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차와 3년차.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조세 무리뉴 감독의 징크스로 대표되는 해다. 감독 지휘봉을 잡은 후에 별다른 어려움 없이 많은 트로피를 들어올리는 2년차와 언제 그랬냐는 듯 성공가도를 달렸던 팀이 곧바로 추락하는 3년차를 뜻한다.
무리뉴만큼 일희일비한 나날들로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한 파란만장한 감독 커리어를 이어오는 감독이 또 있었을까 싶다. 더할 나위 없는 성공도, 끝도 없는 나락으로 떨어지는 실패도 겪어왔던 참 사람냄새 나는 감독이다. 첼시에서만 무려 6년 가까이 몸담으며 팀의 역사상 최전성기를 이끌었던 감독이 경질된 후 맨유의 사령탑으로 적장의 신분이 되어 스탬포드 브릿지를 밟는 것만 해도 그렇다. 누군가에겐 밉상으로 보이는 무리뉴 특유의 솔직하면서도 과격한 발언 역시 때론 정감이 간다.
화려했던 선수 시절부터 높은 전술 이해도를 보이며 바르셀로나를 시작으로 지도자 생활까지 엘리트 코스만을 밟아온 영원한 라이벌, 펩 과르디올라와는 또 다른 유형의 천재라고 할 수 있다.
과거 무리뉴가 “타고난 천재구나”하고 생각했던 순간이 있다. 과르디올라의 바르셀로나가 유럽 최강으로 군림할 시절, 리오넬 메시를 제로톱으로 두는 ‘펄스나인’ 전술을 깨뜨리기 위해 페페를 수비형 미드필더로 기용했을 때다. 당시 무리뉴는 3명의 볼란치(수비형 미드필더)를 두는 파격적인 시스템을 선택했다.
기존의 더블 볼란치로는 신적인 드리블 돌파 능력을 가진 메시를 저지하지 못할 것이란 판단에서 나온 것일 테다. 무리뉴는 트리보테(포백 앞에 미드필더 3명을 두는 것)로 사비 에르난데스와 안드레아스 이니에스타로부터 메시에게 이어지는 연결고리를 차단했다. 페페가 중앙 수비수들과 더불어 메시를 샌드위치 형국으로 포위해 플레이를 최대한 억제하겠다는 계산이었다. 일대일 대결에서는 전혀 적수가 되지 못했던 페페가 그나마 메시를 상대할 수 있었던 수비수로 남게 된 것은 전적으로 무리뉴의 공이었다.
결과적으로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 사령탑 시절의 승리자는 과르디올라로 볼 수 있겠지만, 당대 최강을 상대했던 무리뉴의 도전은 충분히 위대했다. 그리고 이들의 악연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맨체스터의 양 라이벌 클럽으로 옮겨와 계속되고 있다.
◆ 재미보다는 승리, 무리뉴의 축구 철학
아집인지 철학인지 모를 ‘안티풋볼’로 대표되는 수비 전술은 무리뉴의 신념과도 같다. 수비라인을 한 창 끌어내린 후 공을 뺏게 되면 빠르게 측면 역습으로 전환하는 현대축구 ‘선수비 후역습’ 전술로 대표되는 감독이다. 무리뉴가 사령탑으로 있던 팀들 역시 수비력만큼은 극강의 모습을 보여줬다. 굴지의 클럽들을 오가며 4-3-3, 4-2-3-1, 4-3-2-1 등 4선 수비를 기본 골격으로 한 유기적인 다양한 포메이션을 구사해왔다.
2013-14시즌, 첼시를 이끌던 무리뉴 감독에게 프리미어리그 첫 우승이라는 꿈을 저지당한 리버풀의 브랜든 로저스 감독은 “버스 두 대를 주차해 놓은 것 같다”며 그의 축구를 비판한 적이 있다. 라인을 한창 끌어 내린 후 상대의 느슨한 뒷 공간을 공략하겠다는 무리뉴의 역습 템포에 완벽히 말려버린 로저스 감독의 울분이었다. 당시 유럽 챔피언스리그를 병행하는 타이트한 일정 속에 리그 경기에만 올인 하는 리버풀을 원정경기에서 만난 것에 대한 실리적 선택이기도 했다.
이렇듯 무리뉴는 ‘버스 두 대’로 대표되는 극단적인 수비일변도 전술을 펼치는데도 망설임이 없었다. 이에 실점을 최소화하는 짠물수비를 강조해 지나치게 실리만 추구한다는 비아냥도 있었다. 크게 흠 잡을 것 없는 성적에도 재미없는 축구라는 비판이 항상 따라다녔다.
무리뉴는 “나는 재미가 아닌 승리를 위해 축구를 한다”며 “내 축구에는 전혀 문제 될 것이 없다. 승점을 잃을 바에는 차라리 조금이라도 얻는 것이 한 시즌을 생각하면 더 효율적인 것”이라고 반박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그의 수비적인 전술이 쉽사리 통용되지 않으며 급변하는 트렌드에 따라가지 못한다는 지적이 있지만 무리뉴는 항상 고민하는 감독임엔 분명하다. 대표적으로 이번 시즌 왼쪽에서의 공격 루트를 선호하던 알렉시스 산체스로 인해 포지션이 애매해진 마커스 래쉬포드와 앙토리 마샬을 살리기 위해 변칙적인 쓰리톱을 내세운 것이 그렇다. 래쉬포드와 마샬을 기존의 위치인 왼쪽 윙포워드 쪽에 놓으면서 산체스를 2선에, 로멜로 루카쿠를 전방에 위치시켰다.
왼쪽으로 처진 특이한 삼각형 모양의 공격 형태였는데, 왼쪽을 선호하는 선수들 모두를 활용하기 위해 무리뉴 나름으로 고안해낸 방법이었다. 물론 그들의 시너지 효과가 성공적이었다고 말하긴 힘들지만 공격자원들의 공존을 위해 무리뉴가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을지 알 수 있는 모습이었다.
지금 이 순간에는 자신의 3년차 징크스를 깨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을 것이다.
◆ 2년차와 3년차, 엇갈린 무리뉴의 희비
그간 무리뉴의 부임 두 번째 시즌은 성공적이었다. 포르투에선 리그와 리그컵, 유로파리그를 우승하며 ‘미니 트레블’을 달성했다. 이후 첼시에서 2004-05, 2005-06 시즌 연달아 프리미어리그 2연패를 차지했으며, 2009-10시즌엔 인터 밀란에선 이탈리아 구단 최초로 트레블을 일궈내는 위업을 달성했다.
이어 레알 마드리드에선 바르셀로나의 독주를 꺾고 리그와 국왕컵을 우승했으며, 챔피언스리그에서도 16강 징크스를 깨고 준결승까지 진출했다. 2013년 여름 친정팀 첼시로 복귀해 다시한번 두 번째 시즌 리그와 컵대회 우승컵을 들어 올리며 존재감을 발휘했다.
정확한 분석을 분석과 성공적인 영입을 통해 팀 내 취약 포지션을 보강해 자신의 축구 철학을 완성한 것이 성공의 주된 요인으로 꼽혔다. 맨유에서도 비록 우승컵을 들어 올리는데는 실패했지만, 한동안 챔피언스리그 진출권이 주어지는 4위 바깥쪽에서 맴돌던 팀을 2위까지 끌어올렸다. 알렉스 퍼거슨 감독 은퇴 직후 받은 가장 높은 성적표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하지만 유독 3년차에는 슬럼프가 찾아왔다. 2006년, 첼시에서는 맨유에 우승컵을 뺏긴데 이어 로만 아브라모비치 구단주와 갈등을 빚으면서 지휘봉을 내려놓았고, 레알 마드리드에서 역시 선수들과 불화설에 휩싸이며 무관을 기록하며 팀을 떠나야했다.
첼시 세 번째 시즌(2015-16시즌)은 그의 커리어의 가장 큰 오점으로 남을 만큼 처참했다. 리그 순위는 16위까지 떨어지며 강등권을 맴돌았고 주축 선수들의 태업설까지 제기됐다. 디펜딩 챔피언의 위엄은 온데 간데 없이 사라졌다. 결국 성적 부진을 이유로 시즌 도중 경질됐다.
◆ 다가온 무리뉴의 3년차, 맨유의 준비 과정은?
무리뉴는 지독한 자신의 3년차 징크스를 깨겠단 의지를 보여주듯 대형 영입은 없지만 조용히 선수단 개편작업을 진행 하고 있다.
우선 넓은 시야와 날카로운 패스, 수비조율능력으로 팀의 중원을 지휘했던 마이클 캐릭의 대체자로 프레드를 낙점했다. 프레드는 174㎝의 키로 공중볼 경합엔 약한 모습을 보이지만 브라질리언다운 타고난 드리블 능력과 탈압박, 빠른 스피드와 패스 능력까지 모두 뛰어난 선수다. 미드필더 자원이지만 왕성한 활동량을 바탕으로 수비가담 능력도 준수한 편이다. 무리뉴는 이러한 프레드가 안데르 에레라의 약점을 보완해주며 네마냐 마티치, 폴 포그바와 호흡 할 수 있을 것이라 계산했다.
또한 19세의 포르투갈 풀백 디오구 달로트를 데려왔다. 무리뉴는 달로트를 가리켜 “유럽 동연령대 측면 수비 자원 중 최고”라며 “우리 팀에 재빨리 적응할 수 있는 특별한 재능을 지녔다”고 극찬했다. 달로트는 빠른 스피드를 바탕으로 한 적극적인 오버래핑으로 맨유의 공수에 모두 안정감을 더해줄 전망이다. 이후 35세의 베테랑 골키퍼 리 그랜드를 스토크시티에서 영입하며 웨스트 브로미치 알비온으로 이적한 유망주 샘 존스톤의 빈자리를 메웠다.
이 세 명의 선수를 영입하는데 모두 8270만 유로(약 1095억 원)를 투자했지만 아직 무리뉴는 만족하지 못했다. 프리미어리그의 이적 마감시간은 내달 9일로 유럽 5대 리그 중 가장 먼저 문을 닫는다. 무리뉴는 약 3주가량 남은 이적시장 시간 동안 수비자원을 보강할 계획이다.
특히 토트넘의 토비 알더베이럴트와 레스터 시티의 해리 매과이어가 맨유와 꾸준히 이적설이 맴돌고 있다. 매과이어는 최근 인터뷰에서 “나는 야망이 있는 선수다. 모든 선수들은 높은 레벨에서 뛰길 원한다”며 맨유 이적 가능성을 시사했다.
현재 맨유는 월드컵에 출전했던 선수들이 대거 이탈했음에도 미국으로 전지훈련을 떠나 다가올 시즌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무리뉴는 가장 오래 팀을 이끈 경력이 3년 2개월에 불과하다. 그런 그가 그동안 지독하게 자신을 따라다녔던 3년차 징크스를 이겨낼 수 있을까. 징크스는 깨지기 마련이다. 모두의 시선이 다가올 무리뉴의 3년차로 향하고 있다.
송태화의 인저리타임
인저리타임. 전광판의 시계는 아직 멈추지 않았습니다. 송태화 기자가 함성소리에 스며드는 이야기를 전하는 스포츠 연재입니다.
송태화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