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이렇게 더울 줄 알았으면”…‘찜통더위’에 짓눌린 한강공원 풍경

입력 2018-07-24 17:00
사진=원은지 기자

“괜히 왔어...”

비 오듯 땀을 흘리고 있던 박모(45)씨가 22일 한숨을 내뱉으며 중얼거렸다. 편의점 앞에 자전거를 세워둔 채 쉬는 와중에도 박씨가 쓴 자전거 헬멧 사이로 땀이 삐질삐질 흘러나왔다. 서울 노원구 중계동에 사는 그는 평소 자전거를 타고 여의도 한강공원을 자주 찾는 나름 ’자전거 마니아’다.

하지만 박씨는 예상을 뛰어넘은 폭염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일년 중 가장 덥다는 ‘대서’를 하루 앞둔 이날, 서울 낮 최고기온은 38도까지 치솟았다. 박씨는 “날씨가 이렇게 더울 줄 알았으면 절대 나오지 않았을 것”이라면서 “당분간은 여기까지 오고 싶지 않다”고 혀를 내둘렀다.


사진=원은지 기자

◇더위 식히러 나왔지만…


오후 2시쯤 찾아간 여의도 한강공원엔 찌는듯한 더위 탓에 주말임에도 행인들을 찾기가 어려웠다. 지난달까지만 해도 쉬러 나온 시민들로 북적이던 곳이었다. 지하철 5호선 여의나루역 인근 자전거 대여소에 따르면 평소 주말이면 자전거를 빌려 가는 사람들이 족히 500팀은 됐는데 무더위 탓에 절반 이하로 뚝 떨어졌다.

공원을 한참 돌아봐도 편히 쉬는 시민들의 모습을 찾기 어려웠다. 파라솔 아래 앉아서 간식이나 음료를 먹을 수 있는 자리에도 먼지만 날리고 있었다. 가끔 보이는 이들은 덥고 습한 날씨 탓에 하나같이 찌푸린 표정이었다.

특히 불쾌지수가 ‘매우 높음’일 정도로 높아서인지 사소한 일에 짜증을 내는 이들도 눈에 띄었다. 한강 유람선 매표소 앞에선 60대 남성이 매표소 직원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이 남성은 매표소 직원을 향해 서류 종이를 흔들며 “아니 이 더운 날씨에 내가 왜 이걸 밖에서 적고 있어야 하냐고!”라며 언성을 높였다. 부인으로 보이는 여성이 안절부절 못하며 “오늘따라 왜 이렇게 소리를 지르냐”며 눈치를 주기도 했다. 하지만 이 남성은 “앉아서 작성할 수 있게 의자를 가져오라”면서 매표소 직원에게 삿대질을 하기도 했다.

공원 입구에선 배달음식 전단지를 나눠 주는 한 무리의 중년 여성들이 밀짚모자와 썬캡, 쿨토시 등으로 중무장을 하고 있었다. 전단지를 나눠주는 손이 어찌나 빠른지 순식간에 대여섯장의 전단지가 손에 쥐어졌다. “똑같은 전단지를 받았다”고 하자 “이러다 쪄 죽겠다. 받아달라”며 전단지를 불쑥 내밀었다. 목소리에 힘이 들어있었다.


사진=원은지 기자

◇무더위에 상인들도 울상

한강공원 인근 상인들은 주말 방문객 수가 급감해 장사가 너무 안된다고 입을 모았다. 공원 입구에서 돗자리와 간식 등을 파는 한 상인은 “날이 더워서 그런지 낮이고 저녁이고 사람이 너무 적다”며 “매출이 지난달의 절반도 안 된다. 오후 4시가 다 되도록 돗자리를 사간 손님이 한 명도 없다”고 토로했다.

다른 상인은 “얼음물도 안 팔린다”며 “사람이 나오질 않으니 팔 수가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상인 역시 “그래도 얼음물이나 맥주는 잘 팔리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사람이 워낙 없다 보니 그것도 아니다”면서 “이대로라면 이번 달은 크게 적자 나게 생겼다”고 울상을 지었다.

해가 떨어지는 저녁이면 좀 낫지 않을까하는 기대도 허사였다. 한 편의점 직원은 “밤에 사람이 오기는 하지만 주말 내내 더워서 사람이 없다”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열돔’(heat dome) 속 높은 습기와 기온이 유지돼 저녁이 돼도 사람들이 한강공원 나들이를 꺼린다고 했다.

사진=이재빈 기자


한강공원 입구에서 30분쯤 걸어 원효대교 아래에 이르러서야 다리 밑 그늘에서 더위를 식히고 있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방문객들은 가져온 텐트나 돗자리를 깔고 쉬고 있었다. 그나마 대교 아래는 선선한 바람이 불어 쉴만한듯 보였다. 한 가족은 텐트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수박을 먹으며 더위를 쫓았고, 옆에 있던 커플은 대(大)자로 누워 있기도 했다.

한 30대 부부는 “딱딱한 아스팔트 바닥이 아니라 나무 그늘 아래 풀밭에서 아이들과 쉴 수 있길 기대했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들은 “아이들이 대교 밑이 아닌 나무 밑에서 뛰어놀았으면 좋겠는데 오늘은 더워서 생각도 안 했다”며 “두 아이와 종종 한강에 나오는데 그때마다 그늘막이나 큰 나무가 많았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한강공원의 나무 대부분이 잎이 거의 없고 크기가 작아 그늘을 드리우지 못하는 묘목이었다.

한강사업본부 관계자는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그늘막 등 인공구조물보다는 친환경적인 녹지와 그늘을 조성하기 위해 공원에 나무를 지속해서 심고 있다”며 “나무가 자라기 시작하면 공원 내에도 나무 그늘이 많이 늘 것”이라고 말했다.

원은지 이재빈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