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 언니랑 오붓한 시간” 성차별 심각한 어린이 프로그램

입력 2018-07-26 14:51
사진='아이엠 스타' '바비의 드림 하우스' 캡처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제공

지난 18일 가족 히어로 애니메이션 영화 ‘인크레더블 2’가 개봉했다. 이 영화는 “여자라면 이래야 하고 남자라면 이래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뜨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영화의 주인공 ‘헬렌’은 한 가정의 엄마이자 국민 히어로 ‘일라스티걸’로 활약하고 있다. 세상을 구하느라 바쁜 아내의 몫까지 집안일과 육아로 고군분투하는 아빠의 모습을 그렸다. 전통적인 성 역할에서 벗어나 엄마든 아빠든 누구라도 사회생활을 주도적으로 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의 어린이 프로그램 다수는 남성 중심적 가부장제에서 수동적인 여성 이미지를 강화하는 내용과 성 역할 고정관념을 조장하는 프로그램이 계속 유통되고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거나 여성에 대한 부정적 관념을 강화하는 내용도 전파를 타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양평원)은 서울YWCA와 함께 어린이 프로그램에 대한 모니터링 시행한 결과를 26일 발표했다. 이번 모니터링은 지난달 1일부터 7일까지 온라인 플랫폼에 게시된 어린이 프로그램 112개를 대상으로 실시했다.

어린이 프로그램의 등장인물 성비와 성별 역할을 분석한 결과, 주로 남성이 주요 인물로 등장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전체 등장인물을 보면 여성 31.9%(332명), 남성 56.5%(588명), 기타 11.6%(121명)로 남성이 많았다.

주인공 역할도 여성 31.6%(108명), 남성 57.9%(198명), 기타 10.5%(36명)로 남성이 여성보다 약 1.8배 많았다. 성차별적 내용(54건)은 성평등적 내용(10건)보다 5배 이상인 것으로 조사됐다. 주로 성 역할 고정관념을 조장하거나 외모지상주의를 부추기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한 어린이 프로그램의 경우 아이돌 스타를 꿈꾸는 학생들은 엉덩이만 겨우 가릴 정도로 짧은 교복 치마를 입고 학교생활을 한다. 또 이 프로그램은 특정 신체 부위를 부각하는 자세를 취한 장면을 연출해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았다.

다른 프로그램 또한 “내가 아주 예쁜 언니들이랑 오붓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라는 대사와 함께 여성을 성적 유희의 대상으로 소비하는 남성의 시각을 강화한 것으로 평가됐다.

또다른 프로그램에서는 전형적인 가부장제 속 가족문화를 그대로 담아냈다고 양평원은 설명했다. 가족들이 손님과 함께 식사하는 장면에서 엄마 캐릭터만 앞치마를 두르고 식탁 옆에 서서 가족과 손님의 음식을 챙기는 장면은 가사노동에 대한 성 역할 고정관념을 강화하는 문제점을 노출했다.

양평원 관계자는 “미디어의 영향력에 더해 사용자들이 영상을 올리고 공유할 수 있는 플랫폼이 늘어나면서 정보를 비판적으로 수용하기 어려운 어린이들은 왜곡된 고정관념을 답습할 위험이 크다”며 “온라인 플랫폼 관계자·제작자들은 사회적 권한과 책임의식을 가지고 성적으로 평등한 관계와 다양성을 보여주는 콘텐츠를 선별하고 제작·보급할 책무가 있다”고 말했다.

양평원은 6월 정기·수시 모니터링에서 발견된 성차별적 내용에 대해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심의개선 요청을 진행할 예정이다.

원은지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