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서 긴 국정원… 박근혜 뇌물수수 혐의 ‘무죄’

입력 2018-07-20 16:03 수정 2018-07-20 16:16
박근혜 전 대통령. 국민일보 DB

법원이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 수수 사건에서 수뢰 혐의를 무죄로 판단했다. 상·하급자 간 대가성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권력에 알아서 굴복하고 자진 상납한 지난 정권의 국정원이 박 전 대통령의 혐의 하나를 무죄로 만들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2부(부장판사 성창호)는 20일 국정원 특활비 수수 혐의에 대한 1심 선고공판에서 박 전 대통령에게 징역 6년, 추징금 33억원을 선고했다. 국고손실 혐의와 횡령 혐의에 유죄를 판단했지만 뇌물수수 혐의를 무죄로 봤다.

재판부는 “국정원장은 대통령 직속기관으로 업무를 수행한다. 대통령에게 국정원 자금을 전달했다는 이유만으로 뇌물의 대가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 국정원장들(남재준·이병기·이병호)은 특별한 계기를 갖지 않고 단순히 지원해 달라는 피고인(박 전 대통령)의 지시·요구에 따라 수동적으로 지급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또 “국정원장들이 임명의 대가로 특활비를 지급했다고 보기 어렵다. 특활비를 지급하기 시작할 때부터 도움을 받을 현안이 있다는 증거도 없는 것으로 판단된다”며 “국정원장들이 특활비를 지원하고도 청와대와 마찰을 빚는 등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검찰이 제출한 증거는 (임명과 업무 편의의) 대가로 지급된 것이라는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정도로 충분히 입증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왼쪽부터 남재준·이병기·이병호 전 국정원장. 뉴시스

박 전 대통령은 집권 기간인 2013년 5월부터 2016년 9월까지 남재준·이병기·이병호 전 국정원장으로부터 특활비 총 36억5000억원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지난달 14일 결심공판에서 이 혐의에 대해 징역 12년·벌금 80억원·추징금 35억원을 구형했다.

법원은 앞서 지난달 15일 박 전 대통령에게 특활비를 상납한 혐의로 기소된 남재준·이병기·이병호 전 국정원장의 1심 선고공판에서 국고손실 혐의에만 유죄를 선고하고 뇌물공여 혐의를 무죄로 판단했다. 국정원장들이 박 전 대통령에게 건넨 특활비를 공여된 뇌물이 아닌 횡령해 넘긴 자금으로 봤다. 박 전 대통령의 뇌물수수 혐의도 같은 맥락에서 판단됐다.

재판부는 “뇌물죄 대법원 판례를 보면, 공무원이 직무와 관련해 받은 금품의 뇌물죄는 쌍방의 관계, 금품 교부의사와 시기 등 제반 사정을 감안해 결정해야 한다”며 “검찰 증명이 그 정도에 이르지 않으면 유죄 의심이 있어도 무죄로 판단하는 것이 형사 재판의 대원칙”이라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비록 박 전 대통령의 뇌물수수 혐의를 무죄로 판단했지만 국고손실 혐의에 대해서는 유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이 특활비를 받은 건 특가법상 국고손실에 해당한다”며 “특활비 수수는 횡령 행위에 해당한다. 피고인은 처음부터 국정원장과 공모해 특활비 횡령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자유한국당의 전신인 옛 새누리당 공천개입 혐의(공직선거법 위반)에 대해 징역 2년을 선고했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