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내 여풍이 불고 있다. 최근 진행 된 고위급 인사에서 역대 두 번째로 여성 치안감 겸 경찰청 국장급 인사가 탄생했다. 향후 여경의 채용 비율도 꾸준히 증가할 전망이다. 이에 대해 경찰 안팎에서는 “시대적 흐름에 부합한 현상”이라는 평가와 함께 “경찰 조직의 특수성을 무시한 정책”이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
경찰청은 26일 이은정(53) 서울경찰청 생활안전부장을 경찰청 경무인사기획관(국장급)으로 승진 내정하는 등 치안감 8명 승진을 포함한 16명의 승진·전보 인사를 단행했다. 치안감은 전국 12만 경찰 중 27명밖에 없는 최고위급 직위다.
이 기획관은 동국대 경찰행정학과를 졸업하고1988년 경사 특별채용으로 경찰에 입문했다. 이후 강원 영월경찰서장과 서울 마포경찰서장, 충남경찰청 제2부장과 등을 역임했다.
치안감급 이상 고위직 여성이 나온데에는 최근 경찰이 관심을 갖고 추진하고 있는 성평등 정책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경찰은 최근 홍대 누드몰카 사건 이후 여성들의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가 지속되는 등 성차별 이슈가 부각되자 성평등 정책 마련에 힘을 써왔다. 지난달 열린 경찰청 성평등 임시회의에서는 ‘치안 정책의 성평등 가치 제고'와 함께 ‘경찰 조직 내 성평등 실현’ 등이 심도있게 논의됐다. 당시 회의에서는 여성경찰 증원 및 여경 승진비율 확대에 대한 구체적 목표를 제시하기로 결정이 나왔다.
이 기획관은 “남녀가 평등한 조직을 만들어 달라는 사회적 염원이 담긴 인사라고 생각한다”며 “경찰이 성평등을 위해 추진하는 정책들이 성과를 낼 수 있도록 노력 하겠다”고 말했다.
경찰청은 최근 올 하반기 순경 일반공채에서 여경 비율을 20%까지 증원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경찰 직종에 여성 진출을 늘리고자 남녀 구분 없이 뽑는 통합채용 방식에 대해 연구 용역도 하고 있다. 지난해 말 현재 10%인 여경의 비율을 2022년까지 15%로 늘리겠다고 세운 계획에 따른 조치다.
이처럼 여경의 고위급 승진 및 인원 증가 움직임이 일자 여경들을 사이에서는 조직 내 유리천장이 조금씩 깨질 것이라는 기대감이 확산되고 있다.
그간 경찰 조직은 여경의 채용 및 승진에 유독 박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여태까지 여성이 경찰청장(치안총감) 바로 밑 계급인 치안정감까지 승진한 경우는 이금형 전 부산경찰청장 단 1명뿐이다. 총경 이상 고위직의 여경은 16명에 불과하다. 총경 이상 고위직이 총 629명인 것을 감안하면 비중은 약 2.5% 수준이다.
지난 3월 기준 우리나라 경찰 숫자는 11만8177명으로 이 가운데 여경은 10.9%인 1만2911명이다. 여경 1만2911명 중 80% 이상인 1만388명이 순경(3239명)과 경장(3421명), 경사(3728명) 등 하위 3개 계급에 몰려있다. 반대로 남성 경찰(10만5266명) 중 경사 이하 계급의 비율은 약 47%(4만9217명)다.
여경이 고위직으로 승진하기 어려운 이유에 대해서는 경찰대 입학, 경찰간부후보생 시험 등에서 비율을 제한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경찰대와 경찰간부후보생 공채 등에서는 여성 선발을 10% 수준으로 정해놓고 있다. 이에 경찰개혁위원회는 2020년부터 성별구분 없는 통합모집을 권고하며 경찰대학 신입생 모집 및 경찰간부후보생 채용 시 성별 제한비율 폐지를 제안한 바 있다.
서울의 한 일선 경찰서 여성청소년과에 근무 중인 이모(여)경사는 “여경의 고위직 승진과 (여경의) 채용 비율이 증가하는 것은 고무적이다”라면서도 “하지만 여경은 물리적 힘이 약하다는 이유로 여전히 조직 내에서 차별받고 있고, 그런 문화는 깊게 뿌리 박혀 있다”고 말했다.
실제 경찰 안팎에서는 경찰조직의 특성을 무시한 채 무작정 여경의 비율을 확대하는 것은 무모하다는 지적도 심심치 않게 제기되고 있다.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여성이 형사나 경비 등 체력을 요하는 부서에 근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오 교수는 “여경의 비율이 늘어나면 범인을 제압하거나 물리력이 필요한 부분에서 남경들이 더 많은 역할을 해야 하게 될 것이고 자연스레 인력 운용에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청에 따르면 여경들은 감사(약24%)와 홍보를 포함한 경무(약19%) 분야에서 주로 근무하고 있다. 수사 분야에 근무 중인 여경은 약 12%, 경비는 4%에 불과하다.
서울시내 한 일선서 김모 수사과장은 “경험상 여경들 가운데 수사·형사과를 기피하고 내근 부서를 선호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경찰 내 여성 인원을 늘리면 특정 부서가 확대되거나 수사·형사 분야의 동력 약화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사야 기자 Isaia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