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꿨던 꿈은 내 몫으로 남았구려” 노회찬 고교 동창 이종걸 추모글

입력 2018-07-23 16:04
왼쪽부터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 이종걸 더불어민주당 의원. 뉴시스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의 고교 동창인 이종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3일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긴 세월을 같이하며 동반자 같았던 친구의 비보를 접했다”고 침통한 심경을 전했다.

이 의원은 “까까머리 고등학생 시절 서울 화동의 경기고 교정에서 그를 처음 만났다”며 “10대 소년들이 청춘을 즐기기에는 10월 유신으로 그 폭압성을 더해가던 박정희 철권통치가 너무나 분노스러웠다”고 회상했다.

이어 “우리는 ‘창작과 비평’도 읽고, 함석헌·백기완 선생의 강연도 다녔다”며 “퇴학 조치를 불사하고 유인물도 돌리고 데모도 했다. 그러면서 형성됐던 가치관·사회관이 우리의 평생을 지배하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덧붙였다.

이 의원은 “스무 살이 되고 서른 살이 되고 마흔 살이 되고 어느덧 육십 살이 되는 동안 나와 그는 민주화운동을 했던 대학생으로, ‘양심수’와 변호사로, 도망자와 숨겨주는 사람으로, 운동권 대표와 정치인으로, 둘 모두 국회의원으로, 관계는 달라졌지만 한결같이 만났다”고 말했다. “생각은 조금씩 달라졌지만 서로를 신뢰하고 다른 생각을 존중하는 좋은 벗이었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그리운 친구여! 네 모습을 떠올리니 더는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구나. 너와 나눴던 많은 이야기는 나 혼자라도 간직하련다. 더 좋은 세상을 만들자는 그 어렸던 시절 함께 꾸었던 꿈은 내 몫으로 남겨졌구려. 부디 평안하기를”이라고 글을 마무리했다.

이종걸 더불어민주당 의원 페이스북 캡처

두 사람은 1976년 경기고 72회 졸업생이다. 황교안 전 국무총리와도 동창이다. 1956년생인 노 원내대표는 부산고 입시에 실패, 재수 끝에 1973년 경기고에 입학했다. 같은 반 친구이기도 했던 이 의원과 노 원내대표는 각별한 사이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노 원내대표가 결혼할 때 피아노로 축하연주를 해 준 것도 이 의원이었다.

노 원내대표는 2016년 3월 테러방지법 관련 무제한토론(필리버스터) 마지막 주자로 나선 이 의원을 향해 “종걸아 수고 많았다. 감수성 진하던 그 시절에도 못 봤던 너의 눈물, 온 국민과 함께 봤다”는 내용의 글을 트위터에 올렸다. 또 “힘내라”라고 격려한 뒤 “너의 눈물 뿌려진 땅에서 민주주의의 새싹이 대한민국의 봄을 만들어갈 거야”라고 말하기도 했다.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 트위터 캡처

노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9시38분쯤 서울 중구의 아파트에서 투신해 사망했다. 노 원내대표가 아파트 현관 쪽에 쓰러져 있는 것을 경비원이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이 아파트는 노 원내대표 자택이 아니라 어머니와 남동생 가족이 사는 곳으로 확인됐다.

아파트 17층~18층 계단참에서 노 원내대표의 외투, 지갑, 신분증, 정의당 명함, 유서 등이 발견됐다. 노 원내대표는 유서에 금전을 받은 적은 있으나 청탁과 관련이 없다는 내용을 적은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노 원내대표의 시신을 부검하지 않기로 했다. 서울 중부경찰서는 “유족들이 원하지 않는 데다가 사망 경위에 의혹이 없어 부검은 하지 않을 것”이라며 “노 원내대표의 유서는 자필로 작성된 것이 맞다. 내용은 유족의 요구에 따라 공개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노 원내대표는 2016년 총선을 앞두고 ‘드루킹’ 김동원(49·구속)씨 일당으로부터 5000만원을 불법 정치자금 목적으로 수수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그러나 노 원내대표는 “어떠한 불법적인 정치자금을 받은 적이 없다”며 “특검이 조사를 한다고 하니, 성실하고 당당하게 임해 진실을 밝히겠다”고 부인했다.

박은주 기자 wn1247@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