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정(53) 전 충남지사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한 비서 김지은(33)씨는 “미투 이후 4개월 중 가장 괴로웠던 기억은 지난 6일 재판정에서의 16시간이었다”면서 “피고인은 제가 답변할 때마다 의도적인 기침소리를 내며 본인의 존재를 드러냈다”고 말했다.
김씨는 27일 서울서부지법 형사합의11부(부장판사 조병구) 심리로 열린 안 전 지사 재판 결심공판에 나와 “(법정에) 차폐막이 있었어도 피고인의 헛기침과 움직임 소리가 들릴 때마다 자꾸만 움츠러들었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어 “피고인의 변호인 5인은 마치 안희정이 5명인 것처럼 느껴졌다. 저를 이상한 사람처럼 몰아가며 질문했다”고 덧붙였다.
김씨는 6일 열렸던 제2회 공판기일에서 비공개로 피해자 증인신문에 임했다. 이후 5차 공판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김씨 변호인은 “16시간에 걸친 증인신문과 강도 높은 반대 신문에 김씨는 자책과 불안 심리로 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고 있다. 적절하게 신문을 제한해 달라”고 요청한 바 있다.
김씨는 당시를 회상하며 안 전 지사 변호인이 검찰에서 자신이 한 진술을 “왜곡하거나 전혀 다른 단어로 질문했다”고 주장했다. 김씨가 “그렇게 기존 제 진술과 다르게 말씀하시면 더는 답변하기 어렵다”고 항의하자 변호인은 “저 믿지 말라. 피고인 변호사는 유도신문할 수 있다”고 답했다고 한다.
김씨는 변호인의 표정이 ‘너의 감정을 흔드는 게 우리의 전략’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고 기억했다. 그는 “그때의 표정과 음성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면서 “피고인 측 한 변호사는 안 전 지사와 매우 친밀한 관계에 있는 사람이었다. 아는 사람에게, 그것도 진실이 아닌 내용으로 심문당하는 것은 큰 충격이자 상처였다”고 토로했다.
김씨는 “안 전 지사로부터 성폭력과 숱한 성추행을 당했던 지난 8개월을 몇 배로 압축한 듯한 고통이 16시간 지속됐다”며 “저는 피고인의 존재만으로도 두려운 사람이다. 피고인의 기침소리 만으로 심장이 얼어붙고 머리도 굳었다”고 했다.
또 “겨우 힘을 내 이야기 하고 있는 제 개인사를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혀를 차거나 어깨를 들썩이는 변호인단의 행위를 견뎌야 했다”면서 “심지어 ‘정조’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는 수치스러워 그 자리에서 죽고만 싶었다”고 호소했다.
김씨는 “피고인과 주변의 측근들은 법적 책임만 피하면 재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며 “이 사건의 본질은 피고인이 자신의 권력과 힘을 이용해 (저를) 성폭행했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은주 기자 wn1247@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