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이 분단국가를 바라보는 방식… 정치극 연극제 권리장전

입력 2018-07-18 17:39

아이들이 격앙된 목소리로 “공산당이 싫어요!” 외친다. 국민학교 선생님은 군대를 호령하듯 “공산당의 만행을 절대 잊으면 안 돼!” 절규한다. 마을 이장님은 자신의 비위 사실을 까발린 동네 청년에게 “너 빨갱이지?” 삿대질하며 겁박한다. 무대 뒤 스크린에는 시위대를 구타하는 박정희정권의 모습이 실제 뉴스 영상으로 재생된다. 현실과 연극이 뒤섞인 무대에서 국가 권력은 끊임없이 “무장공비가 쳐들어온다!”며 국민을 통제하고 억압한다. 11일 대한민국 유일의 정치극 연극제 ‘권리장전’(사진)이 극단 산수유의 ‘바알간 산수유나무’로 막을 올렸다.

올해 연극제의 주제는 ‘분단국가’다. 표어는 도발적이다. “가자, 북으로! 오라, 남으로! 우리가 선을 넘는다” 박근혜정부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 반기를 들며 시작한 권리장전은 2016년 ‘검열각하’ 2017년 ‘국가본색’을 주제로 정치와 예술을 가르는 선을 훌쩍 뛰어넘어왔다. 이날 연극인들은 킥오프 행사에서 선언문을 낭독하며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무대 위의 필리버스터다. 누군가 분단의 정치적 구조를 이용해 자신의 이익을 채우기 급급하지 않았을까. 무고한 피해자가 생기지 않았을까” 이들은 광화문 광장이 촛불 시민의 무대가 됐듯, 무대를 광장으로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으로 한반도 평화 이슈가 주목받는 지금, 연극 무대에서 분단을 논하자는 기획은 적확하다. 물론 의도적으로 목표한 건 아니었다. 김수희 권리장전 예술감독은 “작년에 분단국가라는 주제를 정할 때만 해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만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고 말했다. 연극제 기획에 시대 흐름을 담다보니 자연스레 앞을 내다보게 된 것이었다. 김 감독은 “연극으로 정치와 사회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자연스러워지고 있다”며 “정치극 페스티벌이 어떤 형식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걸 조금씩 인식했다”고 덧붙였다.

정치극인만큼 으레 무거우려니 생각한다면 오해다. 개막작 바알간 산수유나무가 상연되는 내내 극장에는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아이들이 ‘똘이장군’(반공만화 주인공)을 자처하며 황금 망토를 두르고 빨갱이 머리에는 뿔이 달렸다며 티격태격하는 장면은 희극적이다. 스크린에 한 할머니가 나와 불경처럼 박정희정권의 국민교육헌장을 외는 장면은 그로테스크하지만 리듬에 맞춰 춤판을 벌이는 배우들 덕에 우스워진다. 연극은 교조적이기보다는 교란적이다. 기괴함과 순수함, 권력과 무기력을 섞어 시종일관 권력을 곱씹는 힘을 잃지 않는다.

연극제는 9월 23일까지 계속된다. 7월에는 개막작 외에도 ‘냉면’ ‘프로젝트 에이전트’가 무대에 올라가며 8월엔 ‘달팽이 하우스’ ‘구향’ ‘소년공작원’ ‘어떤 접경지역에서는’이 상연된다. 9월엔 ‘홍시’ ‘전 인민의 심장이 하나로 뛰는’ ‘옥인동 부국상사’ ‘놀이터’ 등이 예정돼 있다. 평일 오후 8시. 토요일 오후 3시·7시. 일요일 3시. 대학로 연우소극장. 전석 1만원.

고승혁 기자 marquez@kmib.co.kr