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남자 23세 이하(U-23) 축구대표팀이 다음달 18일 개막하는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우승에 도전한다. 아시안게임 남자 축구 사상 첫 2연패를 노리고 있다.
김학범 감독은 손흥민(토트넘 홋스퍼) 조현우(대구FC) 황의조(감바 오사카)를 와일드카드로 차출했다. 아시안게임에 발탁되는 대표팀은 한국 남자 23세 이하(U-23)의 선수들로 구성되지만, 그 외 3명의 선수들을 연령 제한 없이 와일드카드로 선발할 수 있다.
거대한 팬덤이 형성된 프로 종목 선수들은 금메달의 영예만큼이나 병역 면제에 관심이 집중돼 있다. 축구도 예외가 아니다. 유독 병역 면제와 관련된 국제대회와 인연이 없던 손흥민은 가장 큰 관심을 받는 선수 중 하나다. 1992년생인 손흥민은 이번 아시안게임이 병역 면제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사실상 마지막 기회다.
한국은 2012 런던올림픽에서 동메달, 2014 인천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수확해 출전 선수들이 군 복무 면제 혜택을 받았다. 손흥민은 두 대회에 출전하지 못했다. 축구팬들을 비롯한 국민 상당수는 아시안게임 우승으로 손흥민의 병역 혜택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 청와대 홈페이지에 그의 군 면제를 요구하는 국민청원이 매일같이 올라올 정도다.
하지만 손흥민과 동갑내기 친구 황의조의 상황은 다르다. 그를 대하는 대중들의 시각은 180도 반대다. 김 감독은 이미 대표팀 명단 발표 전부터 황의조에 대한 차출 의사를 드러내 ‘의리축구’ ‘인맥축구’ 논란을 부르고 있었다. 황의조와 김 감독은 2014년부터 2016년까지 성남FC에서 팀의 간판 공격수와 감독으로 인연을 맺었다.
김 감독은 황의조 선발에 대한 비난 여론을 충분히 의식하고 있었다. 와일드카드 선발을 한 직후 황의조 선발과 관련해 가장 먼저 입을 열었다. 예견된 역풍을 알고 있었지만 김 감독의 선택은 변하지 않았다. 대중들의 싸늘한 시선과 쏟아질 뭇매를 감수하고도 황의조 카드를 뽑아들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역풍 각오하고 뽑아든 김학범의 ‘황의조 카드’ 그 이유는?
가장 명쾌한 해답은 김 감독의 입에서 나왔다. 김 감독은 기자들의 질문이 나오기도 전에 “학연, 지연, 의리가 없다. 내가 그 바탕에서 쌓아 올라왔다. 어떤 지도자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며 강한 어조로 밝혔다. 작심한 듯 황의조 차출 논란을 노골적으로 말했다.
그는 “손흥민, 황희찬, 이승우의 합류 날짜가 불분명하다. 나상호라는 공격수 한 명으로 조별리그를 치를 수 있어 와일드카드에 공격수 두 명을 선발한 것”이라고 밝혔다. 석현준을 별도로 언급하면서 “황의조의 컨디션은 굉장히 좋다”며 치켜세웠다.
김 감독의 말 대로다. 황의조는 현재 일본 J리그 감바 오사카의 없어서는 안 될 팀 내 주포로 활약하고 있다. 부상 이후 별다른 활약 없이 휴식기를 보내는 석현준과 대조되는 모습이다.
소속팀의 비협조적인 태도로 직접 기량을 점검하지 못했던 이강인과 백승호 역시 마찬가지다. 아직 성인 무대에 데뷔 하지 못한 선수들이라 실전 감각을 확인해볼 기회조차 없었다. 모르는 선수들을 기용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후보로 거론됐던 이들보다 황의조가 현 시점에서 우선적인 카드란 점은 분명해 보인다.
무엇보다 김 감독이 성남FC를 이끌던 당시 황의조를 다뤄본 경험이 있는 것은 ‘의리’로만 볼 수 없는 요인이다. 김 감독이 가장 정확하게 활용할 수 있는 선수란 얘기다. 황의조는 김 감독 체재에서 ‘성남의 왕’으로 군림했다. 2015-2016시즌에는 리그 71경기 21골을 기록하는 환상적인 퍼포먼스를 이어갔다. 김 감독은 황의조의 스타일과 특색을 잘 활용할 수 있으며, 황의조 역시 김 감독의 전술에 대해 그 누구보다 높은 이해도를 가지고 있다. 황의조는 김 감독에게 없어서는 안 될 가장 중요한 카드이자 조커다.
또 개막까지 30일도 남지 않은 시간이 넉넉하지 않은 상황에서 아직도 손흥민과 황희찬(잘츠부르크) 등 유럽에서 뛰고 있는 선수들의 차출 시기가 명확히 결정되지 못했다. 그들이 조별리그부터 합류할지, 토너먼트부터 합류할 것인지도 확실치 않다. 대한축구협회는 “차출은 확실하다. 하지만 시기를 조율할 부분이 남았다”고 밝혔다.
만일 해외파 선수들의 차출이 늦어진다면, 황의조가 없는 상황이라고 가정했을 때 대표팀의 공격진에 큰 문제가 생긴다. 광주의 나상호 역시 출중한 자원이지만 그에게 모든 것을 맡기기에는 국제 대회 경험이 없는 어린 선수에겐 부담감이 크다. 무게감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들의 차출 시기에 대표팀의 운명을 결정할 수는 없다. 아시아 무대에서 만큼은 영원한 우승후보로 꼽히는 한국이지만, 상대가 아무리 약체라도 국제대회에서 확실한 승리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황의조는 다음달 5일 나고야그램퍼스와의 원정경기를 마친 뒤 6일 귀국해 경기도 파주 국가대표트레이닝센터에 입소하기로 소속팀 감바 오사카에게 확실한 도장을 받아냈다. 예선에서부터 확실히 활용할 수 있다. 공격진의 무게감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나이와 경험이 있는 황의조의 존재는 대표팀에게 큰 힘이 될 수 있다.
◆지금 황의조는 감바 오사카의 ‘에이스’
황의조는 울리 슈틸리케 전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 체제에서 간간이 모습을 드러냈으나 인상적인 활약을 펼치지 못했다. 신태용 감독이 부임한 뒤에는 좀처럼 기회를 얻지 못했다. 2018 러시아월드컵 최종 엔트리 승선에 실패했다. 많은 축구팬들이 U-23대표팀에서 이뤄진 황의조 선발에 의문을 갖는 이유는 그래서다.
지금의 황의조는 다르다. 현재 J리그에서 16경기에 출전해 7골을 넣으며 물오른 기량을 선보이고 있다. 일본 J리그의 감바 오사카의 대체불가 한 핵심 공격수다. 전체 득점랭킹 3위에 올라 있다. 팀 동료들과의 유기적인 플레이와 탁월한 골 결정력이 절정에 올랐다.
당초 감바는 황의종 같은 명실상부한 팀 내 에이스 차출을 반대했다. 현재 J리그 16위로 강등권에 머물고 있기 때문에 황의조의 부재는 치명적이다. 감바는 올시즌 리그 16경기에서 14골밖에 넣지 못했다. 황의조가 득점 절반을 책임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김 감독이 직접 감바 관계자들을 만나 수차례 설득해 가까스로 허락을 받아냈다. 감바는 선수의 미래를 생각해달라는 호소를 받아들였다.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획득해 병역 혜택을 받는다면 황의조와 더 오래 함께 할 수 있다는 계산에서 눈앞의 작은 이익을 버리기로 했다.
◆‘인맥’과 ‘의리’ 한국축구를 향한 불신
많은 축구팬들이 황의조의 선발을 두고 김 감독의 ‘의리축구’ ‘인맥축구’ 이야기를 하며 분노했다. 그동안 축구협회에서 지속돼왔던 학연과 인맥 중심 발탁에 강한 불신이 고스란히 그들에게 옮겨간 측면이 없지 않다.
무엇이 ‘인맥’이고 무엇이 ‘의리’일까. 한국 프로축구는 K리그1(클래식)과 K리그2(챌린지)의 모든 구단을 합쳐도 22개뿐이다. 이름 난 유망주 상당수는 고려대와 연세대로 향한다. 이런 좁은 축구계에서 ‘인맥’을 이야기하는 것이 처음부터 아이러니일 수 도 있다. 서로 아무런 관계가 없는 사람은 거의 없다는 얘기다. 김 감독과 황의조를 ‘인맥’이란 프레임에 가두기에는 조금 야박하다는 의견도 나오는 이유는 그래서다..
모든 팬을 만족 시킬 수는 없다. 경기마다 자신의 자리를 걸고 싸우는 감독직인 만큼 그 어떤 감독도 선수 선택에 있어서 신중하지 않은 경우는 없다. 여론과 제 3자의 시선에 휘둘리지 않고, 외압에 굴복하지 않고 자신의 전술적 판단에 따라 철학을 고수하는 것 역시 감독이 소양해야 할 필수적인 역량 중 한 부분이다.
자신의 전술적 선택에 따라 자신의 입맛에 맞는 선수를 선발하는 것은 당연하다. 때로는 ‘원칙’과 선수들의 ‘명성’보다 감독의 개인적 판단이 우선할 때도 있다. 그것이 선수 선발에 있어서 감독만이 가지고 있는 고유 권한이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황의조는 태극마크를 가슴에 새기고 아시안게임 축구 2연패에 나서는 대표팀의 일원이다. 황의조는 대표팀 합류 전부터 과거 제자였던 인연으로 병역 면제를 받으려는 것이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와 또다른 싸움을 하고 있다. 그를 향한 비난은 이미 위축된 그의 어깨를 더욱 내려앉게 한다. 모든 것은 결과가 말해 줄 것이다. 평가는 그때해도 늦지 않다.
송태화의 인저리타임
인저리타임. 전광판의 시계는 아직 멈추지 않았습니다. 송태화 기자가 함성소리에 스며드는 이야기를 전하는 스포츠 연재입니다.
송태화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