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기 아이들 아우성에도 환경보호·예산 부족 이유 무시… 전기료 낮춰줘도 효과 미미
교육청 지침 자의적 판단, 비민주적 학교운영이 문제
“쌤(선생님), 진짜 너무 더워요.” 대구의 한 초등학교 4학년 담임인 A교사(52)는 요즘 교실에 들어설 때마다 신음하는 아이들을 보기 미안하다. 한창 성장하는 아이들 몸에선 유독 더 땀 냄새가 진동한다. 학교가 허용한 26도에 맞춰 에어컨을 틀어도 실제 교실 온도는 30도를 가뿐히 넘는다. 교장에게 냉방 기준 온도를 더 낮춰 달라고 여러 차례 호소했지만 ‘환경보호를 해야 한다’는 대답과 함께 묵살당했다.
경기도의 9년차 초등학교 교사 B씨(31)는 임신 8개월째다. 그가 근무하는 학교는 28도 기준에 맞춰 중앙냉방을 하지만 수업하기 힘들 정도로 덥다. 더욱이 아이들이 5∼6교시에 하교하고 나면 에어컨이 꺼진다. 교무실에 자리가 따로 없는 초등학교의 특성상 교실에서 2시간여를 버티며 업무를 마쳐야 한다. 학교 간부에게 이야기해봤지만 예산이 부족하다는 대답만 들었다.
폭염이 이어지면서 학교가 여전히 ‘찜통교실’로 고통받고 있다. 정부가 지난해부터 교육용 전기료를 인하하고 자율적으로 기준을 정해 냉방하라는 지침을 내렸지만 현장에선 효과가 없다. 일부 교장의 예산을 아끼려는 관행과 보수적 사고방식 탓에 제도를 고쳐봤자 소용없다는 불만이 나온다.
정부는 찜통교실에 관한 비판 여론이 커지자 지난해 1월부터 초·중·고교와 유치원에서 쓰이는 교육용 전기요금을 20% 할인했다. 그러나 23일 국회 손금주 의원(무소속)이 분석한 한국전력공사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6∼8월 교육용 전력 사용량은 약 20억kwH로 전년과 차이가 없었다. 반면 같은 기간의 각 학교가 지출한 교육용 전기요금은 2418억원에서 2326억원으로 줄었다. 대부분 학교가 냉방은 종전처럼 하면서 예산만 아꼈다는 얘기다.
아울러 대부분 지방 교육청은 이달 초 산업통상자원부의 ‘여름철 공공기관 에너지 절약 대책’에 따라 학교 내부에 ‘에너지절약추진위원회’ 등을 만들라는 지침을 내렸다. 냉방 기준을 자율적으로 정하라는 취지였다. 공립학교는 현행법상 공공기관 냉방 기준(28도, 중앙냉방 26도)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 교육청 가운데는 학교에 내려보내는 예산 중 ‘냉난방 운영비’를 따로 책정한 곳도 있다.
그러나 상당수 학교에서 내부 위원회가 열려도 교장의 뜻대로 냉방 기준이 정해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한 교사는 “일부 교장들은 사고방식이 워낙 보수적이라 냉방 자체를 낭비라 여기며 못마땅하게 본다”면서 “과시하기 좋은 다른 사업에 쓸 예산을 확보하려고 냉방비를 아끼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지침을 교사들에게 알리지 않거나 관행을 지침인 것처럼 대충 얼버무리기도 한다. 경북지역의 5년차 체육 교사는 “며칠 전 처음 ‘에너지위원회’가 열리고 나서야 학교가 냉방 28도 기준에서 예외라는 걸 알았다”며 “이전까지 한 번도 관련 교육청 지침이나 법에 대해 공고를 받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교육계에선 학교 행정의 결정권이 교장 등 몇몇 소수 인사에게만 집중된 게 근본적 원인이라고 설명한다. 서정진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경기지부 정책실장은 “결정권이 교장이나 행정실장 정도에게만 있으니 결국 피해는 일선 교사와 아이들에게 돌아간다”면서 “학교 운영이 민주적이지 못해 생긴 문제”라고 비판했다.
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