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거래·법관사찰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이 유신 시절 ‘긴급조치 9호’ 피해자들의 국가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대리한 전성 변호사를 최근 소환조사했다. 소송 1심 결과가 국가 배상 책임이 없다는 대법원 판례와 반대로 나오자 ‘양승태 법원행정처’는 박근혜 당시 대통령을 의식해 이를 항소심에서 신속히 뒤집으려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부장검사 신자용)는 지난주 전 변호사를 불러 당시 항소심 재판부의 태도와 재판 진행 상황 등을 면밀히 조사했다. 전 변호사는 18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김기영 판사의 2015년 9월 1심 판결은 대법원 판례를 무작정 따르지 않으려 상당히 고민한 것인데 항소심은 1회 변론기일 만에 2016년 1월 그냥 끝나버렸다”며 “재판을 무성의하게 진행해 졸속 재판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했으며 이를 검찰에 설명했다”고 말했다. 이어 “재판부가 의지가 없다고 느껴졌다”며 “기계적으로 대법원 판례를 적용해 판단하려 한다는 생각을 당시 했다”고 강조했다.
양 전 대법원장 시절 행정처는 김 판사가 국가의 배상책임을 인정하는 1심 판결을 내린 직후 ‘대법원 판례를 정면으로 위반한 하급심 판결에 대한 대책’ 문건을 작성했다. 이 문건에는 “(김 판사 판결 등) 1심에서 대법원 판례를 정면으로 위반하는 판결이 선고될 경우, 소모적 논쟁이 확산될 우려가 있어 항소심 사건 처리를 (대법원 판례대로) 신속하게 할 필요가 있다”고 적시돼 있다. 특히 이 소송은 박정희 전 대통령 통치 행위의 정당성 문제와도 관련돼 행정처의 관심은 더 컸다. 지난 12일 검찰 조사를 받은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당시 비슷한 내용의 손해배상 소송을 대리했다. 그때도 김 판사가 1심 재판장이었고 이후 항소심은 마찬가지로 1회 변론기일 만에 뒤집혔다. 행정처는 김 판사에 대한 징계도 검토했다.
검찰은 당시 항소심 재판장들이 행정처의 지침에 따라 재판을 진행한 것이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그러나 당시 항소심 재판장 중 한 명인 최규홍 서울동부지법원장은 “당시 행정처에서 (재판 관련) 연락을 받은 적이 없다. 대법원 판결이 나온 지 얼마 안 돼 그에 따라 판결한 것”이라는 입장을 전했다. 안철상 행정처장도 이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회의에서 “재판거래가 (실제) 있었다고 인정할 만한 자료나 정황은 없었다”고 말했다. 다만 검찰은 전직 행정처 관계자의 하드디스크를 임의제출받는 과정에서 새로운 재판거래 정황이 담긴 단서를 발견해 확인 중이다.
문동성 임성수 기자 theMo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