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도 적극적으로 육아에 참여해야 한다는 인식은 확산됐지만, 현실은 이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직장문화가 뒷받침 해주지 못 하는 게 크다. 출산휴가, 육아휴직 등 제도는 마련돼 있으나 무용지물인 상황이 곳곳에 펼쳐져 있다. 여성들의 ‘독박육아’가 사회적 차원에서 개선되기까지는 시간이 더 걸릴 것으로 보인다.
‘2017년 저출산·고령화에 대한 국민 인식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민 10명 중 8~9명은 “남성도 육아와 가사에 참여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인식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아내가 돌봄노동에 쏟는 시간은 남편보다 2~5배 많았다. 직장에서 퇴근해 가정으로 출근해야 하는 여성들의 고충이 개선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또 남녀 모두 법으로 보장된 출산휴가나 육아휴직을 당당하게 요구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삶에서 일을 최우선으로?”…직장 분위기가 낳은 ‘독박육아’
이번 조사에서 ‘전통적인 고정관념을 바꿔 남성도 육아 및 가사에 참여해야 한다’에 82.4%가 ‘그렇다’고 답했다. 하지만 ‘남성 육아휴직 제도에 대해 내용까지 잘 알고 있다’는 사람은 22.7%에 그쳤다. ‘들어는 봤지만 내용은 모른다’는 사람도 64.4%나 됐다.
여성이 육아를 도맡는 ‘독박육아’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남성도 육아를 함께 해야 한다는 인식이 주를 이뤘으나 실제 적극적으로 참여하지는 못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출산휴가나 육아휴직을 하게 되면 힘들어지는 것은 ‘회사’가 아니라 ‘동료’다. 출산과 육아를 이유로 생기는 빈자리는 대체 인력을 투입해 메워야 하는데, 그러지 않는 기업이 대부분이다. 인력은 채워지지 않고 업무는 그대로이다보니 다른 동료들이 그 부담을 나눠지게 되는 식이다. 그래서 출산휴가나 육아휴직이 보장됐더라도 ‘마음 편하게’ 이를 사용하지 못 하는 것이다.
이는 조사 결과로도 확인된다. 응답자의 76.6%는 ‘출산으로 휴가를 낼 때 직장 상사 및 동료들에게 눈치가 보인다’고 했다. 육아휴직에 대해서도 비슷한 수준의 결과가 나왔다. 응답자 10명 중 7명(72.2%) 꼴로 ‘육아휴직을 낼 때 직장 상사 및 동료들에게 눈치가 보인다’고 답했다.
애 핑계 대고 쉬려고만 한다고? 육아는 ‘또 다른 노동’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쓴 이후에도 이런 상황은 반복된다. 육아휴직을 마치고 복직했다고 해도 아이가 혼자 자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시시때때로 부모의 손길을 필요로 한다. 많은 부모들이 육아에 공백이 생겼을 때 ‘최후의 수단’으로 휴가를 낸다. 가장 마지막 선택지가 되는 것은 직장 상사나 동료들에게 눈치가 보이기 때문이다.
이번 조사에서 응답자의 67.2%가 ‘자녀로 인해 휴가를 낼 때 직장 상사 및 동료들에게 눈치가 보인다’고 답했다. 이런 마음이 괜한 자격지심에서 비롯된 게 아닌 것으로도 확인됐다. 응답자 10명 중 6명은 ‘자녀로 인해 휴가를 내는 직장 동료를 부정적으로 생각한다’고 했다.
육아 공백을 메우기 위해 하루 휴가를 내면서도 온갖 눈치를 봐야 하는 부모들의 마음도 좋지 않다. 올 초 육아휴직을 마치고 복직한 워킹맘 김모씨는 “육아휴직을 했기 때문에 연차휴가도 6일 밖에 없다. 여름 휴가도 이틀 밖에 못 내는데, 도저히 다른 방법이 없어서 연차휴가를 쓴 적이 두 번 있다”며 “나는 절박하지만 누군가는 ‘아이 핑계로 쉬려고만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 불편하고 괴롭다”고 말했다.
김씨는 “출산휴가나 육아휴직을 쓴다고 하지만 현실은 전혀 ‘쉬는 게 아니다’”라며 “직장에서 일을 안한다 뿐이지 돌봄노동을 계속 하고 있는데, 아이랑 마냥 재밌게 놀고 마음껏 쉰다고만 생각하는 인식이 여전히 팽배하다”고 했다. 그는 “애 핑계 대는 워킹맘이란 비난을 듣기 싫어서, 휴가를 내면서도 다른 이유를 말한 적도 있다. 휴가를 낼 때 ‘무슨 이유로 휴가를 쓰려고 하느냐’고 일일이 묻지만 않아도 눈치를 덜 볼 것 같다”고 덧붙였다.
‘독박육아’ 개선될 수 있나
이번 조사에 따르면 아내는 남편보다 휴일엔 2배, 평일엔 5배의 시간을 자녀 돌보는데 쓰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초등학교 미만 자녀를 둔 부모가 평일에 아이를 돌보는 시간을 보면 남편은 평균 45.5분이었지만 아내는 4시간 가까이(229.2분) 됐다. 휴일에는 남편이 145.7분, 아내가 297.6분 동안 육아에 시간을 내는 것으로 조사됐다.
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지금 한국 사회에서는 공동육아와 같은 움직임이 절실하다”며 독박육아의 해결책으로 ‘풀뿌리 육아 운동’을 제안했다.
그는 “독박육아로 정신적 고립감과 부담감이 엄청난 여성을 위해 돌봄을 매개로 이웃과 교류하면서 지역 사회가 관심을 두도록 해야 한다”며 “그래야 공동체가 활기를 띠고, 엄마들이 독박육아에서 해방된다. 정책이나 시스템만으로 해결하려면 어렵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풀뿌리 육아운동’은 너무 이상적인 이야기라는 비판도 적잖다. 풀뿌리 육아운동이 가능해지려면 각 가정마다 일과 생활의 균형(워라밸)부터 바로 세워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역 공동체의 공동 육아가 우리 사회에서 문화로써 자리잡으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원은지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