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산불 참사 ‘방화 가능성’ 있다”…시민들 “우리를 불타게 내버려 둔 것”

입력 2018-07-27 11:26
그리스 산불의 최대 피해 지역인 아테네 마티지역의 산림과 주택 등이 불에 타버린 모습. AP뉴시스

그리스 정부가 최소 85명의 사망자를 낸 산불 참사가 방화로 시작됐을 수 있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고 BBC방송 등이 2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화재 발생 시 정부 당국의 대책이 부실했다는 비판은 계속 제기되고 있다.

니코스 토스카스 그리스 공공질서부 장관은 26일 기자회견에서 “(산불의 원인이) 방화와 관련됐음을 암시하는 심각한 징후들과 중요한 흔적들이 있었다”며 “몇몇 물건들이 발견됐고 이는 수사대상”이라고 말했다. 자세한 조사 결과는 밝히지 않았다. 앞서 그리스 내에서 삼림 지대의 개발제한구역 해제를 원하는 토지 소유주가 고의로 불을 질렀다는 의혹이 제기됐었다. 그러나 정부 당국이 방화 가능성을 공식적으로 제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수도 아테네 마티 지역을 중심으로 23일 동시 다발적으로 발생한 이번 산불로 최소 85명이 숨지고 180여명이 다쳤다. 희생자 중에는 6개월 된 아기 등 유아와 어린이들도 다수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실종자도 수십명에 달한다.

파노스 카메노스 그리스 국방부 장관이 26일(현지시간) 피해를 입은 아테네 마티 지역에 방문해 시민과 대화하고 있다. AP뉴시스

불이 난 직후에 정부 당국의 대처가 미흡했다는 비판의 목소리는 더욱 커지고 있다. 26일 마티 지역을 방문한 파노스 카메노스 그리스 국방부 장관은 피해를 입은 시민들의 거센 항의에 부딪혔다. 한 시민은 “(희생자 중) 아무도 불이 났는지 알지 못했다. 소방차도 제때 오지 않았다”며 “당신이 우리를 불타게 내버려 둔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마티 지역은 바다로 가는 통로가 절벽으로 막혔거나 주택 등이 마구잡이로 개발돼 비상시 탈출구를 찾기 어렵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번 화재 때 많은 사람들이 차를 타고 대피하려 했지만 길이 막혀 차 안에서 숨지는 경우가 많았던 이유다. 카메노스 장관은 “마티 지역의 많은 건축물들이 허가를 받지 않았다”며 “이번 비극 이후 이러한 행태가 시민들을 위험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고 밝혔다.

23일(현지시간) 그리스 아테네 지역에서 발생한 산불로 피해를 입은 시민과 불에 타버린 자동차의 모습. AP뉴시스

한편 이상기후가 불길이 번지게 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있다. BBC방송은 폭염과 가뭄으로 말라버린 초목들에 불이 빨리 옮겨 붙으면서 피해 규모가 커졌다고 보도했다. 그리스는 지난 겨울에 예년보다 건조한 날씨가 계속됐고 최근 섭씨 40도가 넘는 폭염이 기승을 부렸다.

조민아 기자 minaj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