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서 성폭행 혐의로 기소된 안희정 전 충남지사 재판에서 김지은(33)씨가 “다른 피해자가 또 나오지 않도록 하는 게 제 마지막 역할이라고 생각한다”며 안 전 지사를 처벌해달라고 요청했다.
서울서부지법 형사합의11부(부장판사 조병구)는 27일 결심을 열고 피해자 측 요청에 따라 김씨의 마지막 진술을 들었다. “기회를 주신 데 감사드린다”며 말문을 연 김씨는 “그동안 통조림 속 음식처럼 늘 갇혀 죽어있는 기분이었다. 도려내고 싶은 기억을 떠올리고 반복되는 진술을 위해 그 기억을 유지해야 했다”고 말했다. 그는 미리 준비해온 진술서를 32분간 읽으면서 수차례 울먹였다.
김씨는 재판 과정에서 여러 번 수치심을 느껴야 했다고 호소했다. 지난 6일 있었던 피해자 증인신문에 대해서 그는 “지사에게 성폭력과 숱한 성추행을 당했던 지난 8개월을 몇 배로 압축한 듯한 고통이 16시간 지속됐다”고 토로했다. 김씨는 “심지어 정조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오랜 시간 진술한 증언까지 모두 한순간에 수치스러워졌다”며 “그 자리에서 그대로 죽고만 싶었다”고 했다. 피고인 측 증인들을 향해서는 “제가 더 좋아해서 유혹하고 따라다닌 것처럼 ‘마누라비서’라는 처음 들어보는 별명까지 붙였다”며 “사건을 불륜으로 몰아가고, 사건의 본질을 흩뜨리려 했다”고 비판했다.
자신을 향한 비난 여론도 언급했다. 김씨는 “사람들이 제게 왜 네 번이나 당했느냐고 묻는다”며 “제게는 네 번이 아니라 각각 한 번 한 번 다 다르게 갑자기 당한 성폭행이었다”고 호소했다. 안 전 지사에게는 “마지막 희망으로 피고인의 진심이 담긴 사과를 원했지만 이젠 더 이상 기대의 마음도 없고 용서할 마음도 없다”고 덧붙였다.
김씨는 “더 이상 피해자가 생기지 않게 하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 후배가 ‘언니가 그때 말했던 지사님 눈빛이 뭔지 알 것 같다. 지사님이 저를 자꾸 부른다. 저를 찾는다’고 말했다”며 “그때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고 했다. 김씨는 “무조건 막아야만 했고, 그게 저의 마지막 역할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재판부를 향해 그는 “공정한 법의 판결을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요청했다.
재판부는 이날 피고인과 피해자 측의 마지막 진술을 들은 뒤 다음 달에 1심 선고를 할 예정이다.
이재연 기자 jay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