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어준 딴지일보 총수가 각별한 사이였던 고(故)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를 추모했다. 김 총수는 24일 tbs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쇼’에서 노 원내대표가 고등학교 시절 작곡한 노래를 소개하며 “고인의 명복을 빈다”고 밝혔다.
‘머리에 석남꽃을 꽂고 내가 죽으면 머리에 석남꽃을 꽂고… 서른 해만 서른 해만 더 함께 살아볼거나.’
방송은 이 구절을 부르는 노 원내대표의 음성으로 시작했다. 김 총수에 따르면 이 가사는 삼국유사에서 영감을 얻은 서정주 시인의 수필 ‘석남꽃’에서 따온 것이다. 노 원내대표가 음을 붙였다고 한다. 김씨는 “악보가 없는 거로 아는데 누가 만들어주시면 좋겠다”면서 “노 원내대표가 음치라 잘 들릴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김 총수는 노 원내대표와의 일화 몇 가지를 추억했다. 먼저 노 원내대표가 2004년 KBS 심야토론에 출연해 ‘50년 동안 쓰던 판을 갈아야 합니다. 똑같은 판을 쓰면 고기가 새까매집니다. 판을 갈 때가 왔습니다’라고 발언했던 일을 언급했다. 김 총수는 “이런 정치적 비유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분은 지금도 없다”며 “완전히 새로운 유형의 진보 정치인이 등장해 많은 분이 환호했다”고 회상했다.
김 총수는 “본인 말로는 정치 입문을 고등학교 1학년 때 했다”면서 “대통령제에서 국회를 해산할 수 없다는 내용이 중학교 교과서에 나오는데 그걸 현실에서 목격한 게 어린 노회찬은 큰 충격이었다더라”고 설명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72년 ‘유신개헌’에 앞서 국회를 해산했다. 김 총수는 “좋게 말하면 조숙했고 건방진 어린아이였다. 건방진 학생이었다”고 했다.
이어 “(노 원내대표) 집안이 풍족하지 않았는데 문화적이고 지적인 분위기라 어릴 때부터 첼로를 배웠다. 또 2007년 때 대선 후보로 나온 적이 있다. 그때 ‘모든 국민이 악기 하나쯤은 여유롭게 배울 수 있는 사회가 왔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게 기억에 남는다”고 덧붙였다.
김 총수는 “(노 원내대표가) 육상부 단거리 선수였다”면서 “외모는 그렇지 않지 않느냐”고 말했다. 노 원내대표가 좋아하는 배우는 ‘엘리자베스 테일러’, 좋아하는 영화는 ‘전쟁과 평화’라고 한다. 김 총수는 “순 옛날 영화네. 클래식한 취향이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패션 취향을 물어본 적이 있다. 고등학생 때 뭐입고 다녔냐고 했더니 11인치 나팔바지를 입고 다녔다더라. 나팔바지 입고 유신 반대하던 분이다. 그 이후로 쭉 운동권이었다. 마흔 살 돼서야 처음 여권이 나왔다더라”고 전했다.
아울러 “선글라스 있냐고도 물어봤었다. 딱 하나 있다고 그러셨다. 개인적으로 이런 게 좀 마음이 아프다. 좀 더 멋도 부리고 인생을 살아도 되는데 지나치게 엄격하게 살았다”며 “빈자리가 크고 그 빈자리는 메워지지 않을 것 같다”고 토로했다. 방송 4부에서 하태경 바른미래당 의원과 대화를 나누던 중 “(노 원내대표가) 본인 스스로에게 부여하는 기준이 너무 높으니까 견딜 수 없지 않았을까 생각한다”고도 말했다.
노 원내대표는 23일 오전 9시38분쯤 서울 중구의 아파트에서 투신해 세상을 떠났다. 노 원내대표가 아파트 현관 쪽에 쓰러져 있는 것을 경비원이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이 아파트는 노 원내대표 자택이 아니라 어머니와 남동생 가족이 사는 곳으로 확인됐다.
아파트 17층~18층 계단참에서 노 원내대표의 외투, 지갑, 신분증, 정의당 명함, 유서 등이 발견됐다. 노 원내대표는 유서에 금전을 받은 적은 있으나 청탁과 관련이 없다는 내용을 적은 것으로 전해졌다.
노 원내대표는 2016년 총선을 앞두고 ‘드루킹’ 김동원(49·구속)씨 일당으로부터 5000만원을 불법 정치자금 목적으로 수수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그러나 노 원내대표는 “어떠한 불법적인 정치자금을 받은 적이 없다”며 “특검이 조사를 한다고 하니, 성실하고 당당하게 임해 진실을 밝히겠다”고 부인했다.
박은주 기자 wn1247@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