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대통령이 20일 새누리당(자유한국당 전신)의 20대 총선 공천에 개입한 혐의로 징역 2년을 선고 받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2부(성창호 부장판사)는 공천개입 혐의를 받는 박 전 대통령의 공천 개입 혐의와 관련해 “친박 후보의 다수 당선이라는 뚜렷한 목적의식에 따라 청와대가 공천룰을 개발하거나 새누리당 공천관리위원회 구성에 개입했다”고 명시했다. 박 전 대통령의 공천개입은 뚜렷한 차기 지도자가 보이지 않는 보수 진영의 현주소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박 전 대통령의 공천개입사례처럼 보수가 집권 기간 동안 지속가능한 인력충원 구조를 만들지 않고 권력다툼에만 몰입한 것이 근본적인 원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당 의원 112명 중 초·재선 의원은 74명(66%)이지만, 보수의 주자로 장래성을 인정받는 인물은 잘 보이지 않는다. 보수 진영 내부에서도 “노동당 장기집권을 깨고 보수당 정권을 되찾아온 데이비드 캐머런 전 영국 총리 같은 인물이 왜 없느냐”는 한숨들이 나온다. 근본적 이유는 지난 12년 간의 계파 공천에 있다는 것이 당 안팎의 분석이다. 한국당 전신 한나라당의 지난 18대 총선 공천은 ‘친이 공천’이었다. ‘공천 학살’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친박계가 줄줄이 떨어져나갔다. 반대로 새누리당의 19대·20대 공천은 ‘친박 공천’이었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권력자에 의해 발탁되고 보호 받은 사람들이 누군가를 위한 정치를 할 순 있어도 자신의 철학과 신념을 가지고 주도권을 가져오는 것은 어렵다”고 꼬집었다. 이현우 서강대 교수도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권력이 집중되면서 가치 논쟁보다는 충성심 경쟁이 우선시 됐다. 당의 가치가 수구 일색으로 획일화 된 것도 공천이 원인”이라고 진단했다.
당내에서는 인재를 키우지 않고 외부 명망가를 영입한 보수 정치권의 관행이 인물난의 원인을 찾는 목소리도 있다. 원내대표를 지낸 정진석 의원은 최근 한 토론회에서 “지역이라는 거친 들판 위해서 자력갱생한 사람들이 차기, 차차기(지도자)가 되는 시스템이 한국당에는 없다”고 비판했다. 한국당의 한 국회의원 보좌관은 “민주당은 과거 민주화운동 시절 함께했던 동료나 후배들을 어떤 형태로든 국회로 들어오도록 밀고 끌어주는 문화가 있지만, 한국당은 그런 문화가 거의 없다”고 전했다. 의정활동 경험이 있는 인재가 민주당에 더 많이 모일 수밖에 없는 구조인 셈이다.
전문가들은 한국당이 인재난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공천 시스템 정비와 문호 개방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현우 교수는 “한국당의 지난 공천은 기득권 범주 내에 있던 엘리트들의 돌려막기 방식이었다. 능력 있는 보수의 충원을 위해서는 먼저 공정한 룰을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형준 교수는 “유럽은 10대 때 청년 정당 활동 하지 않은 사람은 절대로 당대표가 될 수 없다. 유럽 정치가 강한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며 “데이비드 캐머론 같은 총리가 한국당에서 나오려면 정치 입문 환경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심우삼 기자s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