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정 재판의 쓸모 없는 증언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입력 2018-07-26 18:22
뉴시스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의 업무상 위력에 의한 성폭력 사건에서 피해자에 대한 2차 피해가 심각하다는 지적이 계속되고 있다. 안 전 지사 측 증인들의 발언이 맥락없이 자극적으로 보도되고, 다양한 인터넷 플랫폼에서 이 내용이 확대 재생산 되면서 상황은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더이상 묵과할 수 없는 수준이라는 지적이다.

350개 여성단체로 구성된 ‘미투운동과 함께하는 시민행동’은 26일 서울 마포구 창비서교빌딩에서 ‘위력에 의한 성폭력과 2차 피해’ 긴급토론회를 열고 “안 전 지사 측이 피해자에게 책임을 덧씌우는 프레임을 내세우고 있다. 언론은 피고인 측 증언을 자극적으로 보도하면서 2차 피해를 양산해내고 있다“고 밝혔다.

안 전 지사는 자신의 수행 비서였던 김지은씨(33)를 4차례 성폭행하고 5차례 강제추행한 혐의 등을 받고 기소됐다. 안 전 지사에 대한 검찰 구형이 나오는 결심 공판이 오는 27일 열린다. 여성단체들은 안 전 지사와 김씨가 법정에서 증언할 예정이어서 자극적인 언론보도가 쏟아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안 전 지사에 대한 재판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 농단’ 사건 재판보다 더 상세하게 생중계되고 있다. 이에 대해 여성단체들은 “인권침해, 2차 가해 등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심각한 인식 없이 자극적이고 반복적으로 재판을 생중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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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 사건이다보니 재판 과정 중 일부는 비공개로 이뤄지고 있다. 피해자 김씨 측 증인 2명의 증언과 김씨의 증언 등이 비공개 재판에서 나왔다. 즉 김씨 측 주장은 언론에 공개되지 않은 것이다. 이런 상황을 감안하지 않은 채 안 전 지사 측 증인들의 증언은 고스란히 언론에 노출됐다.

문제는 이 증언이 ‘일방적인 주장’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증언으로서 효력이 없을 가능성이 높은데 마치 사실인양 보도되고, 진실인 듯 확대재생산 되면서 피해자인 김씨가 가해자로 자리바꿈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이에 대해 배복주 전국성폭력상담소 협의회 상임대표는 “피고인 측 증언은 대부분 감정에 기반한 말이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는 것은 증언으로서 가치가 하나도 없다”고 말했다. 배 대표는 “반면 피해자의 진술은 매우 일관되며 구체적이다. 실체적 진실을 설명하는 증거로 매우 유력하다”고 말했다.

김수아 서울대 기초교육원 강의교수의 지적도 비슷한 맥락이다. 김 교수는 “피해자가 ‘혼인 경험이 있는 고학력 여성’이라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교묘하게 피해자가 ‘위력에 의한 성폭력’을 당했을리 없다는 식의 대응 논리를 만들어냈다”며 “언론이 이를 그대로 받아쓰면서 피해자를 비난하는 여론이 형성됐다”고 말했다.

김언경 민주언련시민여연합 사무처장은 “안 전 지사의 사건에서 ‘가장 큰 피해자는 안희정의 부인’이라는 식의 비상식적인 프레임이 만들어졌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여성단체들은 안 전 지사에게 유죄 판결이 나올 것으로 전망했다. 피해자의 일관된 증언, 언론에는 공개되지 않은 맥락상 증거 등에 비춰 엄중한 판결이 나올 것이라는 관측을 내놨다.

장임다혜 형사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업무상 위력이 갖고 있는 속성 상 법망에는 잡히지 않는 착취적인 관계라는 특수성을 재판부가 주목해줬으면 좋겠다”며 “우월적 지위로 인해 피해자를 제압하고 있다는 인식, 행위자의 부당한 요구를 피해자가 감내할 것이라는 인식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