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내 괴롭힘 막을 ‘박창진 방지법’ 만든다… 외국선 최대 ‘징역 10년’

입력 2018-07-18 17:54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우리 사회의 과도한 성과주의와 가혹한 근로 환경, 업무 감시, 열정페이, 수직적 관계 등으로 조직 내 구성원들 간의 관계가 악화되면서 ‘직장 괴롭힘’에 노출될 확률이 높아지고 있다. ‘직장 괴롭힘’이란 왕따나 과중한 업무부여 등 직장 내에서 노동자의 신체·정신적 건강을 침해해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행위 전반을 말한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괴롭힘을 가하는 자는 직장의 상사, 동료를 포함해 관계기업의 ‘갑’이나 고객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강도의 차이는 있을지 모르지만 직장 내 괴롭힘은 우리 사회에 만연하다.

2018년 2월 발표된 국가인권위원회 조사에 따르면 대한민국 직장인 10명 중 6명 이상이 직장에서 괴롭힘을 경험했다고 밝혔다. 직장 괴롭힘 피해를 구제하기 위해 출범한 ‘직장 갑질 119’엔 익명의 제보가 하루 100건 이상씩 쏟아지고 있다. 그러나 괴롭힘 피해자의 60%가 특별히 대처하지 않았다. 상당수가 ‘대처해도 개선되지 않을 것 같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실제로 대응했던 피해자 중 절반 이상은 아무 효과도 거두지 못했다. 경우에 따라 임금도 포기한 채 직장을 떠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피해자들은 신원이 밝혀질까 전전긍긍했다.

◆ “대한항공 사태, 내부고발자 처우의 적나라한 민낯"

2014년 이른바 ‘땅콩 회황’ 사건 피해자인 박창진 대한항공 전 사무장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그는 회사에서 인사보복과 따돌림을 당하고 있다고 호소해 왔다. 회사 내 악성 소문으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으며 이로 인해 머리 종양이 생겼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는 이를 두고 “아픈 척한다는 (소문), 꾀병 부린다는 (소문), 목 통증으로 업무 도움 요청한 일을 ‘후배 부려 먹는다’는 소문을 만들던 사내 직원들의 비난이 난무했던 지난 시간의 흔적”이라고 말했다.

사진=박창진 대한항공 전 사무장 인스타그램

박 전 사무장은 지난해 11월 기자회견을 통해 업무 복귀 후 인사·업무 불이익을 받고 있다고 주장하며 법원에 대한항공을 상대로 부당징계 무효확인 소송을 제기했었다. 그는 “땅콩 회항 사건 당시 팀장이었다가 산업 재해를 인정받아 휴직한 후 복직했으나 영어 능력을 이유로 일반 승무원으로 강등됐다”고 주장했다. 당시 그는 회사 복귀 후 ‘사내 집단 따돌림’을 당하고 있다고 밝혔다. 공익제보자들(내부고발자) 모임의 대표인 정국정씨는 이를 두고 “대한항공 사태, 내부고발자 처우의 적나라한 민낯”이라며 “단체의 비리를 고발한 순간 ‘고자질쟁이’로 낙인찍혀 따돌림을 당하고 공동체로부터 버림받은 것”이라고 프라임경제에 설명했다.

◆ “이제는 고발 시대”… 정부, ‘직장 괴롭힘 금지 의무’ 법령화

직장 내 괴롭힘은 최근 심각한 사회 문제로 떠오르고 있지만 이에 대한 정확한 법적 개념도, 이를 예방하거나 금지할 법적 근거도 없다. 이런 가운데 정부가 ‘직장 괴롭힘’ 피해자나 신고자가 징계나 해고 등 보복 조치를 당하지 않도록 하는 불이익 처우 금지 의무를 법에 반영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불이익 처분을 내리거나 직장 내 괴롭힘 예방교육을 하지 않은 사업장의 업주에게 형사처벌과 과태료를 부과할 법적 근거도 만들 예정이다.

국무조정실은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직장 등 괴롭힘 근절대책’을 이낙연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에서 논의하고 확정했다고 18일 밝혔다. 정부는 직장 괴롭힘으로 인한 근로시간 손실을 사회적 비용으로 계산했을 때 연간 4조7000억원에 달하는 등 국가적 손해가 크고, 우울증과 자살 문제가 대두되고 있으며, 부모가 겪는 직장 괴롭힘이 자녀의 학교 괴롭힘으로 대물림되는 등 문제가 심각하다고 판단해 개선과제를 마련한 것이다.

이낙연 국무총리가 18일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국정현안점검 조정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괴롭힘 피해자 심리상담, 법률상담 및 소송도 지원할 예정이며 직장 괴롭힘으로 인한 자살·부상·질병·우울증 등 신체·정신적 손해에 대해 산업재해 보상이 강화될 수 있도록 기준을 개선할 방침이다. 직장 괴롭힘 신고 조사 등 초기 대응 단계와 시스템 체계화 대책도 마련된다. 직장 괴롭힘의 개념, 유형, 사례 등을 명문화한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인식을 개선하고, 사업장에 직장 괴롭힘 신고대상·방법·절차 관련 규정 마련을 의무화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 신고 대응부서를 지정하도록 유도할 계획이다.

◆ 외국은 어떨까… ‘직장 괴롭힘’ 방지 법령 마련한 국가는?

직장 내 괴롭힘을 방지하기 위해 법령을 마련한 국가는 스웨덴, 프랑스, 폴란드, 노르웨이, 벨기에, 캐나다, 호주 등이 있다. 호주는 직장 내 괴롭힘을 ‘형법상 범죄’로 분류하고 불쾌한 언행, 자해를 포함한 신체적 피해, 자살 충동 등을 야기하는 가해자에겐 최대 징역 10년형까지 가능하도록 하고 있다. 이 법은 직접 고용된 노동자뿐 아니라 외부 협력업체와 인턴, 자원봉사자 등에게도 적용된다.

프랑스의 경우 괴롭힘의 근거는 피해자가 먼저 제시하지만 괴롭힘이 없었다는 입증 책임은 가해자가 하도록 규정하고 사업주에게 법적 책임을 묻는다. 노르웨이는 근로자가 과업과 관련해 괴로움을 겪게 되는 행위도 금지한다. 문제가 된 사업장의 업주에게는 최대 2년의 징역 또는 벌금을, 가해자에게는 최대 1년의 징역 또는 벌금에 처한다. 캐나다 퀘백주는 노동법에서 정신적 괴롭힘의 개념을 정의하고 직장 내 가해자뿐만 아니라 고객과 같은 기타 제3자로부터도 괴롭힘을 당하지 않고 일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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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은 실제 폭력을 행하지 않아도 피해자에게 괴로움을 줬다고 판단되는 경우 최대 6개월의 징역 또는 벌금을, 폭력의 위협을 느꼈을 때는 최대 5년의 징역이 선고된다. 세계 최초로 ‘직장 괴롭힘 방지법’을 만든 스웨덴에서는 고의적인 업무 관련 정보의 비공유, 고립 유발, 개인 및 가족 비방, 고의적인 업무성과 방해, 부적절한 처벌 및 공격·모욕·비꼼, 해를 입히려는 의도와 함께 근로자를 관리하는 행위, 모욕적인 처벌행위 등 구체적인 8가지 유형의 행위를 구분해 규제한다. 우리나라만큼 직장 괴롭힘이 심각한 일본 역시 이 문제를 심각한 인권침해로 인식하고 노동상담이나 행정지침 형태의 가이드라인을 통해 수시로 실태를 파악하고 있다.

신혜지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