 법

입력 2018-07-31 17:17

서울 유명병원 신입 간호사였던 박씨는 올해 설 명절을 하루 앞둔 2월 15일 투신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당시 유가족은 병원 ‘태움 문화’를 죽음의 원인으로 지목했다. 태움은 ‘재가 될 때까지 태운다’는 뜻으로 병원에서 선배 간호사가 교육을 명목으로 신입 간호사를 괴롭히는 것을 말한다.

동료에 따르면 사건 이후 다섯달 동안 박씨의 엄마는 딸이 문을 열고 들어올 것만 같은 생각에 내내 괴로워했다고 한다. 사망신고를 차마 하지 못했던 엄마는 이달 10일에서야 딸이 사망했다는 사실을 주민센터에 알렸다. 신고를 마친 지 보름 정도 지났을까. 충격적인 소식이 들려왔다. 그가 근무했던 서울 아산병원이 올해 신규 간호사를 채용하면서 박씨는 언급했다는 것이다.


30일 ‘간호학과, 간호사 대나무숲’ 페이지에 ‘무례하다. 당신들 정말 무례하다고밖에 할 말이 없다’로 시작하는 글이 올라왔다.

글에 따르면 서울 아산병원 면접관은 올해 간호사를 뽑는 면접에서 학생들에게 “올해 초 아산병원에서 아주 안타까운 일이 있었는데 그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취지의 질문을 했다.

박씨가 졸업한 대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는 “올해 초 그런 사건(박씨 사망 사건)이 있었는데 주변에서 (지원하는 것을) 말리지 않았냐, 교수님은 뭐라고 하셨냐, 부모님 반응은 어떠냐?”고 물었다고 했다.

글쓴이는 “대체 학생들의 입에서 무슨 대답을 쥐어짜내고 싶었던 걸까? ‘죽은 우리 선배 복수하려고 지원하는 거예요’ 뭐 이런 드라마틱한 대답을 원하나? 아니면 ‘우울증이 있었던 것 아닐까요, 우울증은 참 무서운 것 같아요’ 뭐 이런 대답? 문자 그대로 사망신고서에 잉크도 마르기 전에 이런 이야기를 들으니 눈이 뒤집힐 것 같았다”고 분노했다.

그러면서 “생명의 가치를 누구보다 중시해야 할, 죽음 앞에 가장 엄숙해야 할 병원이라는 곳이 한 사람의 죽음 앞에 이토록 무례하다”고 적었다.


실제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아산병원 면접 후기를 살펴보면 “올 초 우리 병원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아시죠? 본인은 어떻게 버틸거죠?”라는 질문을 받은 이들이 많았다.


또 다른 이는 “생글생글 웃고 있다가 해당 질문을 받고 표정이 굳었다. 나에게는 엄청난 충격을 준 사건이었다. ‘너는 안 그럴거지?’라고 묻는 것 같아 기분이 나빴다”는 취지의 글을 남기기도 했다.

앞서 박씨 사망사건을 수사하던 경찰은 3월 박씨에 대한 ‘태움’ 가해를 확인하지 못했다는 수사 결과를 내놨다. 시민단체 등 ‘박 간호사 사망사건 공동대책위원회’는 10일 고용노동부에 서울아산병원이 근로기준법·산업안전보건법을 위반했는지 조사해 달라고 고발했다.

서울아산병원 관계자는 “면접관 스스로 부적절한 질문이라고 생각해 이후에는 하지 않았다”며 “간호사 내부 문화 개선에 대해 여러 방안을 찾으면서 노력하고 있는 상황에서 학생들의 의견을 묻는 취지에서 질문한 것”이라고 말했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