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고대가요 ‘구지가’의 문학적 해석을 두고 성희롱 논란이 일었다. 인천의 한 사립여고 교사가 구지가의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어라’는 대목에서 거북이 머리를 남자의 성기로 해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학교는 교사의 설명이 학생 성희롱에 해당한다며 징계 절차를 밟았다.
그러나 이 같은 내용이 알려지자 여론은 ‘어이없다’는 반응이 대다수를 이뤘다. 수십 년 동안 수업으로 배워온 구지가의 남근 해석을 희롱의 표현으로는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문제를 제기했던 학생들은 “해당 교사가 구지가 때문에 성희롱 징계를 받았다고 알려졌지만, 실제로는 그 문제 때문만이 아니다”라며 “황당한 ‘미투’로 몰고 가지 말아 달라”고 호소했다.
19일 학생들은 국민일보를 통해 “또다시 우리들의 입장을 표명하는 이유는 억울하고 답답해서다. 기사만 보면 우리가 이상한 생각을 갖고 있는 예민한 사람이 돼있다. 또 선생님을 싫어해서 몰아내려는 것처럼 비춰졌다”며 “우리가 피해자인데 가해자가 된 기분이 들어 정말 속상하고 눈물이 났다. 그렇다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언론에서는 구지가만 공론화됐고 해당 기사와 댓글만 봐도 모두 우리가 이상하다고만 할 뿐 우리 편은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이래서 무식한 것들에게 가르치면 안 된다’ ‘이상한 생각을 하고 있으니 이상하게 받아들이는 것 아니냐’ ‘황당한 미투 운동이다’ 등 심한 폭언들과 욕설을 들었다. 그래서 이대로 우리가 가해자가 되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고 부연했다.
◆ ‘거북이=성기, 물=자궁’ 설명하며 “여기까진 알 필요 없다”
학생들은 다시 한번 문제가 된 발언들을 언급했다. A양은 “구지가 문제에 대해 다시 말씀드리면, 선생님은 ‘거북이는 남성의 성기를 의미하고 물은 자궁을 의미한다’며 ‘거북이의 머리를 물에 넣었다 뺐다’까지 말하곤 ‘여기까지는 알 필요 없다’고 하셨다”면서 “알 필요 없는 내용임을 알고 도중에 말을 끊었다는 것은 선생님도 ‘이건 좀 그렇다’는 생각이 들었던 게 아닌가? 그런데 왜 굳이 말씀했던 건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구지가에서 거북이 머리가 남근으로 해석된다는 것 자체를 문제 삼는 게 아니었다. 선생님이 객관적인 지식을 전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수업을 핑계로 성적인 뉘앙스를 엮으려고 했다는 데서 불쾌감을 느꼈다는 것이다.
B양은 “선생님은 평소에 수업과 관련 없고, 학생들에게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만한 이야기를 많이 했다. 예를 들면 ‘동창회에서 동창들과 룸에서 놀았지만 여자와 놀지 않았다’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이 내가 가르쳤던 제자였다’고 말했다”면서 “한 번은 대뜸 지인 얘기를 하면서 ‘그분은 마음에 드는 여성이 받아줄 때까지 따라다녔고 여성분 집의 담을 넘기도 했다’며 ‘그 뒤로 결혼해서 잘 살고 있고 자녀들은 명문대를 갔으며 돈도 잘 번다. 그런 남자가 용기 있고 멋있는 남자다’라고 했다”고 전했다. 이를 듣고 있던 학생이 “‘스토킹 범죄를 미화하는 게 아니냐’고 하니 ‘말이 많다. 조용히 하라’고 혼을 냈다”며 “스토킹을 로맨스로 둔갑시키는 것이 우리 상식선에선 이해가 되질 않는다”고 말했다.
◆ “여자들, 젊어서는 남편에게, 늙어서는 아들에게 기대면 잘 살 수 있어”
C양은 “선생님께서는 ‘여자는 남자에게 기대어 살아가는 존재이며, 젊어서는 남편에게 기대어 남편 말을 잘 듣고 늙어서는 아들에게 기대어 아들 말만 잘 들으면 잘 살 수 있다’고 했다. 여자를 남자에게 기대어 살아가는 존재로 인식하고 그것을 여학생에게 발설하는 것 자체가 선생님이라면 갖지 말아야 할 가치관과 발언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교직원 연수에서 성에 민감한 문제가 많으니 선생님들은 학생을 지도할 때 1m 이상 떨어져서 지도해달라는 방침이 떨어졌다. 그럼에도 졸고 있는 학생을 깨울 때 어깨를 쓰다듬는다던가 팔을 주무르기도 했다”면서 “다리를 차거나 필통으로 학생의 머리를 치기도 했는데 대다수의 학생들은 수치심과 불쾌감을 느꼈다”고 설명했다.
D양은 “나는 선생님이 불쾌한 행동을 하실 때마다 싫다는 표현을 많이 했는데, 그럴 때마다 나에게 ‘이X끼야 저X끼야’라며 손가락질을 했다”며 “특히 선생님 말에 문제를 제기 할 때마다 우리말을 제대로 들어주기는커녕 ‘예의 없다’는 말로 무시당하기 일쑤였고, 선생님과 마찰이 잦은 몇몇 학생들에게는 더 가혹하게 대한다고 느꼈다. 나 역시 그런 느낌을 받았다”고 고백했다. 그러면서 “우리 반 28명 학생 중 전학 간 학생 1명, 신고 날 결석한 학생 1명을 제외한 26명이 모두 똑같은 감정을 느꼈기에 학부모 분들의 도움을 받아 신고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학생들은 자신들이 제기한 이 문제들에 대해 선생님이 올린 해명글도 봤다면서 “선생님은 전부 오해라고 설명하는데, 우리로썬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며 “대부분의 발언이 ‘교육적인 목적’이라고 설명하셨지만, 실제로 ‘교육적’이라고 할 수 있는 그 속뜻은 전혀 얘기하지 않으셨고, 수업 중에 느닷없이 그런 말을 하셨다. 선생님께서 충분히 설명해주셨으면 불쾌감을 느끼지 않았겠지만 앞뒤 맥락 없이 갑자기 그런 말을 하니 불쾌하고 오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예컨대 앞서 언급한 ‘스토킹’ 얘기에서도 ‘이런 행동이 예전에는 로맨스지만 지금은 범죄’라고 한마디만 해줬어도 이해했을 텐데, 실제로 그런 말을 전혀 하지 않았다. 그런데 해명글에서는 그런 의도로 한말이라고 설명하니 우리로썬 황당할 뿐”이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학생들은 “만약 이 일은 성희롱이 아니며 ‘교권침해’라는 판결이 난다면 다음 학기에 해당 문학 선생님께 또 수업을 받아야 한다”라며 “선생님의 발언들이 정말 ‘교육적 목적’이었다면 우리 반 뿐만 아니라 다른 반에서도 똑같은 설명을 했어야 했다. 그러나 우리 반에서만 그렇게 말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선생님의 해명은 앞뒤가 맞지 않고 납득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이어 “일각에서는 우리가 선생님을 싫어해서 벌인 일이라 매도하는데, 충분히 고민하고 논의한 끝에 신고한 것이다. 부디 우리의 목소리를 황당한 미투로 몰아가지 말아달라”고 호소했다.
신혜지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