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변이 나오는 건 다른 문제가 생겨서가 아니라 쓰고 있는 약 때문에 그래요. 당분간 음식을 드시지 않으면 나아질 겁니다. 잘 치료해봅시다.”
서울아산병원 종양내과에서 지난해부터 ‘입원전담전문의’로 환자들을 돌보고 있는 김준환 교수(40·사진)는 하루에 두 번씩 25여명의 환자들과 만난다. 필요에 따라 한 환자를 5~6번 보는 날도 있다. 20일 병원에서 만난 김 교수는 혈전이 생겨 내원한 환자가 갑자기 혈변까지 하게 돼 불안해하자 보호자에게 원인과 치료방법을 자세히 설명해주고 있었다. 김 교수는 “환자들과 충분히 소통한 후 치료에 들어가기 때문에 불필요한 오해를 줄일 수 있다”며 “앞으로는 환자들이 적극적으로 자신의 병에 대한 치료계획을 세우길 바라는 추세로 나갈 것이므로 의료진과 충분한 협의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 교수가 하고 있는 입원전담전문의 역할은 환자들에게 아직 생소하다. 병원조차 국내에서는 상급종합병원처럼 규모가 큰 병원만 하고 있다. 이 제도는 보건복지부가 입원 환자의 안전을 보장하고 많은 환자를 도맡고 있는 전공의의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지난 2016년 9월부터 시범적으로 운영했다.
아산병원 종양내과 병동에는 김 교수를 비롯해 5명의 입원전담전문의가 교대로 24시간 병원에 머문다. 낮 근무일 때는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까지, 밤 근무는 오후 6시부터 다음날 오전 8시까지다. 김 교수의 하루 일과는 일반 전문의와 조금 다르다. 출근하자마자 전날 밤 일어난 환자들의 진료 기록을 보고 오전 회진을 시작한다. 전날 오후에 회진을 했지만 환자 상태는 하루도 채 안 돼 바뀔 때가 많다. 환자의 변화에 맞게 처방과 검사를 하다보면 오전이 다 간다. 오후에는 새로 입원하는 환자들과 통성명을 한다. 갑자기 병을 진단받은 환자의 불안감을 잠재워주는 역할도 한다. 오후 4시쯤 두 번째 회진을 돌고 나머지 기록을 정리하면 하루가 끝난다.
환자의 상태가 급변해 촌각을 다툴 때, 병원에 상주하는 입원전담전문의가 빛을 발한다. 몇 달 전 일이었다. 김 교수가 맡던 입원 환자 중 한 명이 새벽 2시에 복강 출혈을 일으키며 상태가 급격히 악화됐다. 입원전담전문의가 없었다면 환자는 간호사가 담당 의사를 호출해 오기까지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었다. 병원에 머물고 있던 김 교수는 타 병동 의료진과 협진해 빠르게 처치했다. 병원에 상주한다는 것의 가장 큰 장점은 이런 발빠른 처치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병원 내 감염으로 인한 위험도 감시가 가능하다. 불결한 요소, 약물관리 등을 쉽게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환자의 만족도 역시 높았다. 연세대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입원전담전문의가 있는 병동의 환자는 다른 환자와 비교해 담당 의사를 평균 1.63배 빨리 만날 수 있었다. 입원기간 중 의사를 만나는 횟수는 평균 5.6회, 면담시간은 32.3분 증가한 것으로 조사됐다.
하지만 이 제도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의료인력 자체가 부족한 중소형 병원이 입원전담전문의까지 둘 여력이 없는데다 수련을 받고 있는 전공의들도 선택하길 머뭇거리고 있다. 하나의 전문 분야로서 입지가 갖춰진 것도 아니고 병원 내 입지도 애매하다는 이유 때문이다. 현재 18개 병원에 있는 입원전담전문의는 72명에 그친다.
이 때문에 복지부는 내년부터 입원전담전문의가 2명 이상인 과목당 전공의 정원을 1명 더 추가 배정하는 제도를 시행한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정부가 늘려준 전공의들을 잘 수련해 입원전담전문의로 키우는 것도 한 방법”이라며 “입원전담 분야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전문인력을 교육시키는 등 체계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입원전담전문의는 한 달에 일주일 이상은 새벽에 근무해야 하는 특성상 쉽게 지칠 수 있다”며 “그에 맞는 적절한 보상도 수반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 교수는 환자들에게 입원전담전문의의 역할을 알리는 것도 중요하다고 했다. 그는 “아직 많은 병원은 입원전담전문의가 없지만 환자들의 요구가 늘어난다면 점차 전문의를 두려고 하는 병원이 많아질 것”이라며 “외래 진료, 수술, 입원환자 회진 등에 시달리는 담당의사의 업무강도도 줄일 수 있다”고 전했다.
최예슬 기자 smar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