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전날개 통째 날아가 추락까지 단 10초… 기체결함 의혹

입력 2018-07-19 01:31
해병대 상륙기동헬기(MUH-1) 마린온 2호기가 지난 17일 추락하던 순간이 담긴 영상이 18일 공개됐다. 경북 포항 비행장 활주로에서 떠오른 헬기가 얼마 이동하지 않아 회전날개 4개 중 1개가 분리되더니(왼쪽 두 번째) 나머지 날개 3개마저 떨어져 나가고 있다(맨 왼쪽). 이륙한 지 4∼5초 만에 벌어진 일로, 기체 결함을 의심케 하는 장면이다. 동체는 곧 추락해 전소됐고 승무원 6명 중 5명이 숨졌다. 해병대 제공

지난 17일 추락한 해병대의 상륙기동헬기(MUH-1) 마린온 1대는 이륙 4∼5초 만에 회전날개(메인로터)가 부러져 추락한 것으로 확인됐다. 해병대원 5명이 숨지고 1명이 중상을 입은 이번 사고는 사실상 기체 결함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마린온 제작사인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은 기체 안전성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한 상태로 전력화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해병대의 마린온 전력화 계획 역시 차질이 빚어질 것으로 보인다.

해병대는 사고 당시 CCTV 영상을 18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헬기는 경북 포항시 남구 포항 비행장 활주로에서 이륙한 지 4∼5초 만에 ‘십자(+)’ 모양의 회전날개 4개 중 1개가 부러져나갔다. 그 직후 나머지 날개 3개가 붙은 부분이 통째로 기체에서 떨어져나갔다. 이와 동시에 균형을 잃은 기체는 왼쪽으로 쏠리며 추락했다. 이륙부터 추락까지 10초밖에 안 걸렸다. 해병대는 이 영상을 근거로 사고 시점을 오후 4시46분에서 4시41분으로 정정했다.

사고 원인은 기체 결함으로 판명날 가능성이 크다. 갑자기 부러진 날개 자체가 불량이었거나 회전날개와 동체를 연결하는 부분에 결함이 있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인수한 지 6개월 된 헬기가 기체 노후화로 떨어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마린온과 비슷한 기종인 ‘슈퍼푸마’ 헬기도 2016년 노르웨이에서 날개가 떨어져나가며 추락했다.

17일 밤 활주로에 널브러져 있는 회전날개 3개와 동체 잔해. 해병대 제공

불완전한 정비 탓일 수도 있다. 추락 당일 시험비행 전 KAI 관계자들이 이 헬기를 정비했다. 해병대 정비팀이 갖춰지기 전까지 제작사 측은 정비를 주관한다. 군 관계자는 “정기 점검 차원에서 정비가 이뤄졌으며 정비가 잘 됐는지를 파악하기 위해 시험비행을 하다가 추락 사고가 난 것”이라고 말했다.

더욱이 헬기는 기체 높이의 배 정도인 10m 상공에서 추락했다. 조종 미숙으로 추락했다고 볼 수 없을 만큼 비행시간은 짧았다. 특히 정조종사인 김모(45) 중령은 미국 비행시험학교 과정을 수료했으며 3300시간의 비행 경험이 있다.

사고로 숨진 5명은 1계급 특별진급이 추서됐다. 장례는 해병대사령관장으로 치러질 예정이다. 유족들은 “관계자 처벌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며 군 당국에 거세게 항의했다. 일부 유족은 화재 진압이 늦어진 탓이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얼굴과 다리 등을 크게 다친 정비사 김모(42) 상사는 이날 의식을 되찾았다.

사고로 2023년까지 마린온 28대를 단계적으로 실전 배치한다는 계획은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마린온 4대는 올 상반기 해병대에 인계됐다. 이 중 지난 1월 인계된 마린온 2호기가 이번에 추락했다. 일단 마린온 2대를 하반기 중 해병대에 인계한다는 계획부터 연기될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 기술로 개발된 마린온은 안전성 논란을 빚은 수리온을 개조해 만든 것이다. 수리온을 함정 탑재가 가능한 형태로 만들기 위해 날개를 접는 기능이 마린온에 추가됐다. 이 과정에서 결함이 발생했을 가능성도 거론된다. 이번 사고가 수리온 수출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군 당국은 해·공군, 국방기술품질원, 육군 항공작전사령부, 항공사고 전문가 등 5개 기관의 25명으로 조사위원회를 구성했다. 해병대는 현재 헬기 운항을 전면 금지한 상태다. 군 당국은 마린온뿐 아니라 육군의 수리온 90여대도 운항을 중단시켰다.

해병대 상륙기동헬기(MUH-1) 마린온 1호기가 18일 경북 포항 비행장에 세워져 있다. 전날 2호기가 이곳에서 시험비행하다 추락했다. 해병대는 지난 1월 인수한 마린온 1, 2호기를 운용시험 과정을 거쳐 해병대 1사단에 배치할 계획이었다. 뉴시스

김경택 기자 pty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