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아침 최저기온이 현대적 기상관측 시스템이 도입된 이래 111년만에 역대 최고를 기록하는 등 기록적인 폭염이 이어지는 가운데 전력수급현황에 ‘주황색 불’이 들어왔다. 정부는 정비 중인 원전을 최대한 빨리 다시 가동하고, 정비가 예정된 원전의 경우 정비를 뒤로 미루는 식으로 대응할 예정이다.
전력통계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3일 오후 최대 전력수요는 3시 현재 8977만kW를 기록했다. 전력 수요는 연일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지난 19일에는 오후 최대 전력 수요가 8763만kW를 넘어섰다. 과거 최대치였던 2016년 8월의 8518만kW에 크게 상회하는 수치다. 이에 따라 전력 운영 예비율은 23일 16시 현재 8%대(800만kW 이하)로 떨어졌다. 운영 예비 전력이 500만kW 이하로 내려가면 ‘블랙아웃(정전)’ 위험성이 있다.
폭염으로 냉방전력 수요가 급증하자 정부는 원자력발전소 가동률을 높이는 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올 1월 원전 예방 정비 등으로 57%에 그쳤던 원전 가동률은 이달 들어 70%대로 상승했다. 앞서 정부는 지난해 12월 ‘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올여름 최대 전력수요를 8750만kW로 예측했지만 빗나갔다. 이에 정부는 지난 5일 최대 전력수요 예측을 8830만kW로 수정했다.
예측이 빗나가면서 앞으로 예측량과 실제 최대 수요량의 간극이 더 크게 벌어질 가능성이 제기된다. ‘탈원전’ 정책에 힘을 싣기 위해 전력 수요 예측을 지나치게 보수적으로 한다는 비판도 이어졌다. 올해는 폭염이 20일 이상 장기화한다는 기상청 분석에 전력 대란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았지만, 산업부는 지난 20일에도 전력수요가 하계 전력수급대책 발표 때 예측했던 최대 전력수요인 8830만kW수준까지 상승하더라도 전력 예비력을 1000만kW이상, 전력 예비율을 11% 이상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예측했다.
현재 국내 원전 24기 중 가동 중인 원전은 지난 21일 발전을 재개한 한울 4호기를 포함한 17기다.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은 정비 중인 원전을 최대한 빨리 다시 가동하기로 하고, 정비가 예정된 원전의 정비 일정을 뒤로 미루겠다는 방침을 지난 22일 밝혔다. 전력 피크 기간 내 원전과 석탄·가스발전기 등을 추가 가동해 500만kW의 추가 전력을 공급한다는 것이다.
현재 정비 중인 원전은 한빛 3호기와 한울 2호기 두 곳이다. 한빛 3호기는 지난 5월11일 계획예방정비를 시작했으며 계획대로라면 다음 달 8일 정비가 끝난다. 한울 2호기는 지난 5월10일 계획예방정비를 마쳤지만 지난 12일 돌연 정지해 현재 복구 작업을 진행 중이다. 정비가 예정된 두 원전은 한빛 1호기와 한울 1호기로, 각각 다음 달 18일과 29일에 시작할 예정이었다. 이 두 원전에 대한 계획예방정비 일정은 여름철 이후로 늦춰질 전망이다.
일부에서는 전력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정비기간을 앞당기는 것은 안전상 문제가 많다고 지적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전력업계 종사자는 “그동안 원전 가동률을 떨어뜨렸다가 최근 전력 수요 급증으로 다시 올리는 것은 ‘탈원전’ 방향에도 반(反)하지만 중요한 것은 안전 문제”라며 “발전소가 꼭 필요한 정비를 미루면 기술적 문제가 더 쌓인다”고 꼬집었다. 그는 이어 “꼭 필요한 정비를 늦춰 일찍 가동을 재개하는 조치가 원전 안전에 득이 된다고는 볼 수 없다”고 덧붙였다.
김종형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