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봅시다] 따릉이 안전모 시범시행 일주일 후…

입력 2018-07-28 06:00
뉴시스

서울특별시가 2014년부터 운영한 무인 공공자전거 대여 서비스 ‘따릉이’는 이제 교통수단을 넘어 하나의 문화가 됐다. ‘따릉이 투어’ ‘따릉이 데이트’를 즐기는 젊은층이 생겼을 정도다. 따릉이는 파리에서 물 건너온 제도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파리를 순방할 때 영감을 받아 도입했다고 전해진다.

따릉이 수요가 늘다보니 단점도 속속 지적된다. 자전거 주행을 위한 도로 개편이나 안전모 문제, ‘자라니’(자전거와 고라니의 합성어, 갑자기 불쑥 나타나는 자전거) 등이다. 특히 ‘안전모’에 대한 중요성이 대두됐다. 자전거 사고로 사망한 이들 중 10명 중 9명이 안전모를 쓰고 있지 않았다. 자전거 사망사고 대다수는 ‘머리’를 다쳐 치명상을 입은 경우다. 따라서 국회는 자전거와 안전모를 한 세트로 묶어 9월부터 ‘안전모 의무화’를 시행한다. 서울시는 따릉이와 안전모를 함께 빌려주기로 했다. 시민들 반응은 어떨까.

◇ 자전거 사망사고 90%는… ‘안전모 안썼기 때문’

자전거 이용자가 1200만명을 넘어섰다. 자전거 사고도 자연히 늘었다. 최근 5년간 자전거 사고 사망자는 1340명에 달한다. 대부분은 자전거를 탈 때 안전모를 쓰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도로교통공단에 따르면 자전거 사고 사망자는 2013년 101명에서 2017년 126명으로 증가했다. 자전거 사고 운전자의 연령은 65세 이상이 전체의 20.4%로 가장 많았다. 이들 고령자의 치사율은 100건당 4.9명으로 전체 자전거 사고 사망자 100건당 1.9명보다 2.6배 높았다.

최근 5년간 자전거 사고로 사망한 1340명 대부분은 안전 의식 부족 때문에 사망에 이르게 됐다. 이들 중 안전모를 착용하지 않은 이용자는 832명에 달했다. 109명만이 안전모를 착용했다. 10명 중 9명은 안전모를 쓰지 않고 자전거를 타다 사망했다는 얘기다. 특히 고령자일수록 안전모를 착용하지 않았다.


◇ ‘안전모 꼭 쓰세요’… 안전모 무료 대여 시범운영키로

서울시설공단은 자전거 안전모 착용 의무화를 앞두고 이달 20일부터 출·퇴근 시간에 따릉이 이용률이 높은 여의도에서 무료 대여를 시범운영을 시작했다. 시범운영 기간은 20일부터 한달이다. 따릉이 이용자는 별도의 대여 절차 없이 옆에 비치된 안전모를 가져다 쓰면 된다. 여의도 이외 지역에 따릉이를 반납할 때는 안전모를 바구니에 넣어두면 된다.

이번에 도입되는 안전모는 약 250g 정도로, 따릉이를 상징하는 녹색, 흰색, 회색을 적용한 디자인으로 제작됐다. 안전모 뒷면에는 반사지가 부착돼 야간에도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다. 또 헬멧 청결을 위해 주 3회 이상 소독하고, 악취가 심한 헬멧은 회수해 살균·탈취를 한다는 계획이다.


안전모 무료 대여를 시작한 것은 올 9월 28일부터 안전모 착용이 의무화되기 때문이다. 3월 행정안전부는 자전거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 자전거 운전자와 동승자가 안전모 등 안전장비를 착용하도록 도로교통법을 고쳤다. 6개월간 계도 기간을 거쳐 시행을 앞두고 있다. 아직 미착용 처벌 규정은 마련되지 않았다.

서울시설공단은 “시범운영 기간 중 다각적인 검토를 통해 따릉이 안전모를 서울시 전역으로 확대 도입할지 여부에 대해 신중히 분석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 시민들 반응은… “남이 썼던 거 쓰기 싫어” 시큰둥

정작 따릉이 이용자들은 ‘안전모 의무화’를 반기지 않는 눈치다. 기록적 폭염 속 다른 사람들이 썼던 안전모를 착용할 가능성이 극히 낮다는 지적이 있다. 따라서 안전모 의무화가 시행되면 따릉이 이용자는 급격히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누구나 손쉽게 이용할 수 있다는 공공자전거 매력이 사라지는 것이다.

한 이용자는 “비단, 한여름 땀 때문에 이용을 꺼리는 것이 아니다”라며 “많은 사람이 썼던 헬멧을 쓰고 싶지는 않다”고 말했다. 이어 “출·퇴근 길 보도에서 천천히 달리는데 꼭 써야하는지도 모르겠다”고 전했다. 서울시에 따르면 따릉이 이용자의 평균속도는 시속 9.7㎞이며 이용시간은 20.4분, 평균 이동거리는 3.3㎞다.

또 예산 낭비에 주먹구구식 행정이란 비판도 있다. 현재 따릉이는 회원 수 62만명을 돌파했다. 현재 2만대가량이 운영되고 있다. 서울시가 마련한 안전모 가격은 1개에 1만5000원 정도인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안전모 구매에만 4억원이 필요할 것으로 추정된다. 세탁이나 교체 등의 비용까지 감안하면 따릉이 운영에만 예산 10억원가량이 들 것으로 전망된다. 서울시는 “신중하게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 시민의식 믿었지만… 안전모 회수율 어쩌나

무엇보다 ‘분실’에 대한 대비가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따릉이를 빌릴 때 별도 대여 절차 없이 안전모도 바로 가져다 쓸 수 있다. 대전시는 2014년 헬멧 150개를 대여소에 비치했지만 두 달도 되지 않아 헬멧의 90%를 분실했던 경험도 있다. 서울시도 상황은 비슷하다. 안전모를 무료로 빌려준 지 나흘 만에 절반 가량이 사라진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시 관계자는 “시민의 양심을 믿고 시작한 일이지만 이정도일 줄은 몰랐다”고 안타까워했다.

서울시는 당초 따릉이 안전모에 태그를 부착해 위치 추적과 신원 확인이 가능한 대여·반납 시스템을 만드는 것을 고려했다. 하지만 한 해 통신비로만 12억원이 들 것으로 추산되면서 별도 장치 없이 운영하기로 했다. 양심을 믿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예상보다 안전모 분실률이 높게 나오자 서울시는 무료 대여 사업을 아예 폐지할 방안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시는 시행 3일째인 22일부터는 “대여소 보관함에 안전모를 가득 채워넣지 말라”는 지침도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따릉이 안전모처럼 시민의식에 기대 공유 경제를 시도했으나 실패한 사례는 이전에도 있었다. 책, 우산, 상비약 등 함께 나눠쓰자고 시작한 서비스가 일부 시민 때문에 폐지된 경우가 많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적더라도 비용을 지불하게 해 사용자 확인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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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전모 의무화 폐지’를 주장하는 시민단체

자전거 안전모 착용을 의무화하는 ‘개정 도로교통법’ 시행을 두달 남짓 앞두고 관련 조항을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전문가들과 자전거 단체는 안전모 의무 착용보다는 자전거 전용도로 등 안전하게 탈 수 있는 도로 환경을 만드는 것이 우선이라고 주장한다.

이들은 안전모 착용 의무화 폐지를 촉구하고 나섰다. 자전거 타는 시민들의 모임인 맨머리유니언, 두 발과 두 바퀴로 다니는 떼거리, 자전거문화사회적협동조합 등은 21일 광화문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이번 법 개정은 짧은 거리를 다니는 생활형 자전거에까지 안전모를 일괄 의무화한 전형적인 탁상 입법”이라며 “자전거를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차량 속도를 낮추고 전용도로 등 기반시설을 구축하는 데 노력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20일 행정안전부에 안전모 의무화 조항 폐지를 요구하는 의견서를 전달하기도 했다.

이들 주장에 따르면 안전모 착용을 의무화하면 짧은 거리를 이동하는 생활형 자전거 이용자들이 감소한다. 자전거를 타는 이유 중 하나는 간편함인데, 자전거를 타기 위해 늘 안전모를 갖고 다녀야 한다면 이용할 사람은 별로 없을 거라는 지적이다.

실제로 1990년부터 자전거 안전모 착용을 의무화한 호주는 지역별로 20~36%까지 자전거 이용률이 낮아졌다. 이들 단체는 이런 문제 때문에 자전거 이용률이 높은 네덜란드, 덴마크, 스위스, 이탈리아, 영국, 독일 등 유럽 나라들 대부분은 안전모 착용을 의무화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이재영 대전세종연구원 도시기반연구실장은 “자전거 사고 대부분은 가해자가 자동차다. 사고는 자동차 운전자가 일으키는데 왜 피해자인 자전거 운전자가 불편을 떠안아야 하는가”라고 반문했다. 이어 “정부의 논리대로라면 교통사고 때 머리 손상의 가능성이 큰 자동차 운전자에게도 안전모를 씌워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사고 대처 능력이 떨어지는 어린이와 빠른 속도를 즐기는 스포츠형 자전거 이용자는 안전모를 쓰게 하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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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에 따르면 연령과 상관없이 안전모를 착용해야 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 처벌하는 나라는 호주와 뉴질랜드 정도다. 미국·캐나다의 일부 주와 프랑스에서는 나이에 따라 처벌 여부를 결정한다. 스웨덴과 일본에는 13~15세에게만 착용 의무가 있고, 위반해도 벌칙은 없다. 영국은 안전모 착용이 권장 사항이고, 덴마크·네덜란드·스위스·이탈리아 등에서는 안전모를 착용하지 않아도 된다. 모든 연령에 착용 의무가 있는 호주도 도시마다 적용 방식이 다르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