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가 어느 때인데 친가·외가 경조사 휴가 다르게? 박주민, 법개정 추진

입력 2018-07-31 11:14
서울 소재 한 중견기업에 다니는 이모(30)씨는 지난해 외할아버지 상을 치렀다. 이씨가 회사 인사과에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알리자 회사 측은 경조휴가 3일이 주어진다고 설명했다.

불과 몇 달 지나지 않아 이씨는 또다시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접해야 했다. 회사 측은 “친할아버지는 경조휴가 5일(장손일 경우엔 7일)이고, 부의금도 20만원 지급된다”고 설명했다. 이씨는 “경조사에서 친가와 외가를 구분하는 것은 명백한 차별”이라며 “시대에 뒤떨어진 부계 중심적 사고방식”이라고 목소리 높였다.



호주제가 폐지된 지 13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대부분의 기업에선 경조휴가 규정에 조부모와 외조부모 간 차별을 두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조사 휴가의 경우 법적 근거가 없어 각 기업이 회사 내규를 통해 자율적으로 결정해왔다.

이런 차별 행위는 지난 2013년 국가인권위원회 조사에서 드러난 바 있다. 인권위가 당시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 62개 그룹 대표 계열사와 중견기업 67곳을 점검해 보니 외조부모 경조사에 친조부모보다 휴가·경조비를 적게 지급하는 기업은 절반이 넘는 41곳에 달했다. 당시 인권위는 기업들의 이 같은 관행을 차별이라고 판단, 개선을 권고했으나 별다른 시정조치는 나오지 않았었다.

지난 5월 개인 연차를 사용해 외조부상을 다녀온 직장인 임모(26)씨는 “회사 구성원 대부분이 친가와 외가를 구별하는 건 명백한 차별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다들 ‘원래 관행이 그렇다’는 이유로 불합리한 규정을 묵인돼왔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이처럼 친가와 외가에 따라 각종 경조사 휴가를 차별대우했던 관행이 사라질 전망이다.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친족의 사망에 따른 경조사 휴가 시 친가와 외가를 차별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의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31일 발의했다고 말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근로자가 사업주에 대하여 경조사 휴가를 신청하는 경우 이를 허용하도록 하고, ▲친족의 사망에 따른 경조사 휴가 시 사망한 사람의 성별이나 친가·외가 여부에 따라 휴가기간을 차별하지 못하도록 한다. 또 ▲근로자의 경조사휴가 신청을 받고도 이를 허용하지 않거나, 친가와 외가의 경조사휴가를 다르게 한 사업주에게 10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박 의원은 “양성 평등을 기초로 한 가족생활을 보장하는 것은 헌법이 정한 국가의 의무”라며 “법 개정을 통해 기업의 성차별적 상조복지 제도가 개선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신재희 기자 j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