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임 A대표팀 감독 선임을 위한 작업을 시작한지 보름이 넘게 지났다. 하지만 아직까지 별다른 소득은 없다. 새 축구 A대표팀 감독 선임권을 쥐고 있는 김판곤 감독선임위원장이 유럽을 돌며 감독 후보 물색 작업을 했으나 결국 빈손으로 돌아왔다.
축구협회는 외국인이나 내국인으로 선을 긋지 않고 최대한 적합한 후보를 찾겠다고 공언했으나 당초 외국인 감독 쪽에 무게를 뒀던 것은 확실해 보인다. 유럽 현지에서 감독 후보군(포트폴리오)에 오른 외국인 지도자들을 연쇄 접촉하고 왔던 김 위원장의 행보가 이를 반증한다.
또한 늘 국내파 감독과 외국인 감독이 번갈아 가는 선임이 이어졌다. 그렇다면 울리 슈틸리케와 신태용에 이어 이번에는 다시 외국인 감독의 차례다. 국내파 감독 선출에 대한 국민들의 비난 여론 역시 모르지 않았을 리 없다. 여론의 눈치를 많이 봐왔던 그간의 축구 협회 행보를 봐왔을 때 차기 감독은 외국인으로 택할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하지만 차기감독 후보에 대해선 소문만 무성할 따름이다. 브라질 출신의 루이스 펠리피 스콜라리 감독을 시작으로, 이번 월드컵 조별예선 상대로 맞닥뜨렸던 멕시코의 후안 카를로스 오소리오 감독, 전 일본 대표팀 감독 바히드 할릴호지치 감독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모두 현지 언론을 바탕으로 외신을 통해 부임설이 보도됐다. 하지만 정작 축구협회 측은 “접촉한 적이 없다”며 강력히 선을 그었다.
예상대로 차기감독 선임 작업이 쉽지만은 않아 보인다. 설상가상으로 시간적 여유도 없다. 차기 사령탑들이 지휘봉을 잡고 첫 번째로 치르게 될 국제 메이저대회는 내년 1월 아랍에미리트(UAE)에서 열리는 아시안컵이다. 축구협회가 감독 선임에 대해 설정한 데드라인은 9월 있을 첫 A매치 전으로, 차기 감독이 선수단의 구성과 특색을 파악할 시간도 필요하기 때문에 내달 중으론 협상이 끝나가야 한다. 김 위원장은 대표팀 감독 선정 포트폴리오에 10명 안쪽의 지도자가 있다고 공언했지만 이미 이 중 많은 카드가 사라져 버렸다.
이쯤 되면 다시 한 번 신태용 감독으로 회귀하는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축구협회가 신 감독 카드를 꺼내들기엔 쉽지는 않다. 신 감독의 재부임에 대한 반발 여론 역시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이미 대중들의 신뢰가 바닥 치는 상황에서 ‘최악의 수’를 꺼내들자니 많은 고민이 따를 것이다.
그렇다면 신 감독은 지금쯤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신 감독은 러시아에서 귀국한 직후 자신의 거취에 대해 “신중하게 다가가야 할 부분이다. 16강 좌절에 아쉬움이 남고, 독일을 잡고 하다 보니 마음이 정리가 안됐다. 깊이 있게 고민할 시간이 없었기 때문에 답하기가 곤란하다”고 밝힌 바 있다. 어떤 일도 일어날 수 있다는 여지를 남긴 것이다. 차기 사령탑으로 돌아올 가능성 역시 말이다.
◆ 독일전 승리로 바뀐 신태용의 운명, 연임 가능성은?
신 감독은 현재 굉장히 애매한 위치에 있다. 전 국민의 시선이 집중됐던 신 감독의 거취논의에 대한 축구협회의 선택은 ‘연임’도 ‘이별’도 아닌 ‘보류’였다.
신 감독에 대한 축구협회의 신뢰는 여전했다. 축구협회는 지난 5일 오후 2시 서울시 종로구 신문로에 위치한 축구회관에서 감독선임 소위원회를 열고 이번 월드컵에 대한 평가와 함께 차기 감독에 대해 논의를 했다.
축구협회 정몽규 회장은 “월드컵 최종예선 2경기를 치르면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이번 월드컵에서도 언론에서 신태용 감독에 대한 전술, 실험 비판을 했다”고 한 뒤 “공감을 하지만 폄훼하면 안 된다. 최종예선 2경기에서 김민재라는 신인을 기용하는 것은 어느 감독도 할 수 없다. 이번 월드컵에서도 조현우, 윤영선, 주세종 등 대표팀에 나서지 못한 선수들을 과감히 기용한 것에 대한 평가는 받아야 한다”고 신 감독에 대해 높은 평가를 내렸다.
이어 “전 세계에 공공의적인 독일도 한 번 붙어볼 수 있다는 희망을 준 것 같다”면서 “신 감독의 과가 지나치게 부각된다고 생각한다. 동전의 양면이다”라고 신 감독의 공로를 강조했다. 당시 정 회장은 “외국 감독들은 한국보다는 중동, 아프리카를 선호한다”며 “같은 아시아 국가 중에는 한국보다 일본을 더 좋아한다”고 밝혔다. 팬들의 기대치에 충족하는 감독의 선임이 어렵다는 것을 돌려 말한 셈이다.
김판곤 위원장 역시 “신태용 감독을 충분히 평가할 것이고, 평가하고 있다. 신태용 감독이 갖고 있는 철학, 미디어를 대하는 능력, 전략을 결정하는 부분들, 선수들과의 소통 등 모든 부분을 파악하고 있다”며 신 감독을 차기 감독 후보에서 제외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결과적으로 조별예선 마지막 경기였던 독일전의 드라마틱한 승리의 공로를 인정받았다. 독일전을 앞두고 대표팀을 향한 국민들의 냉대와 질타가 절정에 이르렀지만, 독일전 승리는 떠나갔던 팬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되돌려놓기에 충분했다. 독일전 승리가 신 감독의 운명 역시 바꾼 셈이다.
무엇보다 독일전 승리는 신 감독을 남겨두게 함으로써 축구협회가 가진 외국인 감독의 모든 경우의 수가 사라졌을 때 대비책이 됐다. 이미 신 감독 연임에 대한 최소한의 밑그림을 그려둔 것이다.
◆ 신태용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신 감독은 월드컵 일정을 모두 소화한 후 대중들의 따가운 눈초리를 피해가듯 안개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어떠한 근황도, 자신의 추후 거취에 대해서도 공개하고 있지 않다.
신 감독 역시 자신이 후보 선택지에서 최하위에 있음을, 그리고 팬들의 시선이 모두 자신을 외면하고 있음을 알고 있을 것이다.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선택지가 없어 차기 감독직을 맡더라도 팬들의 냉대와 질타 속에 싸워야한다. 아시아무대에서만큼은 강호로 꼽히는 한국이이기에 다가올 아시안컵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방법은 오직 단하나, 우승뿐이다. 실패한다면 모든 책임을 고스란히 홀로 뒤집어 써야한다.
신 감독 뿐만 아니라 국내파 감독에 대한 대중들의 시선은 싸늘하다. 그간 이어져온 축구협회의 학연과 인맥 중심 발탁에 대한 분노다. 축구협회를 비롯한 외부의 주문이나 압박에 휘둘리지 않을 수 있는 외국인 감독만을 원하고 있다.
스스로를 ‘난놈’이라 칭하며 항상 자신감을 드러냈던 신 감독이기에 이런 굴욕적인 상황 속에 자신의 거취에 대해 분명하게 밝히지 않는다는 점이 다소 이해가 가지 않기도 하다. 신 감독은 월드컵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2016 리우 올림픽 8강행과 U-20 월드컵 16강을 이끌어내며 나쁘지 않은 감독 커리어를 이어왔다.
비록 16강 진출이라는 소기의 목표 달성 실패와 전술적 오판을 드러냈던 문제점도 있었지만, 독일전 승리는 조금이나마 그러한 ‘과(過)’의 면제부가 돼줬다. 분명히 신 감독에게 박수 칠 때 떠날 수 있도록 아름다운 이별을 할 기회가 있었으나 이미 시기를 놓쳤다.
그가 왜 스스로 축구협회가 비난여론을 막기 위해 앞세운 방패막이를 자처하는 것일까. 자신을 향한 대중들의 시선을 바라보며 그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신 감독이 자진해서 대표팀 감독직이라는 악어 입으로 뛰어들지는 지켜 볼 일이다. 그간의 발언으로 봤을 때 축구협회가 외국인 감독 선임에 난항을 겪을 지금의 상황을 예견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터질지 모르는 최후의 상황에 대비해 신 감독이라는 최후의 ‘안전핀’을 꼽아둔 것이다.
송태화의 인저리타임
인저리타임. 전광판의 시계는 아직 멈추지 않았습니다. 송태화 기자가 함성소리에 스며드는 이야기를 전하는 스포츠 연재입니다.
송태화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