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접을 볼 때, 결혼식에 갈 때, 장례식에 방문할 때 공통적으로 필요한 ‘아이템’이 있습니다. 바로 ‘정장’입니다. 어쩌면 직장인에게는 평상복 보다 더 자주 입게 되는 옷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취업 준비생이라면 어떨까요? 이제 갓 성인이 된, 혹은 대학에 재학 중인 청년들은 정장을 입을 일이 거의 없습니다. 아마 면접을 준비하면서 인생에서 처음으로 정장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을지도 모릅니다.
면접에서 밝은 인상을 주기 위해서 맵시 있는 옷차림은 꽤 중요합니다. 그러나 정장 한 벌을 제대로 장만하려면 아무리 못해도 20만원은 훌쩍 넘는 돈이 필요합니다. 정장뿐만 아니라 셔츠, 블라우스, 벨트, 구두, 넥타이 등 의외로 챙겨야 할 것들이 많기 때문이죠. 백화점에 간다면 30~40만원은 기본입니다. 취업 준비생들에게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는 금액입니다. 더군다나 비싼 가격에 비해 활용도는 그리 높지 않아 구매를 망설이게 되는 것도 당연합니다.
이런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면접용 정장을 저렴한 가격에 빌려주는 한 업체가 있습니다. 바로 서울 서대문구 창천동에 위치한 정장 대여점 ‘마이스윗인터뷰’입니다. 이 따뜻하고 생생한 나눔에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고 있습니다. 금액은 재킷·스커트 3만원, 재킷·스커트·블라우스 4만1000원, 재킷·바지 3만2000원, 재킷·바지·셔츠 4만2000원이며, 서울시 ‘취업날개서비스’를 이용하면 1년에 10회까지 무료로 대여할 수 있습니다. 직원의 코디 조언도 덤으로 받아 갈 수 있습니다. 절차는 간단합니다. 서울일자리포털(job.seoul.go.kr)에서 방문 날짜와 시간을 예약하고, 정해진 시간에 맞춰 정장 대여업체를 찾아가기만 하면 됩니다.
마이스윗인터뷰 김태문(38)대표는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은 취업 준비생들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2012년부터 본격적으로 사업에 뛰어들었습니다. 김 대표는 원래 의류 사업과는 무관한 컴퓨터 엔지니어로 근무하면서 소프트웨어를 개발했다고 합니다. 기술을 살려 해외로 나가기 위해 영어공부를 하다 우연한 계기로 영어교육 컨설팅까지 하게 됐다는데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취업 준비생들을 만날 기회가 많아졌다고 합니다.
김 대표는 “영어 컨설팅을 하면서 만난 학생들을 통해 취준생들은 어떤 고민을 하고, 무엇이 필요한지 알게 됐다. 그중에서도 면접 정장을 구하지 못해 고민하는 학생들, 어떤 정장을 사야 하는지 모르는 학생들이 많았다”면서 “면접 준비만으로도 벅찬 시간에 마음에 드는 정장을 찾는 것도 힘들고, 차라리 누가 결정해줬으면 좋겠다는 학생들도 있었다. 그런 친구들에게 도움을 줄 순 없을까 고민하다 이 일을 시작하게 됐다. 지금 함께 일하고 있는 이충규 과장도 그때 만난 학생 중 하나였다”고 말했습니다.
물론 초기 사업 구상 때만 해도 정장 대여 사업이 새로운 블루오션이 아닐까 생각했다고 합니다. 돈도 벌고 취준생들에게 도움도 줄 수 있다는 큰 꿈에 부풀어 있었던 거죠. 그러나 그 생각은 얼마 가지 못했습니다. 매장 오픈과 청소, 손님 응대, 세탁, 마감, 홍보, 심지어 옷을 제작하는 일 등 업무 전반을 혼자 처리하다 보니 사업의 정확한 방향을 잡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고 합니다. 더군다나 아는 사람들만 알음알음 방문하는 수준이라 수익이 나는 건 쉽지 않은 구조였죠.
사업 1년 차 때는 50만원도 안 되는 수익과 조금 있는 자본금으로 겨우 매장을 유지했고, 3~4년간은 운영비를 제외하면 100만원 정도의 수익 났습니다. 기본 생활비도 안 되는 수준이죠. 그 이상의 수익이 들어왔을 때는 모두 재투자를 했다고 합니다. 그렇다 보니 공장에서 매장까지 옷을 배송해주는 택배비조차 아쉽게 느껴져 가게에서 몇 년 간 숙식을 해결했다고 합니다.
김 대표는 “사실 이 사업 자체만으로 얻을 수 있는 수익은 크지 않다. 더군다나 공채시즌이 아닐 때는 생활이 더 어렵다. 그래서 영어 과외도 하고 취준생들의 영어 이력서를 첨삭하는 일도 했으며 통번역, 가이드 일까지 했다. 심지어 병원에서 서류 정리를 하는 단순 알바도 마다하지 않았다. 말 그대로 그냥 버텨냈던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도 많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매장만이라도 유지하자는 마음으로 버티다 보니 조금씩 자리를 잡기 시작했습니다. 사업을 시작한 지 6년이 지난 지금은 12명의 직원들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세탁과 다리미질을 맡고 있는 35년 경력의 실장님을 비롯해 의류를 담당하는 직원만 4명이라고 하니, 이제는 어엿한 사업체로 발돋움 한 것입니다.
김 대표는 수익이 적은 가운데서도 사업을 접지 않았던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그는 “저 역시 취준생으로써 힘든 시간을 보냈기에 그 어려움을 잘 알고 있다”면서 “정장은 면접에 있어서 필수적이기 때문에 분명히 이 사업이 누군가에게는 도움 되리라는 확신이 있었다. 무엇보다도 이용하셨던 고객분들이 합격하셨다는 소식을 전해오면 정말 반갑고 큰 보람을 느꼈다. 금전적으로 돌아오는 수익 그 이상의 기쁨을 느꼈다”고 말했습니다.
매장이 본격적으로 알려지게 된 계기는 2016년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취업날개서비스’에 참여하면서부터라고 합니다. 실제로 2017년에는 취업날개서비스에 참여하는 3개 업체(왕십리 체인지레이디, 건국대 앞 열린옷장, 신촌 마이스윗인터뷰) 중 가장 높은 만족도를 기록했습니다. 방문자 수 역시 가장 많다고 하네요. 김 대표는 “아마도 대학가 근처에 위치한 지리적 이점 때문”이라며 겸손해 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 매장에는 다양한 디자인과 사이즈가 준비돼 있어 직접 입어본 뒤 원하는 정장을 선택할 수 있다. 아무래도 그 부분에서 고객들이 가장 만족한 것 같다. 약 20개 정도의 디자인이 있고 44부터 110까지의 다양한 사이즈가 있다. 신발도 마찬가지다”라며 “또 정장에도 나름대로 트렌드가 있는데 우리 매장에 있는 옷들은 다 최근에 제작된 것들이라 만족도가 높은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트렌드가 이미 지났거나 약간의 손상이 있는 정장은 고객들에게 무료로 드린다고도 하니, 얼마나 품질관리에 엄격한지도 알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나름의 고충도 있다고 합니다. 그는 “다양한 사이즈를 구비하고 있지만 아무래도 엄청 큰 사이즈나 작은 사이즈는 많지 않다. 그런데 그 사이즈들이 다 대여 중일 때 방문하신 고객들은 빈손으로 돌아가기도 한다”며 안타까워했습니다. 또 “모든 손님들을 다 꼼꼼하게 봐드리지 못하는 것도 항상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다. 하루에 130명 정도의 고객분들이 오시는데, 계산해보면 한 시간당 거의 16명이 방문하는 거다. 그렇다 보니 가끔은 급하게 옷을 골라드릴 수밖에 없어 죄송할 따름이다”고 말했습니다.
또 ‘취업날개서비스’의 경우에는 올해 규정이 새롭게 바뀌면서 현재 서울시에 거주하고, 서울시에 있는 대학에 재학 중이어야 이용할 수 있게 됐습니다. 그런데 바뀐 규정을 모르시거나, 지난해 규정만 알고 계시는 분들이 많아 설명해드리면 “내가 지방대 출신이라 이용할 수 없는 거냐”라며 항의하는 고객도 있었다고 합니다. 김 대표는 “정장을 대여하러 여기까지 방문해주셨는데 그냥 보낸다면 내 마음이 너무 불편할 것 같았다”며 “안타까운 마음에 제 선에서 기존보다 저렴한 가격에 정장을 빌려주기도 했다”는 말을 전했습니다.
큰 꿈보다는 하루하루의 성취감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김 대표. 매장을 운영하며 뿌듯했던 순간도 많았다고 합니다. 취업에 성공했다고 직접 인사를 하러 오시는 고객은 물론, 편지나 음료수를 전해주시는 분들도 많다고 합니다. 그러나 김 대표는 “역시 편지를 받을 때가 가장 뿌듯하고 감회가 새롭다”면서 “여전히 편지를 주시는 고객분들이 많은데 그때마다 내가 왜 이 일을 하는지, 앞으로는 무엇을 더 해야 할지 고민하게 된다. 아마 이때부터 사업을 통해 돈을 벌겠다는 생각보다 더 많은 청년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는 마음을 먹었다”고 합니다. 이어 “한 번에 합격하신 분들을 보면 정말 뿌듯하다. 우린 단골손님을 싫어한다. 그러니 부디 한 번에 합격하시기를 응원한다”고 유쾌하게 웃어 보였습니다.
마지막으로 목표와 포부를 밝혔습니다. 그는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문제점들을 인지하고, 거기에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이 결국 세상을 바꿔나가는 것 같다. 나 역시 작은 것부터 차근차근 실천해나가고 있다. 큰 목표 같은 건 없지만, 그저 지금 하는 일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행복하기를 바랄 뿐”이라며 “사회에 환원하고자는 마음으로 저소득층 지원 사업을 계획하고 있다. 적지 않은 수익이 생긴다면 나누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더 열심히 뛰어다니고 넘어 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청년들의 꿈을 응원하는 12명의 직원들. 그들이 바라는 건 거창한 게 아니었습니다. 누구나 이곳에서 멋진 옷을 입고, 어쩌면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될지도 모르는 한 페이지를 멋지게 장식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그게 목표입니다. 그리고 이 나눔과 추억을 더 많은 이들과 공유하기 위해 오늘도 고민하며 한발 한발 나아가고 있었습니다.
[아직 살만한 세상]은 점점 각박해지는 세상에 희망과 믿음을 주는 이들의 이야기입니다. 힘들고 지칠 때 아직 살만한 세상을 만들어 가는 ‘아살세’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어보세요. 따뜻한 세상을 꿈꾸는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신혜지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